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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는 무슨 뜻인가요?

하브루타 스타일 러닝 & 질문과 토론

by 코리안랍비 2025. 7. 1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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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는 무슨 뜻인가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중 하나인 로마서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죠. "온 이스라엘"이라니, 무슨 뜻인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구원은 국가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 아닌가요?

이 구절은 너무나 이상해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으쓱하고 페이지를 넘길 것입니다. 구약성경, 혹은 우리가 히브리어 성경이라고 부르는 성경의 다른 많은 특이한 구절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흔히 그렇듯, 그 지점에 머무르는 사람들, 이처럼 수수께끼 같은 구절들이 조금만 파고들면 큰 보물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로마서의 맥락을 살펴보자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며, 처음 두 장에서는 인류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예슈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오직 메시아 예슈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 메시지에 대해 극심한 완고함을 보이는 모습까지 묘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 답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11장 끝부분에 나오는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는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그 진술이 나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 쓰였는데, 그들 대부분은 이방인이었지만, 그들 중에는 유대인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되었는데, 바울은 유대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아이신 예슈아를 통한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첫 장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다음에는 헬라인에게로 말입니다. (로마서 1:16)

 

다음 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먼저 오는 것 역시 알파벳의 시작 부분에 이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점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은 헬라인에게로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은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로마서 2:9-11)

 

2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출생으로만 유대인인 유대인과 거듭나 구원을 받은 유대인을 구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들을 이방인이 이제 유대인이 되었다는 의미로 오해하지만,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바울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이 책을 계속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이 더 이상 민족적으로 유대인이 아니라는 뜻도 아닙니다. 여기서 "단지"라는 단어는 단순한 민족성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유대인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거듭나야 합니다!

겉모습만 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이 아니며, 겉모습과 육신의 할례  유대인이 아닙니다 . 오히려 이면적으로 유대인인 사람이 유대인입니다. 할례는 마음에 행하는 할례요, 영에 행하는 할례이지, 율법에 행하는 할례가 아닙니다. (로마서 2:28-29)

계속해서 읽어 나가면서,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은 구별되지만 유대인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장은 유대인들이 실제로 구별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바울의 인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나머지 장들에서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우리 모두가 범한 죄를 강조하고, 율법이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91-10)

4장과 5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는 것을 살펴보며, 예슈아께서 어떻게 "둘째 아담"이신지 설명합니다. 6장과 7장에서는 죄와 사망의 법을, 8장에서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삶에서 오는 용서와 자유를 탐구합니다.

 

9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대체로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표현합니다. 이는 분명히 그가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대체로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해 염려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노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라.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이를 확증하노라 . 내 마음에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노라. 내 백성, 내 족속, 곧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 .”(로마서 9:1-4상)

 

다음 장에서 그는 이스라엘 전체가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로마서 10:1)

로마서 10장 16절에서 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 라고 슬퍼합니다 .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3천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처음 (유대인) 제자들이 성전 뜰에서 열렬히 선포했던 메시지를 믿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유대인 추종자들의 수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포함하여 5천 명에 달했다고 읽습니다(사도행전 4:4; 6:7; 15:5). 나중에 사도행전 21장 20절은 수만 명(그리스어: μυριάδες – 무수한)의 유대인들이 예슈아를 믿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상당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쓸 당시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희생을 통해 온 인류에게 주어진 영생이라는 값없는 선물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들 모두가, 즉 그 민족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전체가 구원받는다는 구절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상기시켜드리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모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온전한 수가 들어올 때 까지 부분적으로 완악해졌는데 , 이렇게 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함을 돌이키시리라.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과 맺는 내 언약이 이것이니라 ."

