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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인문학 칼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시와 칼럼과 에세이

by 코리안랍비 2025. 4. 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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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인문학 김재훈 원장 칼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탈무드 인문학 김재훈 원장 칼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보는 것과 듣는 것 어떤 교회에서 강연을 부탁받아서 간 적이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자 어떤 지성적인 한 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결정적인 차이를 말씀해 주십시오.”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하나님께 답변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잠시 후 “헬레니즘과 헤브라임의 결정적 차이는 헬레니즘은 진리를 향해서 가지만, 헤브라이즘은 진리에서 출발합니다.” 즉 그리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은 철학과 수사학, 예술과 건축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진리를 향하는 수 많은 길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헤브라이즘은 진리(히, 에메트)에서 출발하여 수 많은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진리는 곧 수 많은 길이 아니라 단 하나의 길입니다.(하나님의 말씀) 그렇게 설명하자 그분은 상당히 놀라운 가르침을 받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놀라운 차이점은 헬레니즘은 보는 것, 즉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합니다. 반면에 헤브라이즘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유대교는 듣는 종교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하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명기 6장 4절)  그리스는 예술, 건축, 조각, 연극(시각 예술)에서 뛰어났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그리스는 결코 능가할 수 없는 위대함을 이루었습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유럽에서 가장 눈부신 예술적 개화는 본질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세계와 기술을 재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에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서양에 대한 그들의 공헌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각이 아니라 청각에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눈의 문화가 아니라 귀의 문화의 가장 뛰어난 사례입니다. 이교도나 다신교인들은 신의 존재를 형상화하여 그저 바라보고, 유대인은 신을 듣고, 즉 신의 뜻을 이해합니다. 유대교와 그리스 사상은 우리가 기독교라고 알고 있는 종교에서 합쳐졌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술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사랑하고, 유대인들은 능력을 사랑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사랑합니다. 

 

지금 세상은 마치 겉으로 보면 그리스식의 보이는 문화가 지배하는 것 같지만, 유대식의 듣는 문화가 이기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지식집단, 부자집단, 신앙집단을 이룬 것을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바로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소리, 자연의 소리, 인간의 소리를 잘 듣는 들을 귀를 가져야 합니다.  유대인의 영혼에 새겨진 단어는 셰마 이스라엘 , "들으라, 이스라엘아."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기도를 드릴 때 반드시 눈을 오른손으로 가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의 표시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말을 할 때 왜 눈을 가리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잠깐이라도 시각의 세계를 닫아서 소리의 세계, 창조의 세계가 아니라 계시의 세계, 하나님의 역사의 세계가 아니라 말씀의 세계로 더욱 온전히 들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영혼에 열린, 주의 깊은 침묵을 만들면 들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경청을 보이는 것보다 위에 놓으십시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고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요셉)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각된 이미지, 시각적 표현 및 아이콘을 금지합니다. 이것이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선지자 엘리야가 만난 위대한 만남에서보다 더 심오하게 설명된 곳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봄(Seeing)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들음(Hearing)에서 납니다.(로마서 1장 17절) 우리는 이 엘리야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부드럽고 세미한 음성(קול דממה דקה)을 들으십시오.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큽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 위에 서라. 여호와께서 지나가려 하심이니라.' 그러자 크고 강한 바람이 산들을 찢고 여호와 앞에서 바위들을 깨뜨렸으나 여호와께서 바람 속에 계시지 아니하더라. 바람이 지나간 후에 지진이 있었으나 여호와께서 지진 속에 계시지 아니하더라. 지진이 지나간 후에 불이 있었으나 여호와께서 불 속에 계시지 아니하더라. 불이 지나간 후에 부드러운 속삭임이 있었더라. 엘리야가 그것을 듣고 외투를 얼굴에 두르고 나가서 동굴 입구에 섰더라.(JPS 열왕기상 19잘 1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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