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데 있어 다지아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 뉴욕타임즈
이 책을 읽기전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이 고민이 너무 깊어지면 이상하게도 나약해져 허무한 결론을 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삶은 그래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Life goes on)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겨워도... 불행감과 좌절감이 찾아와도... 그래도 이 세상을 소풍이라고 여기면서 오늘도 아름답고 열심히 살아내려는 사람에게 [인간다움]은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진짜 유명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만나봅니다. 일단 그의 <인간 실격>은 읽어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워낙 일본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경합을 벌일 정도로 전일본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소세키나 오사무는 둘다 도쿄대학 불문과 동문입니다. 이들은 서로 문학적 교류를 하면서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펼쳐 나갔을 것입니다.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 이상을 기록한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를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근에서야 수만 권 이상 팔릴 정도로 그의 화두는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감정몰입]은 하지 마십시오.
일본에 갔을 때 도쿄 타워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일본어와 영어로 된 하루키의 책과 오사무의 책을 잠시 구입해서 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찍 요절한 작가입니다. 그는 1909년에 태어나 1948년에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린 사람입니다. 일본 작가들중에는 이상하게 허무주의나 운명주의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생을 버리기도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마음과 생활을 투영한 주인공 요조를 통해 한 인간의 단면이 아니나 전 일본을 뒤덮고 있었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래서 <인간 실격>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일탈(아노미)들을 여러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개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시대에 적응을 못하는지에 대한 것을 그리며, 그리고 어떻게 그 시대에 문제에 적응하고 극복할지에 대한 방법은 있는지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읽어보아야 합니다.
<인간 실격》(일본어: 人間失格)1948년에 잡지 〈전망〉에 총 3화의 연재소설로서 발표되었습니다. 같은 해 5월 12일 탈고되었고, 연재 최종회의 게재 직전의 6월 13일 심야에 다자이가 자살했기 때문에 〈유서〉와 같은 소설로 여겨져 왔습니다.
일단 작은 사소설 형식의 픽션이지만, 주인공이 말하는 과거에는 다자이 자신의 인생을 현저하게 반영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는 <자전적인 소설>을 썼을까요? 그 소설을 완성하고서 어느새 그는 자신의 생을 버립니다.
이 책은 `` 부끄러운 생을 보내왔습니다. `` 라는 첫마디로 유명합니다.
이 책의 중요구절을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한 나의 독서편력을 나눕니다.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세 장 본 적이 있다.私は、その男の写真を三葉、見たことがある。”
제삼자인 서술자의 시점에서 한 남자의 유년 시대·학생시절·기괴한 사진의 "세 장"의 사진을 보며 비교합니다. 서술자는 그 남자의 사진을,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 기괴한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작품의 전개는 서술자가 읽는 "수기" 속에서 일어납니다.
제1의 수기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来ました。”
오바 요조라는 이름을 가진 "나"가 작품의 서술자입니다. 이 수기에 등장하는 요조는 27세의 모르핀 중독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수기를 이끌어 가는 나레이터이자, 수기의 중심인물이며,자신의 입장과 관점에서 자신을 해석합니다.
"나로서는 인간의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남과는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어 그 때문에 혼란스럽다. 게다가 온전히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나"는, 인간에의 마지막 구애로서 익살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본성은 가정부나 하인에게 범해진다는 잔혹한 범죄를 말하지 않고 힘 없게 웃는 인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서로 속이는 인간들에 대한 난해함 끝에 고독을 선택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다시 분석하면, 요조는 세상과의 관계를 멀리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익살'이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이를 통해 세상과 마주칩니다. 그래서 그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겉으로는 남들을 웃기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나의 청소년시기나 청년시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래서 제 2의 수기를 보면, 자신의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갖게 되고, 그 안에서 불안에 떨면서 어느새 '인간 실격'이라는 파멸을 향해 치닫습니다.
