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험 (히브리어 나싸 נסה, ,헬라어 페이라 πείρα, 페이라조)
개념으로 이해하는 성서 6번째 시간
시 험
(히브리어 나싸 נסה, ,헬라어 페이라 πείρα, 페이라조)
우리는 매주 주일마다 주기도문을 낭송합니다.
그 주기도문의 한 내용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여기서 시험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은 그 시험이 결코 가볍거나 작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도 유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3가지를 받았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곧 말씀의 힘이었습니다. 평상시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시험을 이기는 유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은 시험을 하려는 사람도 많고 그 시험에 들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험에 한번 들면 정말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시험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불신하도록 만드는 유혹(temptation)이나 죄(sins)를 짓고자 하는 내적인 유혹과 외부적인 자극으로부터 생겨난다” 라고 말합니다.(IVP. 성경사전)
우리가 통상 학교에서 보는 시험(TEST)는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시험은 성서에서 말하는 시험과는 판이하게 다르거나, 성질과 특성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구약과 유대교에서의 시험
하나님의 여러 가지 시험중에 가장 적절한 예가 창세기 22장 1절이하에 나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습니다.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받습니다. 이 시험을 받으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며 여호와 이레(공급자)의 하나님이 자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신명기 8장 2절이하에 보면, 광야의 경험을 시험으로 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동안 하나님의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우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수없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반역을 하였지만, 여전히 만나와 메추라기로 물과 식량으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이 자신을 순종하는지 여부를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욥
욥JOB 이라는 인물은 원래 '아카드'어 이름입니다.
그 뜻은 '고통'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날의 일-잡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것은 곧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고통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런데 욥은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중에도 시험을 견디어 왔습니다.
지혜문학에서 시험에 대한 많은 기사주엥서도, 욥에 대한 것은 바로
의인들의 삶은 하나의 시험이며, 그 시험에 대하여 합격하기 위해서 많은 고난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양서에서도 맹자는 ‘하늘이 사람을 쓰려면 처음에는 많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모범으로 하여, 여러 의인들과 믿음의 사람들은 고통과 시험을 많이 받았습니다.
랍비들의 문헌을 보면 이들은 ‘아브라함을 모범으로 삼자’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고, 성장케 하는 시험이지만
악한 충동이나 어둠의 세력이 주는 시험은 언제가 무섭고 위험하다고 강조합니다.
성서시대에, 에세네파나 쿰란 공동체의 문헌에도 ‘신자들은 어두움의 편에서 빛의 편으로 넘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압력이나 유혹을 받는 부대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시험한 예들이 많이 제시됩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구원하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불신앙에서 나옵니다. 신명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6장 16~18)
히브리어로 시험은 ‘나싸’인데, 재미있게도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중에서 물과 관련된 시험이 있는 장소가 ‘맛싸’였습니다. 히브리어 ‘나싸’는 구약에서 36회 정도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를 가진 인간의 불신앙을 말합니다. 맛싸가 바로 시험의 장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시험의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가나안을 보지 못하였습니다.(민수기 14장 22-23)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것은 곧 그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회의입니다.
신약에서의 시험
신약에서의 시험은 헬라어로 ‘페이라’나 ‘페이라조’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도하다. 조사하다. 경험하다 등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주기도문(마태복음 6장 13절, 누가복음 11장 4절)에 보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경건치 못한 세력들에 의한 유혹’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신앙의 뿌리가 견고하지 않고, 없는 사람들은 시험을 받는 날에는 낙심하거나 흔들려 넘어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4장 3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바로 우리가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바로 유혹에 대비하여 기도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험과 유혹을 말하면,
반드시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서는 사탄이 시험과 유혹에 대해서는 별로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서는 시험과 유혹은 도리어 ‘시련’의 뜻이 더 강조됨을 보여줍니다.
도리어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으로 인하여 인간들의 시험을 받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면 ‘신자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하나님께 도전하지 말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3장 8-9절을 보아도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같은 말을 합니다.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이 글을 읽으시는 이들은, 반드시 시편 95편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목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르시는 양인데, 광야의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였던 범죄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합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는 자들의 범죄가 큰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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