복음으로 말하면 그들은 여러분 때문에 원수이지만, 택하심으로 말하면 그들은 조상들 때문에 사랑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그들의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긍휼을 얻었듯이, 그들도 순종하지 않음으로 이제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여러분도 긍휼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입니다. (로마서 11:25-32)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 정도 완악해졌”고, 그 결과 대다수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 단어는 “~까지” 입니다 . 최근 연구 1에 따르면, 전 세계 유대인 1,500만 명 중 약 백만 명의 유대인 혈통이 예슈아를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까지(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는 완악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슈아께서도 누가복음 21장 24절에서 언급하신 내용입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  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유대인이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유다는 분명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이신 예슈아를 믿는 구원의 믿음으로 대거 나아올 세계적인 사건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구원은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로마서 11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어디를 봐야 할지 알면 이 약속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만큼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체적으로 주어진 약속들 중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로마서 11장 26절에서 바울은 이사야 59장 20-21절을 다시 언급하는데, 이 구절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주께서 시온에 오실 때 야곱이 어떻게 죄에서 돌이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는 모든 예언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다른 예언자들도 같은 내용을 언급했던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 의 말씀이니라 나의 거룩한 산,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그 땅에서 나를 섬길 것이요, 거기서 내가 그들을 받아들일 것이라 (에스겔 20:40)

히브리어에서는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로 두 번 말합니다.  [“내 거룩한 산,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이르시되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  족속이 다 거기서 내가 허락할 땅에서 나를 섬기리라."]

 

내가 거기서 너희의 예물과 너희의 아름다운 예물과 너희의 모든 거룩한 제물을 요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가 흩어진 여러 나라에서 모아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운 분향으로 받고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나타낼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땅, 곧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 한 땅으로 인도할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 에스겔 20:41-42)

이 극적인 선언은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고( 1948년이 핵심입니다 ), 그분의 "거룩한 산"(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여기서 이스라엘이 여러 나라에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의 눈에 거룩하심이 증명"될 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이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이 약속은 그분의 참된 정체성을 드러내며, 스가랴 12장 10절에도 매우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자기 백성을 재앙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출현을 보고 갑자기 그분이 바로 예슈아임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와 족속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 앞에 나오는 구절은 그 맥락을 알려줍니다.

"그날에 나는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러 나갈 것이다."

 

온 세상이 이스라엘을 대적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하러 오실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인지 보십시오! 나사렛에서 오신 예슈아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그를 위해 외아들을 위해 애통하듯이 애통하며, 그를 위해 장자를 위해 슬퍼하듯이 몹시 슬퍼하리라. (스가랴 12:9-10)

 

호세아서에서 우리는 성전이나 지도자 없이 오랜 유배 생활을 한 후에 이스라엘이 말세에 하나님뿐만 아니라 "다윗"을 찾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는 또 다른 예언을 봅니다. 다윗 왕은 영광에 이르렀지만, 이사야 55장 과 다른 곳에서 그의 이름이 메시아와 다윗 언약을 가리키는 지속적인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슈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통치하시며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이 구절은 기원전 6세기에 있었던 바빌론에서의 귀환이 아니라 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말세에 떨면서 그분과 그분의 축복으로 올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께 돌이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러 날 동안 왕도 없고 군주도 없고 제사도 없고 보석도 없고 에봇도 없고 가정 수호신도 없이 살 것이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다 . 그들은 마지막 날에 여호와 와 그의 복을 향해 떨며 나아올 것이다. ” (호세아 3:4-5)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 그리고 당신도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그분의 계획에 관한 것입니다. 십자가가 핵심 입니다. 중심이기는 하지만 절정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서의 이 한 구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성경의 메타 이야기(meta story)를 보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은 성경을 일상생활의 지혜가 담긴 주머니 속 책처럼 여겨왔고,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깊이 사랑하시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이야기이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스라엘 이야기에 집중시키셨습니다. 더욱이, 대체 신학자들이 당신을 믿게 하려는 것과는 달리,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언약 백성으로 택하셨으며,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시나이산에서 그들과 약혼하셨고, 역사의 오랜 시간 동안 짝사랑의 아픔을 안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온 이스라엘이 돌아서서 눈을 뜨고, 그 모든 세월 동안 그들을 사랑해 오신 분을 알아볼 날이 올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날이겠습니까!

