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의 매력
(김기철 논설위원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의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였다. 그는 아들이 법률가가 됐으면 했다. 세잔은 아버지 뜻을 따라 법대에 갔지만 화가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다. 1866년 스물일곱 살 세잔이 그린 아버지는 소설가 에밀 졸라가 인상파를 옹호하는 칼럼을 싣던 일간지 '레벤망'을 읽고 있다.
세잔은 육친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한 해 전에도 의자에 앉아 신문 읽는 아버지를 그렸다. 신문은 세잔과 아버지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몇 해 전 주최한 신문읽기 논술대회 수상작엔 신문의 매력에 대한 경험담이 가득하다. 한 중학생이 쓴 글은 이렇다. '신문은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한다. 며칠 전 신문을 꼼꼼히 뒤지다 '밥상'을 발견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면은 밥과 김치, 된장찌개다. 특집은 특별메뉴 삼겹살, 기획은 계절나물 무침과 장아찌, 어린이 지면은 메추리알 조림 같다. 밥상만 받고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소용없다.' 생생한 비유가 미소를 머금게 한다.
▶ 뉴욕타임스 IT 전문기자 파하드 만주가 지난주 쓴 칼럼 '두 달간 종이신문만 봤더니'가 화제다. 그는 두 달간 스마트폰 뉴스 앱을 껐다. 대신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신문 3종과 주간지 하나만 집에서 읽었다. 쉴 새 없이 긴급 속보를 알리던 스마트폰을 끄고 나니 괴물에서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달간 그는 책을 여러 권 읽었고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더 나은 남편과 아버지가 됐다고 썼다.
▶ '온라인에선 뉴스 자체보다 논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논평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킨다.' 파하드 만주는 종이신문 읽기는 외롭지만 뉴스와 직접 만나는 기회라고 했다. 스마트폰에서 쏟아내는 부정확한 정보 대신, '진짜 뉴스'만 가려 전달해주는 게 종이신문의 미덕이라고도 했다. '수백 명의 전문가가 나를 대신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서 집까지 배달해준다.' 파하드 만주가 실은 두 달간 트위터를 계속했다는 폭로가 뉴스로 나올 만큼, 미국 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파하드 만주의 칼럼을 접한 건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서였다. 부부가 침대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뉴스 중독' 시대다. 대화는 사라지고 불필요한 정보는 넘쳐난다. 신문엔 정확하고 깊이 있는 뉴스를 싣기 위해 취재부터 배달까지 사람 손을 거친 정성과 온기가 배어 있다. 종이신문만 줄 수 있는 별미(別味)다.
나는 종이신문을 늘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가 그랫듯이... 아버지는 하루에 3부의 신문을 읽으셨다.
그리고 중요한 기사나 읽을 거리는 반드시 스크랩을 하여서 보관하셨다.
나도 그렇게 작업을 한다. 이제는 스크랩을 한 것을 서가의 책속에 꽂아 놓는다.
종이신문의 매력은 [정론에 기초한 것]이다.
요즘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를 진짜 뉴스처럼 착각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하루에 3부의 신문을 보고 섹션별로 정리를 하여서 책속에 담아 놓는다.
예를 들어서, 어느 인물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반드시 그 인물과 관련된 책속에 담아 놓는다. 가끔씩 고호에 대한 기사가 있으면 정말 신이 나고 즐겁다.
한국은 [문자의 나라]이다. 한글과 한문이 같이 어우러져 있고, 영어와 다른 외국어도 어우려져 있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신문읽기가 취미인 나로서는
풍부하고 해박한 지식의 보고, 상식의 보고가 신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보던 신문을 하나 더 늘리려고 한다. 그리고 잡지도 늘리려고 한다. 매달 5종류의 잡지를 구독하는데, 2-3부 늘려서 읽으려고 한다.
나의 별명은 [걸어다는 백과사전]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물어본다. 그렇다고 다 대답해 줄 수는 없다. 아는 범위에서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반드시 펙트에 기초하여 설명해주고 아이디어를 나눈다.
나는 인문학 강사의 길도 걷고 있다.
그러다보니 신문과 잡지가 최고의 인문학 강의 소스가 된다.
여러 훌륭한 사람들의 글을 읽고, 정리를 하여서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도
참 즐겁다.
나는 또 칼럼니스트의 길도 걷고 있다.
외국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요즘은 싱가폴에 기사를 보내고 있다.
하나의 칼럼을 쓰기 위하여 적어도 2-30개의 자료를 들어야 보아야 한다.
그런데 늘 신문이 큰 도움을 준다. 새롭고 따끈따끈한 기사를 보면
경제가 보이고, 정치가 보이고, 미래가 보인다.
종이신문을 다시 들여다 보기를 강권한다.
만 오천원으로 만나는 신문읽기의 행복에 빠져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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