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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의 힘
스토리가 모이면 무엇이 될까? 바로 히스토리(역사)가 된다.
역사는 문자이전과 문자이후로 나눈다. 문자이전을 선사라고 부르고, 문자이후를 역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문자의 등장과 더불어서 가장 강력해진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연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방식의 구전(口傳)과 문서로 기록한 실록(實錄)이 있다. 스토리는 말과 글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나름의 사실(事實)과 사유(思惟)가 들어간 것이다. 또한 질문과 토론이 들어가면서 스토리는 더욱 강해지고 공고해진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살아남은 강력한 전달수단이 바로 ‘스토리’이다.
최근에 어떤 목회자 분과 대화를 하다가 ‘스토리의 힘’을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바울신학의 진수에 대해서 말을 했고, 나는 복음서신학의 진수에 대해서 말을 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스토리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왔다. “설교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신학이나 바울의 서신서를 중심으로한 영적 설교는 10년이 지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구약의 스토리나 신약속에 등장한 스토리는 10년이 아니라 한 세대가 지나가도 사람들이 기억합니다.”
이야기의 힘, 특히 옛 이야기의 힘은 지금도 살아서 사람들의 귓전을 때리고, 장기적으로 기억하고, 그리고 모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전달하여서 보존 한다.이를 잘 증명한 민족이 바로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침대머리나 밥상머리에서 온갖 ‘스토리’들을 듣고 말한다. 성경속에 나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다른 우화와 동화에서 나오는 이야기, 여러 문헌과 책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이 기억을 재구성하여 사람들과 나눈다. 소위 ‘하브루타 (Havruta 파트너와 질문하고 토론하는 학습)’에 익숙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많은 언론인들과 작가들이 탄생하게 되어 있다. 평균 유대인들은 ‘20명중 1명은 작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스토리를 말하고, 짓고, 구성하고, 재창조하는 능력들이 뛰어나다.
최근에 알 아크사 사원(바위돔 사원)을 둘러싸고 다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무력충돌이 크게 일어났다. 서로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수천 명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강원도나 경상북도만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국지전’ 양상의 갈등과 충돌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 중동전쟁, 유대인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 고 있다.
하지만 이 갈등과 충돌속에서도 기억해야 할 것은 ‘스토리의 힘’이다.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두고 전세계적을 이슈화하고, 언론화하고, 온갖 스토리를 만들고, 세계인들로 하여금 정당성과 합리성을 구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어느새 ‘이스라엘 편’을 들게 한다. 물론 세계의 언론을 장악했다고 해서 저들을 맹비난하는 것은 좋지만, 저들이 왜 '문무를 겸비'하려고 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도 저런 '스토리 창조'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도 저들 이상으로 뛰어난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다.
사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서로 앙숙이지만 서로 ‘게임이 되는 위치’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중해로 몰아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생각해 주는 양상이다. 이번 전쟁으로 인하여서 유대인들은 10여명이 죽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무려 230명 이상이 죽었다. 물론 이스라엘의 첨단무기인 ‘아이언돔’의 위력도 보여준 전쟁이었다. 이로 인해서 세계적으로 ‘아이언돔’에 대한 구매를 서두르는 나라들도 생겼다. 한국도 이 무기에 대한 도입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풍성한 스토리 메이커’로서의 유대인들의 ‘언론전의 승리’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말로서 표현하고,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유대민족의 놀라운 저력을 보여준다. 정작 중동은 아주 조용하다. 중동은 거의 상대도 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강력하게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비방도 하지 못한다. 터키나 이란 등의 나라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편이다. 중동전쟁에 계속에서 진 나라인 이집트가 중재를 해서 겨우 ‘휴전’에 들어간 상태이다.
‘
스토리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나는 여기서 살펴보고, ‘스토리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야 함도 배운다.
어려서 읽은 ‘안네의 일기’는 그저 어느 정도 문장력만 있고, 감수성이 있으면 쓸 수 있는 일기이다. 그런데 이 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나 정조 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閑中錄)’이나 정조의 요청으로 지어진‘승정원일기’에 비해서 그리 대단한 일기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인들은 ‘일기하면 안네, 안네하면 일기’를 기억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스토리의 힘’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보면 ‘안네의 집’이 있는데 네덜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30번 이상은 그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스토리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단연 문학이다. 그것도 인문학이다.
문학을 많이 보고, 읽고, 말하고, 쓰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한국인들은‘스토리가 풍성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문학을 많이 읽어야 한다. 기술서나 직업과 관련되 서적도 많이 보아야 하지만 이것은 직업을 얻으면 멈추어야 한다. 하지만 문학서 읽기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언론인들과 작가들의 글을 자주 읽어야 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에세이나 스토리들은 살아가면서 매우 유익한 인문학적인 가치를 갖는다. 살며, 생각하며, 배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스토리’이다. 우리 자신도 스토리를 만드는 ‘스토리 라이터’가 되고, 스토리를 말하는 ‘스토리 텔러’가 되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신문도 읽지 않는 시대, 시집도 읽지 않는 시대라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읽는 것’이라는 본질을 버릴 수 없다. 사람을 읽고, 시대를 읽고, 세상을 읽어 나가려면 부지런히 ‘읽고 쓰는 일’에 힘써야 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는 책과 그가 쓴 글이다”라고 하였다.
스토리의 힘, 문필의 힘, 말의 힘은 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때로는 돈의 힘이나 무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꾸만 물질중심 사고가 팽배해지는 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정신중심 사고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남는다.
유학 시절에 나의 유대인 스승께서 한 말이 생각난다.
“읽고 읽어라. 생각하고 생각하라.”
이 단순한 말속에서 나는 나의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그것이 ‘히스토리’를 만드는 길임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도 그 스승처럼 ‘읽고 읽어라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스토리의 힘은 위대하다.
그래서 나도 매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한 편씩 남기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읽고 쓰자. 죽을 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도 그리하여 스토리속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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