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법정 명상에세이
며칠전부터 법정 스님의 지나간 수상록들을 다시 봅니다.
원래 수필이라는 말은 몽테뉴의 에세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몽테뉴의 에세를 한자로 바꾸어보면 [수상록]이라고 합니다.
수상록은 원래 일기처럼 개인적인 감상을 드러내면서도
논문처럼 학술적인 접근도 시도합니다.
그래서 에세나 에세이라는 말은 '시도' '시험' '경험' 이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지혜를 추구하는 인간의 경험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명하고 정말 유명한 몽테뉴의 수상록(Essais)도 좋지만, 실은 법정 스님의 수상록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 좋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들은 한마디로 줄여서 [인생철학]이며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평범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명상 에세이를 만나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어떤 책을 읽다가, 세상에는 3종류의 지식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산속에 들어가서 장자나 노자처럼 되는 부류가 있고,
하나는 세상에 나와서 싸우는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바로 경계인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말한 미셸 몽테뉴는 경계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경계에 있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도피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산속에 박혀서 도인처럼 살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불교라는 것에만 용왕매진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를 폄하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을 닮아서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해던 분입니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였지만 속에는 비범함을 둔 분입니다.
나는 그래서 그분을 [위대한 평범]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청빈하게 살았으며, 손수 텃밭을 가꾸고, 토끼와 고라니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수 꽁꽁 언 얼음을 깨서 손수 식사준비를 하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식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스님의 모습은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 특별할 것 없는 자연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홀로 사는 노스님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보다 외롭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문학가 나카노 고지는 "청빈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간소한 삶의 형태"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법정 스님을 통해서 청빈하지는 않아도 청부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함도 배웁니다. 법정 스님의 표현대로 하면 욕심을 비울수록 행복은 차오릅니다.
이렇게 글을 쓰지만 알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 자신입니다.
요즘 법정 스님의 책들은 새롭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중고로 사야 합니다. 오래전부터 그분의 책들을 모아온 나로서는 다행히
그분의 책을 7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법정하면 [무소유]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단 1권의 책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1권의 책을 읽은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2010년도에 소천하면서 법정 스님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책을 새로이 출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중고서적만을 사거나, 아니면 한정판으로 판매가 되어집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분의 책을 7권이나 갖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저 이러한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안되고, 반드시 누군가의 글로서 다시 나타내고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은 그분의 명상 에세이를 가져왔습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의 대목을 남겨봅니다.
새가 깃들지 않은 숲을 생각해보라.
그건 이미 살아 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 것과 다름이 없다.
세상에 온통 입만 열만 하나같이 경제 경제 하는 세태다.
어디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삶의 가치가 있는지 곰곰히 헤아려 보아야 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경제만은 아니다.
행복의 소재는 여기저기에 무수히 널려 있다.
그런데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가슴을 우리는 잃어가고 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993년도 4월 에세이)
그분은 또한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쏘로우를 너무나 흠모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을 찾았던 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그래서 [거룩한 가난]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고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사에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갖고 삽니다.
그런데 이것은 집착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나머지 정작 본인을 알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결과를 얻습니다.
일종의 거대한 상자속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 상자밖으로 나와야 상자를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생기를 얻으려면 세상의 소식에 어느 정도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며 우리 안에서 찾고 일깨워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분의 에세이중에 다른 한편을 소개합니다.
보다 단순하게 간소하게
산속에서 살아가면 자연으로부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는 별로 모자람이 없다.
넘쳐 나는 각종 정보와 소식을 통제하지 않으면
그 속에 매몰되어 삶이 생기를 잃는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알지 않아도 될 일들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가.
<중략하고>
비슷비슷한 되풀이 속에서 수많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삶에 반복은 없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때 그때 단 한번뿐인 새로운 삶이다.
이 한번뿐인 새로운 삶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칠 수가 없는 것이다.
삶에는 이유도 해석도 붙일 수 없다.
삶은 그저 살아야 할 것.
경험해야 할 것.
그리고 누려야 할 것으로 채워진다.
부질업는 생각으로 소중하고 신비로운 삶을 낭비하지 말 일이다.
머리로 따지는 생각을 버리고
전존재로 뛰어들어 살아갈 일이다.
묵은 것과 굳어진 것에서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이끌어내고 형성해 갈 수 있다.
<중략>
당신이 차지하고 있는 그 소유가 바로 당신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야만 본질적인 내 삶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닐때
우리 둘레와 자연도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질 것이고,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도 또한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채워질 것이다. <1994년, 2월 20일 명상에세이>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지 모릅니다.
내일 일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사실 바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승이 필요합니다.
어른이 필요합니다. 이끌어줄 정신적 지주가 필요합니다.
얼마전에 사촌 형님이 말했습니다.
"나의 정신적 지주는 너의 아버지다.
너의 아버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말에 갑자기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대학 3학년 시절에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늘 책을 좋아하시고, 늘 사람들을 좋아하신 아버지는
여러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고 챙겼습니다.
글을 가르쳐주고, 책을 읽혀주고, 붓글씨를 가르쳐주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물론 자식인 나에게도 그리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승을 어디서 찾고, 어른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다만 다행인 것은 그런 분들이 남긴 책에서 찾을 수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요.
허구한 세월과 여과 과정을 거쳐서 살아남은 인류의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길을 열어보인다. 이런 지혜의 가르침을 받쳐 주고 있는 한,
인간의 뜰은 항상 새롭게 소생할 것이다. 새 봄이 움트고 있다. 저마다 겨울 동안 축적한 살을 활짝 열어보일 날이 다가오고 있다. - 법정
고전에서 우리의 삶의 방향과 가치,
그리고 목적과 지혜를 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요.
평범하지만 그러나 비범하게 살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요.
그렇게 약속해요. 감사합니다.
P.S.이번주는 법정스님의 수상록들을 살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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