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이 눈물나게 고맙다.
교회를 출석해보면 교회사람들은 안녕하세요? 라는 말과
안녕히 가세요 ! 라는 두마디 인사만 나누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어색해지고 여전히 데면데면한 순간이 너무나도 많이 생긴다. 때로는 내가 까뮈의 ㅡ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10년은 지나야 말문을 열고 튼다. 이상한 일이다.
나의 경우는 10년이 지나야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안부를 묻곤 한다. 안부가 어려운 것은 아닌데도 오래 걸린다.
평소 말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나자신으로서는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벽이기도 하다.
내가 다가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내게 오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인하여서 급속도로 친해지거나, 가까워지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충청도에서 느끼는 인간적 멘탈리티 일수도 있다. 지역색은 아직 무시 못하는 요소인가보다. (주관적인 생각이다. 지나친 일반화는 아니더라도....)
평소에 인사만 주고 받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그저 얼굴만 아는 존재로 인식되어진다.
그것을 나는 '피상성'이라고 부른다.
피상성은 그저 겉으로만 보는 것인데, 관찰이나 통찰의 개념은 거의 없다. 피상성은 쉽게 말하면 껍데기나 겉만 보는 겉치레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어떤 평안함이나 안도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말로든, 몸으로든, 표정으로든 언어를 통해서 사상과 감정을 전달한다. 단순한 인사치레식의 말투는 제대로된 언어사용습관이 아니다.
그래서 피상성을 벗는 언어를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안부를 물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바르고 편한 인간관계의 따스함이 더해지지 않는다.
"잘 지내십니까?" "건강은 어떠세요?" "요즘 하시는 사업은 잘 되어가십니까?" "오늘 기분은 어떠십니까?"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좋은 셔츠를 입으셨어요" 등등으로 가볍게 물어주면 즐겁게 답변해 준다.
안부를 물어주는 연습만 해도 서로의 거리감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피상성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참으로 지대하게 많다.
하지만 피상성을 갖게 된 이유도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불신풍조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익명성을 중시여기는 사고방식도 작용한다. 그 익명성이 관계를 막는 벽이 된다.
그래서 사회에서 친구를 맺는 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갖기 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다른 계로 살아와서 그렇다.
세상에는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벽을 쌓는 사람들과 다리를 놓는 사람들
자세히 보니 나는 이 두부류에 모두 걸쳐있다.
[나와 너] 라는 명저를 남긴,
마르틴 부버는 "사람이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그만큼 놀라운 일이다. 그러니 오픈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온도가 따뜻하거나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사람을 얻기는 힘들다. 사랑과 인정도 얻기는 힘들다.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도인가?
아직도 차갑다면 온도를 올릴 필요가 있다.
그저 피상성이나 익명성에 기초하여 사람들을 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필경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정이 가지 않는 것이다. 정이 가야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만족을 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관계가 성공하는 것이다. 한사람은 곧 세계이니까...
절대만족은 없다. 상대만족이 있을 뿐이다.
한 사람과 깊은 교제와 사귐이 있다면
그것도 외로움이나 심심함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처방이다. 지란지교이다.
가끔씩 안부를 물어주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가끔씩 내가 안부를 물어줄 사람이 있다면 이것 또한 고마운 일이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다.
말문을 여는 것은 곧 마음을 여는 것과 같다.
따뜻하고 친절한 말한마디가 절실할 때가 있다.
과연 내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면 본인이라도 그런 말을 해주고자 노력한다면
필경 환영받는 일이 될 것이다.
HOSTILITY 하스탈러티 적대감을 HOSPITALITY 하스피탈러티 환대(환영)으로 바꾸는 연습은
바로 나의 언어습관이나 언어의 온도에 달려 있다.
결국 마음이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마음으로(heart to heart) 이어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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