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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토라와 탈무드 이야기

성서개념, 양날의 검 double-edged sword, 히브리서 4장 12절

by 코리안랍비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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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출처 이미지  - 자주 묵상하는 말씀

본문 > 히브리서 4장 12절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글라디에이터 - 구글출처 이미지 - 로마검을 든 스페냐 검투사의 모습

 

 

성서 하브루타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난제를 만날 때입니다. 

이 난제를 만날 때 도리어 회피하기보다 흥분을 하게 됩니다. 

이 난제를 풀 수 있다면 정말 하브루타의 효과가 크게 일어납니다. 

 

오늘은 양날의 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보통 한국에는 양날의 검이 없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도 양날의 검이 없습니다. 

이 검은 로마검이라고 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 나온 양날의 검은 바로 로마검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양날의 검이 나옵니다.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은유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말합니다.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진실과 진리를 말합니다.

양날의 날선 검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베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리어 자신이 베임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좌우의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검보다 더 날카롭다고 하며, 점층적으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도 하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평소 내 서재에는 여러 주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날의 검에 대한 기사를 다시 살펴보니 맘에 드는 해석이나 주석이 없습니다. 그래서 헬라어 성경을 다시 살펴보고, 사전적인 작업을 해 보았습니다.

 

검이라는 것의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이라는 것은 일반 칼과는 다릅니다.  칼이라는 것은 일종의 도구입니다. 요리사가 잡으면 요리에 사용하는 칼입니다. 강도가 잡으면 강도질을 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병사의 검은 상대방을 제압하고, 적을 상대하는 도구입니다. 성경에 나온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결국 '전투적인 용도'로서의 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날의 검보다 더 예리하다'라고 선언합니다. 칼은 영어로  SWORDS 합니다. 이 말을 잘  분해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집니다.  S + WORDS가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검과 말씀을 거의 같은 어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요한계시록 1장 16절으로 가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에는 7개의 별을 잡고 있으며 왼손에는  양날의 검을 쥐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분의 눈은 빛나고 입에서는 말씀이 나옵니다. 좌우에 날선 검과 같습니다그 분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쪼개고 죄를 죽이고 죄인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칼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여기서도 '양날의 검'이 나올까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진리인데, 이 진리를 따르면 구원이지만 따르지 않으면 저주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날의 검과 관련된 표현이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우리의 혀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혀는 가장 약해보여도 가장 강합니니다. 한 입으로 찬양도 나오지만 한  입으로 저주도 나옵니다. 혀는 길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여성들이 신는 하이힐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다리가 예뻐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다리에 무리를 주고, 다리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때론 정직도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지나치게 정직하여 도리어 거짓된 사람들에게 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도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해야 하는데 지나치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면 양날의 검입니다. 말씀은 너무나 좋고, 진리이고,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를 잘 받은 사람은 선과 구원의 길이 열리는데, 이를 잘 받지 않으면 반대의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람은 이를 악용하여, "코란을 받든지 칼을 받든지" 라는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양날의 검보다 더 예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변화되고, 나아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도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구한말에는 다닌다는 것은 핍박이고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거의다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양날의 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든지 칼을 받든지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같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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