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실학박물관과
두물머리를 다녀오면서
"조선은 남양주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 황호택
10월 11일 대체 공휴일날을 맞아서 한때 인문학 포럼을 같이 했던 맴버들과 같이 잠시 머리를 식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인데 대한민국 구석 구석 갈 곳이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게 됩니다. 코로나 19로 어디 하나 마음대로 가기는 힘드나 그러나 마음대로 가야 하는 것이 여행입니다. 당일치기의 여행이지만 이 여행이 과연 평생에 몇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작심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류는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가고 오려면 여행경비는 듭니다. 하지만 다른 비용을 아껴서 여행을 하는 것은 필경 많은 것을 얻어오는 시간이 되고, 심지어 깨달음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답사한 지역은 다산 정약용의 숨결이 살아있는 실학박물관과 그리고 그 생가지인 마재입니다. 또한 남양주에 와서는 북한강과 한강이 같이 만난다는 '두물머리 - 양수리'를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양주는 [물의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양주는 실학의 본고장은 아니나
대실학자요, 유학자요, 시인이요, 겨레의 사표가 되는 [여유당전서]에 빛나는 인물인 정약용 선생 덕분에 그곳에 [실학박물관]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남양주는 몇 년에 한번 가는 곳입니다.
다산의 숨결도 맛보고, 멋진 팔당호의 경관과 더불어서 두물머리의 세미원을 둘러 볼 요량으로 간 곳입니다.
쉬는 날이 되면 마냥 잠을 자거나 그저 맛있는 맛집을 찾아 가는데 이러한 것은 진정 '시간낭비요 심지어 인생낭비'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쉬는 날이 되면 도리어 여행과 독서로 내공을 다지고, 못만난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것입니다.
실학박물관은 그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그 내용은 아주 탄타하여 보였습니다. 성호 이익 선생을 필두로 하여,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김육 선생, 다산 정약용등 여러 내노라하는 걸출한 그 시대의 지적 영웅과 문사들을 만나는 것은 가슴이 벅차는 일이었습니다.
두물머리에 가면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 바로 세미원입니다. 이곳은 한강수를 받아들여서 정원으로 만든 경기도 지방정원 1호 정원입니다. 이 정원은 너무나 크고 넓어서 많은 이들을 품을 만 하고, 그리고 두물머리의 가장 대표되는 상징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곳 두물머리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한양으로 가는 황포돗대배를 타고 갔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운길산 수종사가 있습니다. 그곳에 올라서 두물머리를 구경하고자 했으나 시간관계상 오르지를 못하였습니다. 수종사에는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덕형의 별서터가 있습니다. 또한 대동법을 추진한 김육도 있고, 연산군의 폭정에 당당히 맞선 박원종 선생도 있습니다.
문학인으로서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의 무덤도 이곳 남양주에 있습니다. 거기에 전태일, 박종철, 문익환등 저항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다산 실학도, 다산집안의 천주교도 남양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양주에는 [마재성지]가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남양주는 원래 조선시대에는 [풍양현]으로 불렸습니다. 이곳은 왕자의 난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시기에 태조 이성계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남양주시 금곡동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광해군의 묘도 남양주에 있습니다.
너무나 수려하고 멋진 자연경관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심신을 단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좋은 발견이었습니다.
아산에서 천안을 거쳐서 남양주까지 가는 길은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곳의 활기와 정기를 갖고 돌아오는 2시간은 즐겁고 쾌활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감동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추억이 되고 기쁨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서 아산의 벗들과 다시 어울려 막걸리와 두부찜으로 저녁을 먹으니 그 시간 또한 즐겁고 그지 없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잠시 쇼파에 누이고 잠들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실학박물관에서 사온 3개의 도록과 책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실학관련서를 읽었고, 정약용 선생에 대한 문헌을 여러 권 보유하고 있지만 다시 실학서들을 읽는 것은 지적인 흥분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 아산은 정착한지 약 15년이 됩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서 다시 서울이나 경기도로 가려고 하였던 마음이 굴뚝같기도 하였지만 그 마음은 버리고 내가 밟고 있는 곳에서 내 자신의 뜻과 진정성을 펼쳐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곳에 있으면서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고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선비같은 문사나 작가들도 있고, 그리고 친절하고 마음이 넓은 이웃들도 있고, 오랫동안 지키고 간직한 기독교 신앙의 동지들도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벗들도 있습니다. 또한 일할 수 있는 터전도 있고 나만의 연구실도 있으니 이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무엇보다 신선한 공기와 맑은 기운이 있는 아산에서 생을 보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즐거움이 많으나
일단 벗을 만나고 책을 만나고 그리고 채마밭을 일구고 술과 차를 마시면서 지내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일 것입니다.
요즘 우리 시대의 타락한? 엘리트들을 봅니다.
화천대유/천화동인 이라는 무슨 신선 풀 뜯어 먹는 일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추태?를 봅니다. 썩을대로 썩은 세상에 필요한 것은 진정 [실학정신]이나 [온고지신하고 법고창신]하는 진지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엘리트나 지식인은 그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은 세상을 보면서 그 세상을 고치고 새롭게 하려고 하였던 실학자들의 [양심]을 봅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의 한탄]도 봅니다.
정약용 선생께서는 이런 세상을 [거세개탁]이라는 말로 썼습니다. 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은 세상에 대한 조소를 하였습니다.
두물머리를 가보면서 한 세대는 가고, 다음 세대는 오지만 여전히 [ 역사의 땅]은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과 겨레의 얼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땅이 우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으로 우리가 살아기는 이 시대에도 그런 시선을 갖기를 소망해 봅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움직인다는 메시지와 교훈을 얻습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강해지는 이 때에도 우리는 그에 상응하고 버금가는 정신문명을 세워나가야 하고, 자본주의에도 휘둘리지 않는 인간성-인문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더 나면
전라도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강진이나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나 정약전의 흑산도, 추사의 제주도 등 다른 유배지들을 둘러보는 시간도 갖고 싶습니다. 다들 우리의 자랑스런 조상이고, 스승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그저 실망하지만 그래도 실망스럽지 않은 선배세대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아울러 주어진 시간을 허투로 보내서는 안되는 것도 봅니다. 책을 읽고, 벗을 만나 대화하고, 그리고 습작도 게을리 하지 않고, 주어진 생업에도 충실하게 보내며, 질문하고 탐구하는 능력도 더 키워야 함을 봅니다.
하루 하루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나날이 좋아져라. 갈수록 좋아져라'
'날마다 좋은 날이어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녹슬어 죽느니 닮아서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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