제2의 수기
중학교 시절, "나"는 익살꾼이라는 자신의 기술이 간파될 것 같아 두려워 한다. 그 후 도쿄로 상경한 "나"는 인간에의 공포를 감추기 위해, 나쁜 친구 호리키의 권유로 술, 담배, 매춘부와 좌익 사상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나"에게서 추악한 인간사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환경이 바뀜에 따라 "나"는 여러가지 속박으로부터 피하기 어려워지며, 결과적으로 한 유부녀와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동반자살은 실패하고 "나"는 혼자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를 추궁받게 된다. 결국, 부친의 거래경험이 있는 남자를 인수인으로서 석방되지만, 혼란한 정신 상태는 계속된다.
로 전개됩니다.
이에 대한 한 대목을 봅니다. 이 책이 상당부분 기독교적 색채가 담겨 있다는 것에 수긍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책을 읽고서, 이 책에 관련된 문헌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구글이라는 도구만 잘 이용하면서 독서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일본의 사고 준이치로 교수는 [인간 실격]을 연구하면서 여러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이 책이 [다자이의 그리스도론]이라는 것입니다. 다자이는 기독교 사상을 어느 정도 접하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책에서는 성서의 여러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 '어둠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비참한 패배자나 배덕자를 가르켜 하는 말이지만,
저는 스스로가 태어날 때부터 어둠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세상으로부터 어둠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다정한 마음씨가 됩니다. 그리고 저의 '다정한 마음씨'는
제 자신이 반할 정도로 다정한 마음씨 였습니다."
어둠의 자식이라는 표현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나면서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서 '어둠의 자식'이 된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런데 요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죄의식이 매우 원초적인 감정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요조는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자 알게 된다면 그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원죄라는 것은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죄의식의 근원이 원죄라고 하지만, 원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이를 통해 구원으로 향해 가야 하는데, 요조의 경우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고 있으나 이를 속죄를 통한 구원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있는 것입니다.(아에바 다카오의 글 중에서)
제3의 수기
죄를 추궁받은 것을 계기로 고등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고, 한때 인수인의 남자의 집에 체류하게 되지만, 남자에게 장래를 추궁받자 "나"는 가출한다. 그것을 계기로 아이 딸린 여자나, 바의 마담 등과의 파괴적인 여성 관계에 몰두하게 되어, "나"는 한층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 끝에 마지막으로 원했던 순결한 여자 요시코가 근처 상인에게 범해지는 것을 목격한 "나"는 지나친 절망에 빠져 술에 절어 지내다가, 마침내 어느날 밤 우연히 찾아낸 수면제를 이용해 발작적으로 다시 자살미수를 일으킨다.
어떻게든 살아난 "나"는 더욱 몸이 쇠약해져 한층 더 술독에 빠지게 되며, 어느 눈 오는 날 밤 결국 객혈(喀血)을 한다. 약국에서 처방된 모르핀을 사용하면 급격하게 상태가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맛을 들이다가 결국 모르핀 중독에 걸린다. 모르핀을 너무 원한 나머지 몇번이나 약국으로부터 외상으로 약을 사다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가 되어, 마침내 약국의 부인과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스스로의 죄의 무게를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친가에 상황을 설명해 돈을 원한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윽고, 가족의 연락을 받은 듯한 인수인 남성과 호리키가 와서 "나"에게 병원에 가라는 말을 한다. "나"는 행선지가 요양소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으나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미친 사람으로서 평가를 받아진 것을 느끼고, "나"는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평가한다.
수개월의 입원 생활 후 고향에 간 "나"는 거의 폐인이 된 채로, 인생에는 불행도 행복도 없으며 모든 것은 단지 지나갈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3편의 수기형식의 글은 이렇습니다.
