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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성공과 비즈니스 이야기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그리고 신명기 쉐마

by 코리안랍비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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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라이즘 vs. 헬레니즘

어떤 철학자가 말하기를 “세상의 모든 것은 대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라고 하였다. 질문을 통해서 생산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공부하고 연구함으로서 발전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반드시 생산과 성과를 거두게 되어 있고, 질문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어 있다.

어떤 분이 나에게 지금껏 가장 훌륭한 질문중에 하나를 던진 적이 있다.

“선생님,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말해 주십시오?” 그 질문에 나는 곧바로 말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을 나는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고, 그 질문에 대한 찾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신학과정을 하고, 성서연구를 오래 하여도 이러한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질문에 내가 답하였다.

“헬레니즘은 컨콜디아(Concoldia)라는 지식의 산’을 향하여 올라가는 다양한 방법을 중심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헤브라이즘은 바로 에메트(Emet) 곧 ‘진리’에서 출발하여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목적에 맞게 파생시키고 구하는 것에서 그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대답을 하자, 그 질문자는 갑자기 일어나서 나에게 90도로 인사를 해주셨다. “무엇인가 큰 것을 얻은 것 같다” 고 하면서 극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헬레니즘의 대표는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지혜의 추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서양학문의 산파역할을 감당하였으며, 서양학문의 파운데이션(토대)를 구축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받은 지정의를 적극 사용하여 인간적인 노력으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특히 플라톤은 '철학은 플라톤이다'라고 할 정도로 추앙을 받았다.

  • 라파엘로 - 아테네 학당 - 구글출처 - 그의 그림 속 소피스트들을 찾아라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런데 유대인들은 성서와 탈무드라는 ‘진리의 책’으로 출발하여 자신들만이 ‘영적 토대 spiritual foundation'을 구축하였고, 이러한 토대가 민족성과 국민성으로까지 발전시켰다. 그 중심에는 모세라는 인물이 있고, 학사 에스라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물론 신약시대의 위대한 랍비 힐렐이나 샴마이, 그리고 수많은 랍비들도 있었다.

헬라인인들(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진리와 학문에 대한 추구와 열정은 서로 대단하였다. 지혜와 능력을 구하기 위한 양기둥으로서 각축전을 벌여왔다. 헬레니즘이 압도적인 우세를 벌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서 유대인들의 흩어짐을 통해서 발전해나갔다.

거두절미하고 그럼 현대에 들어와서 헬레니즘이 이길 것인가? 아니면 헤브라이즘이 이길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래서 어느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청중들의 10명중에 9명이 ‘헤브라이즘이 이깁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바로 진리에서 출발한 헤브라이즘이 세상의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만들고,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들을 만들어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메트(진리)에 대해서 유대인 랍비들은 “진리란 처음과 중간과 그리고 마지막이다'라고 가르쳤다. 여기서 히브리어 알파벳에 ‘에’는 알레프를 말한다. 그리고 ‘메’는 ‘맴’으로서 중간을 ‘트’는 ‘타브’라고 하여서 마지막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처음이요 나중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히브리어 단어는 ‘에무나’ 즉, 믿음과 같은 어원이다. 즉 진리와 믿음은 함께 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지성과 신앙이 함께 가는 것을 말한다.

진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곧 지성과 신앙을 겸비하는 것이다. 유대인 교육의 우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대인 교육은 토라(율법)라는 종교적 교육과 더불어서 직업과 관련된 세속적 교육이 서로 결합된 교육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서 과도한 비즈니스(사업)에 지배되기보다 하나님의 율법(토라)에 더욱 자신이 지배되기를 더 중시하였다.(Rabbi Meir 랍비 메이어, 아보트 4장 10절)

지혜의 왕 솔로몬(히, 슐로모)의 잠언 1장 7절에 이러한 교육원리가 담겨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신명기 6장에 언급한 것을 신명기 11장 19절에 다시 언급한 것을 보면 자녀들에 대한 유대인 부모의 ‘진리교육’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다.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라고 나온다.

  • 쉐마 - 이스라엘 -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에하드
    네이버출처 이미지



기독교는 ‘설교’가 강조되고, 유대교는 ‘강론’이 강조된다.
교회가 설교에 치중하다보니 강론이 약하다. 교리를 잘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상당히 약하다. 즉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연구하고 서로 토론하고, 해석하고 해설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성서이해’가 부족한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이 많다.

헤브라이즘은 곧 진리추구에서 출발하여 세상을 밝게 빛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도 ‘질문과 강론’을 통하여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지혜와 능력을 더욱 얻으려고 애써야 한다.

지금 21세기 현대로 오면서 갈수록 헬레니즘의 영향력은 떨어지고 헤브라이즘의 영향력은 갈수록 세력을 얻고 있다. 진리에서 출발하여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과 사상이 더욱 지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감사하게도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공동의 추구를 한다는 것이 또한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지성과 신앙을 같이 겸비한 사람, 인성과 감성이 잘 조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그런 사람들은 저물어갈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멀리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것이다.

 

 
  • 책을 읽은 사람-책을 안 읽은 사람의 -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세상을 보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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