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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칼럼과 에세이

시, 윤동주의 [십자가 CROSS] 그리고 12월의 크리스마스

by 코리안랍비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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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  그래 가끔은 시를 봅니다. 

시를  보다가 눈물 한 스푼을 흘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의 성격은 인간의 성격과 비슷합니다. 

 

시를 관념이 아닌 현상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성보다는 현상에 촛점을 두고 읽어야 합니다. 

아니 읽는다는 것보다는 시를 본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시가 주는 감동과 감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눈으로 보듯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번득이는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가 함축적이라고는 하나 바로 직감되어지는 

그 '순간의 꽃'을  만나야 합니다. 
시인들은 입체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시를 한 자 한 자

만들어  나갑니다. 글과 그림이 같이 만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글과 나가 서로 만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글이 노래가 되고,  즐거운 비명이 되고,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그려내는 
무형의 가치로움을 만들어갑니다. 

12월입니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이 마지막 달에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까요?
바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 괴로운 한 해, 그렇지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12월이어야 합니다. 괴로우면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른 아침  자녀를 학교에 태워다 주면서 벽에 걸린 문구를 하나 보았습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라는 콘서트 광고였습니다. 

행복을 주는 사람보다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참 불행하고 
슬픈 자화상을 가진 사회입니다. 그런데 행복을 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는 정말 행복하고 잔잔한 평화가 그윽한 국화향기처럼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 A BETTER WORLD의 꿈을 갖게 
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윤동주의 시를 만나고 '괴로웠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주 잠깐의 시 읽기가 이렇게 마음의 한 켠에 불을 밝히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슬프고 우울한 자화상에 잠시 기쁨과 안식의 표정을 짓게 만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작고 작은 티 스푼의 눈물이 나의 눈가에 고이는 경험, 
이  작고 여린 경험이 한 순간의 꽃처럼 피어나는  기적, 
이것이 바로 시의 힘입니다. 


윤동주의 시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에 담긴 한 편의 
시입니다. 

✝十字架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敎會堂 꼭대기
十字架에 걸리앴습니다。
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가요。

鍾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휫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가는 하늘밑에
조용이 흘리겠읍니다。

一九四一、 五、 三一、

과거 1940년대에 썼던 그의 시를 잠시 현대문으로 바꾸어 봅니다.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행복했던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인 키케로는 '십자가는 인류가 만든 최고로 끔찍한 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조에는 사지를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한 번도 시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다스리는 시대에는 '십자가형'이 너무나 자주 가해졌고,  그 희생자 중에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셨습니다. 죄는 인간이 짓고, 달리시기는 그 분이 달린 것입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그런데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라고 윤동주 시인은 표현합니다. 
이래서 '윤동주, 윤동주' 라고 하는가 봅니다. 

 

괴로우면서 행복해지려면 12월이 와 보아야 합니다. 
12월에 그런 운명, 아니 천명을 갖고 태어나신 아기 예수 
이 분을 만나려고 멀리 페르시아의 동방의 박사들이 왔고,
가장 비천한 일을 하고 있던 베들레헴의 목동들이 왔고,

저 멀리 천성에서 천군 천사들이 홀연히 왔고, 그리고 나도 왔습니다.

12월은 올해도 어김없이 왔습니다. 
지난 한해 어느 해보다 괴로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그 순간이 도리어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더 깊어지는 사람으로 영글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시가 주는 단순한 순간의 감동만으로 내 마음이 이렇게 풍성해 질줄이야...

시를 읽어야 하겠습니다. 
시를 가까이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거짓과 시기, 분노와 질투의 감정마져도 
품어버리는 시 인문학에 잠시 빠져보았습니다. 

윤동주의 [십자가]를 다시 노트에 써봅니다.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하는 사람으로서  큰 종이에도 
가는 붓으로 한 자 한 자 담에 봅니다. 

다른 분의 캘리그라피의 작품을 보고 다시 감동을 받다.


12월, 감사합니다. 
12월 이 땅에 오신 속죄제물이 되신 
속죄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의 사랑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그 십자가의 정신을 나와 여러분들이 배우고 
널리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더욱 겸손하고 겸허한 가슴을 안고 이 글을 마칩니다. 

2023년 12월 6일 괴로우면서도 행복한 사람 여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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