후기
서술자는 이 수기에 나오는 스탠드바의 마담일 것이라 짐작되는 인물을 찾아갑니다. 그 여자는 실제로 이 수기에 등장하는 바의 마담이었으며, 서술자는 그녀에게 오바 요조에 관해 알고 있냐고 묻습니다. 마담이 요조를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조는 정말 순수하고 세심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착한 아이였어요
私たちの知っている葉ちゃんは、とても素直で、よく気がきいて、あれでお酒さえ飲まなければ、いいえ、飲んでも、……神様みたいないい子でした
여기까지 읽었다면 무척 인내심이 좋은 것입니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자신이 폐인처럼 변해가는 그에게 가족은 폐결핵 요양소를 가보라고 원하지만, 실제로 요조가 갇힌 곳은 정신병원이었습니다. 이 일로 요조는 큰 충격을 받고 마침내 한 가지 큰 선언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 받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실격, 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전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읽었고이 젊은이들도 시대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해 방황하고 부적응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는 바로 한국의 해방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격동기에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을 만큼 힘든 허무(니힐리즘, Nihilism)속에 살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19시대에 젊은이들은 어떤가요? 시대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고 있는가요? 아니면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요? 후자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시대를 탓하고, 나라를 탓하고, 심지어 기성세대를 탓하는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까지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속에서 젊은이들은 오갈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책을 보면서, 생각해 볼 점이 많습니다.
주인공 요바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해하는 쪽으로 보면 어느새 서서히 공감하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살면서 우리는 다른 이들, 즉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단정을 짓고 다른 이들과 말 한마디도 섞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게 살았다는 자화상을 갖습니다.
나약하고 순진한 사람이 과연 '인간 실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인간의 자격'이라는 것이 강인하고 떳떳한 사람이 갖는 것일까요?
불가에서는 '사는게 고통'이라고 하고, 어떤 철학자는 '인간은 체계적으로 불안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어진 험악한 현실로부터, 환멸가득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도망가고 싶은게 인간의 심리일 것입니다.
주인공 요바가 자신의 나약함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면, 그가 원죄의식에 젖어 있지 않고, 그저 자기 멋대로 살아가려고 했다면 더 편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지성인의 헛된 고뇌]를 보게 합니다.
그는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도망하고 도피하는 것이 그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러나 사랑도 이별도 환희가 없는 황량한 인간관계에서 그는 이것을 '인간 실격'의 삶이라 정의를 내린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입장이 어떤지 궁금할 것입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 시절을 거쳐와본 세대입니다.
나도 이 세대에서 [인간 실격]이든, [인간 자격]이든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지냈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러가서 대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나에게 세상은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순결하게 살기에 두려운 곳, 믿음으로 살기에 두려운 곳, 평범하게 살기에도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신의 이미지는 [두려운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두렵게 하는 존재나 대상은 나에게 경계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이 한국이 다시 [두려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의 10년을 은둔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수천권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세상의 문제, 현실의 문제, 이상의 문제, 나의 문제 등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책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내가 보낸 고민과 생각의 시간은 결국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이 더 행복감이 높습니다.
인간으로서 이미 우리는 자격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스스로 [실격]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패배자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어둠의 자식이다] 라고
여기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폐인]으로 낙인 찍는 것입니다.
소설에 나타난 요조의 말에 이것이 보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라는 것이 알 수가 없어지고, 나 혼자 별난 놈인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톨스토이의 책을 보니까, 젊은이가 가져야 할 3가지가 있더군요.
그도 젊은 날 요조같은 고민에 많이 빠져본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젊은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양심, 건강, 그리고 상식이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며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지키면 떳떳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건강을 지키면 강해지고 담대해집니다. 육체의 건강이 정신의 건강도 보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식입니다. 상식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분별력과 판단력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격]입니다.
참으로 어렵고 난해한 책입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일본판 데미안]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희망이라는 탈출구로 나왔지만 [인간 실격]은 절망이라는 문턱에 머물게 합니다. 절망이 희망보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같은 일본인들의 멘탈리티(정신세계)도 이상합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일본이라는 나라의 '실상'을 작가는 이 소설에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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