절정은 영광 가운데 메시아가 돌아오시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물리치시며, 온 이스라엘이 갑자기 예슈아의 참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신부로서 함께 신랑을 마침내 직접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이야기의 핵심 주제이며, 이방인들이 포함되고, 초대받고, 입양되고, 접붙여진 것 입니다. 무엇에 접붙여졌을까요? 다시 모인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접붙여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될 뿐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열두 지파 중 이스라엘 땅에 다시 모였다가 열방의 공격을 받았던 자들은, 그분의 언약 백성에 합류하라는 초대를 받아들인 지구상 모든 민족과 함께 확실한 멸망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이다

우리는 매일 메시아의 재림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땅은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주변 적들은 폭력의 위협을 숨죽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모든 테러 집단이 예루살렘에 집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란의 IRGC에는 정예 부대인 "알 쿠드스", 예루살렘 부대가 있는데, 현명한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할 것입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발뱅크에 있는 본부에 성전산에 초점을 맞춘 "예루살렘 해방" 계획을 세웠습니다.2 게다가 하마스 의 10월 7 일 공격 은 "알 아크사 홍수"라는 코드명으로, 성전이 있던 곳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를 가리킵니다.PLO 휘장에는 돔 오브 더 록과 "예루살렘은 우리의 것"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땅(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의 성산(시온,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성전산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경배받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의 목적은 옛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었으며, 우리는 메시아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슈아께서는 또한 유대인들이 그분이 오실 때 그곳에 함께 있고, 두 팔 벌려 그분을 환영하기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23:37-39)

 

예슈아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갈망하는 바이며,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도 그 마음을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모든 조각들이 맞아떨어지고 적그리스도가 올 것입니다. 다니엘 9장 27절에 따르면 그와 언약을 맺을 것이고, 이사야 28장 18절에 따르면 "죽음과의 계약"을 맺을 것입니다. 에스겔 39장에 나오는 미래에 대한 환상은 다시 모인 이스라엘이 북방에서 갑자기 들이닥쳐 파괴하기 전까지 겉보기에 안전하고 안정된 기간을 보낼 것임을 여러 번 묘사합니다. 이 장은 하나님과 마곡의 전쟁을 묘사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또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이제 야곱의 포로를 돌이키고 이스라엘 온 족속을 긍휼히 여기며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리리니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할 때에 내게 보인 부끄러움과 모든 거짓을 잊을 것이요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에스겔 39:25-26)

 

내가 그들을 여러 나라에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의 원수들의 나라에서 모아 들이고 많은 나라 앞에서 그들을 통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비록 내가 그들을 여러 나라에 사로잡혀 가게 하였더라도 그들을 모아 그들의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아무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부어 줄 것임 이니라 주 여호와 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39:27-29)

 

마지막으로 로마서로 돌아가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택하신 것은 영원하고 돌이킬 수 없지만, 마음이 “부분적으로 완악하게 된” 것은 구원의 복음이 널리 퍼져 온 땅의 모든 족속이 그 이야기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완악함은 어떻게 끝나게 됩니까? 무엇이 변화를 가져옵니까?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자비가 이스라엘에 자비가 돌아오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언약 백성에게 되돌려 드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온 이스라엘에게 전해져야 하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를 위한 정보의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면 투광 조명이 켜질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갑자기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하면 그들은 여러분 때문에 원수이지만, 택하심으로 말하면 그들은 조상들 때문에 사랑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그들의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긍휼을 얻었듯이, 그들도 순종하지 않음으로 이제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여러분도 긍휼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입니다. (로마서 11:25-32)

얼마나 놀라운 계획입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참으로 깊습니다!

 


  1. https://allisraelnews.com/this-yom-kippur-1-million-jews-believe-atonement-comes-only-from-messiah-jesus-and-only-he-can-write-their-names-in-the-book-of-life
  2. https://succathallel.com/예루살렘-예수와 열방의 보좌/

이 자료는 ONE FOR ISRAEL 성경연구팀의 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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