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책도둑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재작년 12월부로 문을 닫은 학원 근처 북카페가 있었다.
여기서 자주 모임을 갖고, 커피와 차를 마시고, 독서토론회를 가졌었다.
물론 북카페의 지기도 참석하여 내가 주도하는 독서토론회를 빛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사랑하고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인 장소였다.
그 독서토론회가 작년은 물론 올해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코로나19로 인하여서 새로 하는 것은 언감생심 어림도 없다.
북카페 지기도 물론 숨은 독서의 고수이다.
하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그동안 정성을 드려서 운영한
북카페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마음고생하며 노심초사하면서 운영했을 그 마음을 나는 금새 읽을 수 있었다.
그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정호수가 있는데, 이 신정호수 주변에는 30여개의 크고 작은 카페들이 들어섰다.(이 글이 2년전인데 지금은 60여개의 카페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 카페들이 서로 박터지게 경쟁을 하는 바람에 이곳 북카페 다락이 큰 타격을 받았고, 카페지기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어서 몇번이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같이 아픈 심정을 나누었다.
그 카페에는 여러 곳에 '임대 딱지'가 붙어 있고, 부동산에 올려 놓았지만 찾아오는 발길이 아무도 없었다.
이 북카페에는 약 2000여권의 책이 있는데,
이 책들은 문을 닫으면서 고스란히 남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책들중에 몇권을 가져오게 되었다.
전 카페지기에게 메모만 하고서 10여권의 책을 가지고 왔다.
일종의 책도둑질을 한 것이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라고 하였지만,
나는 엄연히 도둑질을 한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귀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나는 오로지 책만 10여권 들고 왔다. 그 책을 서가에 꽂으면서 다시금 이상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책이 늘어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고, 이상하게 여린 슬픔이 밀려왔다.
"내가 운영하는 학원도 언젠가는 문을 닫겠지.
그러면 이 많은 책들은 누가 볼 것이며, 이 책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책들이 그저 무식한 사람들에게 헐값에 팔리고, 무가치하게 폐지로 전락하기전에 어딘가에 귀중한 장소에 책을 기증해야 하겠다는 미리 결론을 내리면서
가져온 책들을 서가에 꽂고 그 중에 한 권을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읽게 되었다.
체코의 국민작가인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라는
그의 평생의 역작을 살펴보았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십 오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이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이다"
이 말에서 갑자기 울컥한 감정이 들었다. 그는 35년간 독서에 열중하고 글을 죽어라 쓴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그의 라이프 스토리이자 러브 스토리인 것이다.
35년간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아마도 3톤 이상의 백과사전과 같은 보물이나 고물들을 머리속에 소유하였을 것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나도 지난 35년이 넘도록 책이라는 폐지더미에서 살아오고 있으며, 그 주변 세계에 무던히도 적응하면서 살아왔다. 이러한 책과 더불어 살아온 삶으 궤적이 마치 폐지를 무한대로 모으는 일과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허무한 일인지, 헛된 일인지 나는 아직 짐작은 하지 못하겠다.
솔로몬의 전도서(에클레시아스)를 보면, [바니타스 바니타툼]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전도서 12장 2절에 나오는 말인데, '헛되고 헛된 것'을 말한다.
책을 읽는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헛되고 헛된 일에 더욱 동참할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곧 독서하여 천국에 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독서천국운동가'라고 부른다.
나에게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근사하고 좋은 문장들은
꿀을 빨아 먹듯이 빨아 먹고, 나머지 것들은 폐기처분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는 어느새 뜻하게 않게 현자가 되었고, 사람들의 선생이 되었고, 수많은 사고와 생각의 숲에 갇혀있는 알리바바의 동굴같은 사람이 되었다.'
훔친?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다시금 독서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한시간이면 약 200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책먹는 여우 같은 나이지만 독서라는 것이 마치 자신을 유서깊은 왕국속에 있게 하는 것 같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가 전부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라는 것은 현실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나는 늘 이 책 속의 세계에 갇혔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다람쥐 체바퀴 도는 것 같은 모습,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가슴속에 책에 대한 정념과 작은 불꽃이 여전히 타오른다.
어찌보면 나는 저자의 말대로, "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이다"
그렇게 책을 간단히 읽고서, 이 글을 쓴다.
갈수록 수많은 폐지들이 내 속에 쌓여간다.
온갖 생각들이 마구 빨리 달리는 자동차들의 교차로에 있는 것처럼 지나간다.
책에 대한 정념과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나는 책이 없으면 못사는 존재로 전락했다. 다만 내 주변에 읽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과 벽을 더 쌓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이 나와 세상을 잇고, 사회를 잇고,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더 높은 벽을 쌓고 있다. 책에 대한 지나친 집념이 도리어 독이 될지, 득이 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나는 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책꽂이에 꽂아 놓은 훔쳐온? 10권의 책도 금방 읽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것도 금새 잊혀질 것이다.
현실과 이상을 오가면서
유한과 무한을 오가면서
사랑과 이별을 오가면서
여전히 나는 이곳 '책 읽는 자리' 에 있다.
나는 그렇게 책을 읽고 읽으면서, 글을 쓰고 쓰면서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가 말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진보할 것'이다.
그 진보의 길에 책이 소중한 동반자이다. 그리고 같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소중한 동반자이다. 이 길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나이가 들어도 자라고(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책 도둑이 어쩌다가 이렇게 현자같은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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