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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역동하는 ‘성경 역사박물관’

이스라엘 이야기

by 코리안랍비 2025. 6. 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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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 이스라엘을 가다] 살아 역동하는 ‘성경 역사박물관’

 
 

(2) 성지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역사

복잡다단한 지금의 예루살렘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스라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성지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는 것 역시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성지(聖地)중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오늘날까지 무려 30여 차례 정복당하고, 10여 차례 심한 파괴를 당한 비운의 땅이었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수많은 전쟁과 파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이라는 세 대륙의 교차중심지에 이스라엘이 있기 때문이다.
숱한 질고를 겪으면서도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적·문화적 유물들이 잘 보전되고 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도 하다. 곳곳에 산재한 이스라엘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방문하노라면 생동감이 넘친다. 아니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서 역동하는 역사를 만나게 된다.
‘성지에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발자취’에 이어 이번 호는 이스라엘 관광청이 추천한 장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이스라엘 역사 키워드 ‘예루살렘’ 예수 공생애 다양한 흔적 품어
사해 인근 광야·마사다에서 하나님 향한 ‘영적 공간’ 의미 깨달아


예루살렘 유적지-다윗망대, 다윗왕 무덤, 마가 다락방 등

▲ 다윗망대.
예루살렘은 예나 지금이나 문화의 중심지로서 성지뿐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주요한 몇 가지만 만나보자.

지금의 예루살렘은 수차례 붕괴와 재건을 반복하다보니 옛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건축물과 유적들이 다수 있다.

지금의 이스라엘을 이야기하면서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빼놓을 수 없다. 서쪽벽이라고도 부르는 통곡의 벽은 헤롯왕 때 쌓은 성벽 중 일부분이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통곡의 벽이란 명칭은 예수님이 죽은 뒤 로마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인 비극을 지켜 본 성벽이 밤이 되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와 유대인들이 이곳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유대인들의 민족적 집회와 군인들의 선서식, 만 13세가 되었을 때 행하는 성년식이 이곳에서 거행할 정도로 유대인에게 있어 통곡의 벽은 중요한 성지다. 매일 통곡의 벽에서는 기도하는 유대교 종교인들과 소원을 비는 유대인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성벽 사이에는 자신들의 소원을 적은 기도쪽지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통곡의 벽은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다.

▲ 통곡의 벽에서 경전 읽는 유대종교인.
예루살렘 옛 시가지 안에는 욥바문(Jaffa Gate) 옆에 <다윗망대(Tower of David)>가 있다. 이는 다윗시대의 망대가 아니라 군사적·행정적으로 중심이라는 것을 나타나기 위해 이름을 다윗망대라 붙었다고 한다. 다윗망대 안에는 고고학 박물관과 전망대가 있다.

예루살렘성 외부에는 시온문(Zion Gate) 인근 <마가 다락방>과 그 아래층에 <다윗왕의 무덤>이 있다.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 후 최후의 유월절 만찬과 성찬예식을 한 곳이다. 또한 부활 후 이곳에 나타나셔서 11명의 사도와 여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이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으며, 승천 후 120명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한 곳이다.

요단계곡 유적지-마사다, 엔게디, 사해 등

이제 예루살렘을 벗어나보자. 우선 사해가 있는 동쪽지역이다. 해수면보다 약 400미터나 낮은 사해로 가는 길은 계속되는 내리막이었다. 사해로 가면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유대광야>다. 황량한 이 광야에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외쳤으며,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사람이 북적이는 도시 바로 옆에 광야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없는 것이 없고, 돈만 있으면 언제든,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자판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광야’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광야와 같은 공간이 꼭 필요하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광야는 하나님 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유대광야를 끼고 가다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과 지중해와 같은 해발을 나타내는 <씨 레벨(Sea Level)>,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여리고(Jericho)>를 볼 수 있다.

여리고를 끼고 조금 달리다보면 죽음의 바다, <사해>(염해)와 건너편 요르단의 느보산이 눈에 들어온다. 사해의 염도는 약 30%나 돼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다. 지금은 휴양과 사해의 염도를 체험하기 위한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알려졌다. 염도가 높다보니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냥 물에 뜬다. 피부미용에 좋다하여 사해의 검은 진흙으로 팩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체험이다.

사해를 좌측으로 끼고 남쪽으로 한참을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멀리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Qumran)>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숨어 지냈던 <엔 게디(En Gedi)>를 뒤로하고 있는 <엔게디 키부츠>에 잠시 들렀다. 1953년에 설립된 엔게디 키부츠는 사해 지역 최초의 키부츠로서, 현재는 농사가 아닌 관광으로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독특한 식물과 나무를 볼 수 있다.

▲ 가이사랴 항구모습.
<마사다(Masada)>는 이스라엘 방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 중의 하나다. 마사다는 사면이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난공불락의 요새지다. 마사다는 헤롯왕 시절 30년에 걸쳐 마사다에 궁전을 지었다. 마사다에는 저수장, 곡식창고, 목욕탕, 회당 등 각종 건물이 있었다. 헤롯왕 이후 주후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켰고, 70년 8월 로마의 디도 장군(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했다. 이때 이스라엘의 일부 저항군들이 마사다로 피신해 3년 가까이 끝까지 항전한 곳으로, 토담경사로를 만들어 공격해 오는 로마군에 죽거나 노예가 될 수 없어 모두 자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대인들에게 마사다는 통곡의 벽과 홀로코스트로 유명한 <야드 바셈>과 함께 민족정신을 높이는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갈릴리와 지중해 유적지-벳산, 가이사랴

갈릴리지역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에도 많은 유적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르엘 계곡 동쪽에 위치해 있는 <벳산(Beth Shean)>. 성경에 벧스안, 벧산이라고도 기록된 곳으로, 기원전 3000년경부터 도시가 형성된 것으로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벳산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시 므낫세 지파에 분배한 지역이었지만 정복하지 못한 곳이며,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한 사울왕과 세 아들의 시체가 성벽에 못 박힌 곳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원형극장과 목욕탕, 화려한 거리 등 비잔틴 양식의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가이사랴(Caesarea)>. 가아사랴는 지중해안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고대부터 항구도시로 발전한 곳이다. 과거 신전과 원형극장, 시장, 주택지들이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로서, 지금도 활발하게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가이사랴에서는 로마시대와 십자군시대, 마므룩왕조, 오스만 터키 등의 시대를 아우르는 영상물을 볼 수 있다.

▲ 원형극장에서 본 벳산 모습.

협찬:이스라엘 관광청,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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