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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와 코칭 & 멘토링

주제가 있는 하브루타와 자기 목소리의 중요성

by 코리안랍비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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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의 본질을찾아서 
#공부법 - 무단전재 절대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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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하브루타와 자기 목소리의 중요성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제대로 알려고 여러 가지 책을 읽다가 문득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서양의 문화는 말하기 중심 문화이고, 동양의 문화는 듣기 중심 문화라는 것입니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이론을 밝히기 위해서 ‘레토릭- 수사학’이나 ‘화술 또는 화법’이 발달하였습니다. 물론 동양에서도 어느 정도 ‘말하기 기술’에 대해서나 ‘대화의 기술’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은 ‘경청’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을 강조하여왔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많이 하고, 그리고 말을 많이 하면 사람이 경박해 보이거나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자의식(自意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령 식사 할 때는 ‘소리 내지 말고 먹어라’ 라든지, 수업을 받을 때는 ‘선생님의 목소리만 들려야 한다’ 는 것 등의 분위기나 관념이 강합니다.

 반대로 서양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대화와 친교를 잘합니다. 한국에 온 여러 미주나 유럽 친구들을 보아도 참 말을 잘합니다. 이들은 ‘말하기 중심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유대인 친구들을 보면 정말 말을 잘합니다.
말을 너무나 잘하니 교수나 변호사들이 참 많습니다. 또한 언론인들이나 작가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말을 잘하기 위해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질문하며 배웁니다. 또한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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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생각보다 남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서 살아갑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밝힌 통계를 보면 ‘한국인들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남이 만들어놓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눈치보고 한눈을 파는 정서가 강하여서 그렇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경우 일찍부터 탈무드와 토라의 영향을 받아서 말하기는 물론이요 글쓰기에도 능한 [문해력]이 높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이들은 서로 대화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코스를 갖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알게 모르게 스며 들어 있는 하브루타 정서’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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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이스라엘 땅에서는 [하브루타]라는 단어를 들어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문화적으로 스며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최소 2명 이상의 친구들이 모여서 어려운 문제나 난제들을 같이 풀어 나갑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간의 얼굴을 한 학문인 - 인문학]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곡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노래를 음반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콜라보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공부라는 것의 본질은 바로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리고 서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에서는 ‘같이 공부하며 배우며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는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할까요? 바로 그것이 ‘사회성’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보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은 결코 배우는 것에 자신감이 없거나 오래 걸립니다. 도리어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배우는 것에도 자신감이 강하고 힘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지식이나 배움이 많습니다. ‘사교성’이 강한 사람이나 ‘사회성’이 강한 사람은 그것이 매력이 되기도 하고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 여기며 많은 이들이 기꺼이 같이 있고 싶은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거기에 유모어나 위트가 더해지면 그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많이 받습니다.

‘하브루타의 본질을 찾아서’ 를 오랫동안 연구한 바로는 우리가 하브루타를 잘 하려면 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텍스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빗 호킨스 (David Hawkins)라는 교육철학자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밝히기를 사람들은 3가지 목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그의 에세이의 제목이 ‘I, Thou and it'입니다.
I는 나 자신인데 이 이니셜이 마치 숫자 1번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나 먼저’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호킨스 박사가 말하는 ‘나’라는 존재는 학습에 있어서 ‘적극적인 배우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는 러너(learner)가 됩니다. 학습자요 배우는 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 학습자다] 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Thou가 있습니다. 이는 You로서 ‘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킨스 박사는 thou는 Teacher 라는 의미를 붙였습니다. 상대방을 볼 때 그를 ‘선생’으로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한국 문화에서 선생이라고 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의 의미라기 보다는 ‘교수나 교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킨스 박사는 ‘너의 의미를 확대하여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마치 교수나 교사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it가 있습니다. 이는 ‘텍스트 text'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텍스트’라고 하면 범위가 넓어지거나 아예 접근하기 힘든 기분을 갖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텍스트라기보다는 subject 또는 topic 주제로 보고 싶습니다.


<하브루타 인터렉션 Havruta interaction>
교육학에서도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주제를 제대로 정해야 ‘하브루타 익터렉션 Havruta interaction’이 일어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텍스트를 공부하기 위해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학습스타일을 유지해 왔습니다. 유대인들의 텍스트는 너무나 방대하고 그 내용도 어마어마합니다. 그것은 ‘축적된 지식이요 축적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은 ‘주제가 있는 하브루타’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두 사람이나 그 이상이 모여서 ‘불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하거나 대화를 한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아무런 생각도 안날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나 유대인들은 그러한 주제에 익숙합니다.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고 체화된 ‘토론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자기 생각과 의견을 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텍스트들이 많습니다. 그 텍스트들의 중간 중간에는 ‘불안’에 대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아마도 랍비들이 한 말들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이나 사회학 또는 생물학에 나오는 하브루타와 유사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DYAD 다이에드입니다. 이는 ‘두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와 유사한 단어가 바로 ‘튜터링 Tutoring'입니다. 하나는 선생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이 되는 구조입니다. 어떤 연구서를 보니 아직까지 또래나 동무의 다이에드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민할 것은 ‘어떻게 친구간에 직접적인 교육에 참여하고, 그리고 어떻게 서로 학습의 자원을 공유하고, 지식을 형성할 것인가?’입니다.

