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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 - 돈
인류에는 대(큰) 종교들이 존재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들이 있다.
동양에서는 유교나 도교도 철학체계이며 종교체계를 동시에 갖추기도 한다.
그런데 유대교라는 작은 종교가 있다. 유대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배태시킨 원류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가 비록 작기는 하지만 7대 종교에 들어간다.
나는 여기서 큰 종교적인 것보다, 작은 종교적인 것을 말하고 싶다.
1980년대 나온 이어령 박사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모든 것을 줄이고 줄이는 미니멀리즘과 나노사회라는 일본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요즘 사회가 바로 [축소지향]을 추구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축소된 경제의 중심이 바로 돈이다. 이 작고 가벼운 돈이 대사회를 움직인다. 나라 전체를 움직인다.
크고 대단한 종교의 힘은 여전히 대단하지만, 사람들은 작고 실용적인 작은 종교의 힘을 의존하고 있다. 그 작은 종교가 바로 [돈 money] 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 라는 말이 있듯이, 돈은 그만큼 종교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가속화가 도면서 큰 종교 대신에 사람들은 작은 종교를 더 신봉한다. 아무리 큰 종교도, 작은 종교인 돈교에 방향에 따라 움직여진다. 심지어 역사를 보아도 돈교에 의해서 움직인 것이 대부분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만은 유태인이다. 그는 [통화론]의 기수이며, 현대 자본주의가 화폐경제로 돌아가게 만든 장본인중의 하나이다. 그의 말은 너무나 정확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돈의 위력에 놀란다.
"이 세상은 하나의 가장 큰 종교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의 종교이다. 이 종교앞에 모든 다른 종교들도 무릎을 꿇는다."
솔직해지자.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보다 돈을 더 숭배하지 않는가?
특히 유대인들은 돈을 [주머니속의 작은 종교]라고 부른다. 우리 말에도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 라고 한다. 그러니 이 돈의 위력앞에 장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과소유보다 [무소유] 를 주장한 것이다. 아예 없음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산다면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럼 유대인들의 논리는 어떤가?
필자도 유대인 사회에서 7년간을 살아보니, 유대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마치 신적인 예우를 할 정도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야훼)는 너무나 멀리 있다.(거기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 그 야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멀리 있으면 정말 믿기 힘들다. 물론 믿음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믿음이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있는 신(?)인 돈은 너무 가까이 있다. 그래서 손만 넣으면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편리하다. 지폐 다발을 만질 때의 스킨쉽은 정말 크다. 남자들의 지갑에서 돈이 두둑하면 배짱도 커진다고 한다.
건국대 석좌교수로 있는 조용현 교수는 말한다.
"모든 스킨쉽의 궁극적인 경지는 돈을 만질 때 오지 않을까? 과도한 상상일수도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상상이다. 이처럼 가까이에 존재하는 물신(맘몬)이야말로 너무 좋은 황금신이 아닌가?"
물론 돈은 우상숭배의 대상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돈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곧 물질사회이며, 정신문명의 퇴보가 심해져 가는 사회이다. 그래서 돈앞에서는 의리도 던벼 버리고, 심지어 명예도 버리고, 양심도 던져 버린다.
이것은 '돈'이라는 종교앞에서 모든 인간적인 가치가 초토화되어져 버린 것을 말한다. 종교는 말그대로 [절대적 신념체계]이다. 말그대로 100%의 믿음이 요구된다. 이 글이 종교를 폄하하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신격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을 신앙하게 되면 다른데는 관심이 없어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탐심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은 일만악의 뿌리] 다 라고 하였다. 돈을 숭배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게 된다.
돈은 그것이 인간의 지극한 탐심과 만나면 진실로 진실로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
현대인들은 돈 밑에서 해탈과 구원을 얻으려는 마음이 더 강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의 말은 [돈은 사용의 대상이지, 사랑이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주머니속의 작은 종교라고 부르는 돈이지만, 그러나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적당한 소유는 그 사람의 정신도 풍요롭게 해 주지만, 적당하지 않은 주체할 수 없는 돈은 그 사람을 타락하게 한다.
[저스티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센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인간관계가 사고 파는 식의 관계로 전락하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만악으로 이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계가 주고 받는 식의 인간적 관계로 가야만 우리는 거대자본주의에 함몰되지 않는다. 돈을 떠나서 인간은 살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을 떠나서는 정말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래서 돈에 대한 선용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가치관이다. 우리 인생은 가치싸움을 늘 벌이는 존재이다.
필요한 물질 이상의 것을 구하지 말라, 물질이 넘치게 되면 곧 정신이 혼탁해진다. 그래서 넘치는 물질을 나누고 기부하고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많은 부는 정당화될 수 없고, 그 사람의 인격도 마비가 되게 한다.
우리는 주고 받는 것에서 현명해져야 한다. 그것은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관계이다. 우리는 사고 파는 관계를 벗어아야 한다. 이는 [나와 그것]의 관계이다. 인간은 인간일 때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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