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강력한 권력이 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책을 읽다가 발견한 경구입니다.
'철학은 강력한 권력이 된다'는 말 한마디속에
담긴 쇼펜하우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대학 1학년부터 철학서적들을 읽어 왔던 나이지만
이제는 철학서들이 '친근'하기만 합니다.
어려운 철학서를 그저 쉽게, 아주 쉽게 이해하는 단계에 올라서있는데 이제는 지천명을 맞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그 당대에 3,40대의 나이에
지성의 최고조를 보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사고의 껍데기만 추구하는 사람인 것입니니다. 자신의 사상, 자신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그저 학자적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철학은 권력이다' 라는 것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아니면 에술권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권력입니다.
정치의 역사는 의지의 역사입니다.
문학과 예술의 역사는 지성의 역사입니다.
정치의 역사라는 것을 보면
불안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두렵기도 합니다.
정치판은 마치 개들의 싸움과 비슷합니다.
거기에는 불안, 사기, 배신과 비리, 서로의 정적을 죽이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곳이 바로 정치판입니다.
정치학을 오래전에 공부를 해 보았는데
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다릅니다.
현실정치는 정말 이전투구의 장입니다.
반면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도 권력의 길로 들어서면 잘못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문학과 예술은 우리 삶의 활력소요 즐겁고 명랑한 일입니다. 문학과 예술은 지난 수십세기가 넘도록 역사속에서 생존해 왔고, 꽃을 피워왔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문학을 만나고, 정치가 예술을 만나면
곧 권력의 환타지를 갖게 됩니다.
사람들이 왜 권력자를 좋아하죠?
그것은 바로 권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권력이 좋아서입니다.
그 권력이 어느 날 사라지면 그 권력자도 곧 사라집니다.
아니면 적어도 잊힙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말,,, 필경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을 더 해보아야 합니다.
정치나 문학, 그리고 예술에도 역사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철학도 존재합니다.
사실 철학의 역사는 다른 모든 역사의 기본 바탕을 형성해왔습니다. 철학은 마치 샘의 근원에 가깝고, 거울에 가깝습니다.음악에도 미술에도 철학은 존재합니다. 건축에도 철학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라는 것은 사실 [철학이 그 중심]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철학이 없는 인문학은 상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철학이 없는 정치, 문학, 예술은 정말 추하고 더러운 권력의 장난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고, 수려해 보이지만 껍데기를 벗고, 환상을 벗어보면 결국 남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철학자는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알고보면 전 세계를 지배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인하고 부정해도 철학의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합니다. 우리 몸도 우리의 마음이 지배하는 것처럼 철학은 지금껏 우리 세계를 조용히 지배해왔습니다.
정치철학을 보십시오.
민주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 등 수많은 정치사상도 사실 그 바탕에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근원부터 파헤치며 사상을 창의적이고 천재적으로 만들어온 사상가들의 철학이 이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철학을 그저 철학과의 과목처럼 여기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철학함을 추구하지 않는 지성의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철학을 잘 이해하면 가장 강력한 현세의 권력이 된다고
쇼펜하우어는 본 것입니다. 물론 철학은 바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 영향은 매우 서서히 나타납니다.
철학은 그저 유희의 학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근본을 헤아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생각의 집합체가 철학입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의 무늬를 다루는 학문분야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길[ 도, TAO] 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길을 끝까지 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간다는 것은 곧 전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간다는 것은 곧 전체를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 삶 속에서 철학이 드러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철학이 권력이되려면 곧 우리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추구하는데서 온다는 것과 자유함을 얻으려는 노력에서 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철학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연일 뉴스들을 보면 화가 나고 분노가 납니다. 온갖 나오는 소식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생쥐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철학의 부재를 무섭게 봅니다. 철학의 부재는 곧 우리 영혼의 만족감을 갖지 못하는데서 오기도 합니다. 영혼의 만족감은 곧 자유와 평안입니다. 자유와 평안과 반대되는 현대정치와 문화, 문학과 예술, 심지어 낮은 사유의 거짓 인문학들이 판을 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눈과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철학으로 내 삶의 권력을 삼는 사람은
다른 것에 치우치는 것과 연연하는 것을 멀리합니다.
소인배의 수준에서 머무는 것과 얕은 물에서 노는 것을 멀리합니다. 동양의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도와 덕'을 추구하게 됩니다. 철학은 그리하여 자유와 내적인 이길 힘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서 [철학읽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가 동화책을 읽고서 자신의 삶을 비전의 밑거름으로 삼듯이, 청년은 철학서를 읽고서 자신의 삶의 바탕을 형성하여야 강하고 튼튼한 철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지혜, 용기, 절제, 덕행을 근본으로한 '철학적 권력'은 기존의 권력과는 달리 사악하거나 추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강건하고 명랑하며 편하고 자유로운 것입니다.
젊어서는 이성의 힘과 생각의 힘을 찾거나, 근육의 힘, 육체의 힘을 기본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감성의 힘, 마음의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돈과 권력을 나이들어도 크게 추구한다면 결국 돈을 벌고, 권력과 명예는 어느 정도 얻겠지만 곧 크게 잃는 것도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젊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비뚤어진 세계관을 평생 머리속에 지고 살았다면, 나이가 먹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갑자기 모든 사물과 관게에 대한 단순하면서 명확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깨달음이 없이 그저 '나이만 먹는 허무함'은 여전히 그릇된 자기 세계에 머무는 사람이 됩니다.
철학은 강력한 권력이 되어가는 순간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없어질 권력이 매이지 말고 사라지지 않을 권력... 자유와 평안의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어나가십시오.
그래서 권해주고 싶은 철학서가
바로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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