제롬 부르너 라는 위대한 교육학자는 ‘교육이라는 것은 거대한 문화적인 삶의 방식을 체화하는 것이며 그 문화적인 삶의 방식을 계속해서 펼쳐나가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The culture of Education - 캠브리지-하버드 출판부 1996)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펼쳐 왔던 방식이 아닌 문화적인 접근에 철저히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고,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한국 문화는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하브루타를 하기에 아주 좋은 문화적 토양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습자들로서의 또래나 동무가 중요합니다. 이들은 ‘동문수학’을 한 사람입니다. 학습이라는 것은 반드시 파트너쉽을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참여할 때 학습효과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텍스트나 주제에 대한 책임감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3 주체가 바로 ‘보이스 -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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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가치를 높여라>
하브루타 학습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문화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습은 ‘지식의 가치’가 제일 중요합니다. 잘못된 지식은 잘못된 답을 제시합니다.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어야 제대로 된 답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자들은 반드시 ‘정확하고 높은 수준의 지식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배우기를 멈추거나 독서하기를 게을리 하는 식의 행동’은 철저히 배제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하브루타 활동의 구조는 ‘두 사람이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서로 참여하여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교육철학서를 보면 ‘지식이 있어야 지식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준비된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먼저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브루타는 ‘상호의존성 interdependence'를 가져야 합니다.
하브루타에서 물론 사람이라는 존재를 파트너로 정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브루타를 복수형으로 만들면 ‘하브르토트 Havrutot'입니다. 그렇다면 텍스트도 파트너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텍스트도 자기의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글이라는 것을 보면 그 글이 마치 말하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조용히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 글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그래서 말과 글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3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어머니의 목소리, 둘째는 아내의 목소리, 셋째는 네비게이션의 목소리 라고 합니다.

하브루타를 하는 사람은 3 파트너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바로 나의 목소리입니다. 내가 소리를 내면 귀는 자동적으로 동시에 듣습니다. 그런데 내가 들어도 좋지 않은 말은 귀를 고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내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곧 문화입니다. 문화적인 품격이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상대방과 대화하고 사귐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하브루타 파트너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두 사람이 듣게 됩니다. 목소리와 경청은 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너는 곧 ‘하브루타를 하는 텍스트나 서브젝트’에 서로 링거를 꽂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텍스트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텍스트가 없다면 그저 ‘수다’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수다들의 특징은 심리적인 위안은 되지만 교육적인 효과나 논리나 이성의 발달은 적습니다.

하브루타는 철저히 유대인들이 소산입니다. 그리고 전통입니다. 그리고 문화이고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브루타를 유대인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대인하면 하브루타, 하브루타하면 유대인이라는 등식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비유대인들에게 하브루타는 바로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텍스트나 주제를 가지고 읽고, 해석하고, 토론하며, 배우고 지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가장 큰 ‘교육전략 educational strategy'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만 모이면 얼마든지 여러 생각과 의견들이 나옵니다. 인문학적인 순간을 경험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만들어지고, 참여하면서 사회성과 사교성도 높아집니다. 하브루타를 함으로서 우리는 진정한 ‘배우는 자 learner'로 서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가면 갈수록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구분이 됩니다.

‘계속적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습니다.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옵니다.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21세기는 ‘공감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호모 엠파티쿠스 - 공감하는 인간’이 대세가 된다고 합니다. 하브루타는 ‘공감하는 인간’을 만듭니다. 협력적 활동은 바로 ‘파트너와의 우정’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나 홀로족이 늘고 있는 시대는 ‘우울한 시대상’입니다. 성서 창세기도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반드시 하브루타 친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학습보다는 핛습자 친구를 만드는데 주력한다고 합니다. 학습이나 교육의 방법이라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습자와의 교감이고 공감입니다. 서로 신뢰관계를 형성하면서 기꺼이 ‘서로가 챌린지’할 수 있는 ‘하브루타 트레이닝’을 자주 가져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케 해 줍니다. 하브루타 프렉티스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좋은 텍스트나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다시 잠언 27장 17절로 나의 글을 마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질문-짝토론-모둠토론-발표-전체토론으로 이어지는 하브루타
    구글출처 - 하브루타 미래포럼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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