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에게 보내는 초대
룻기는 많은 사랑을 받는 단편 소설입니다. 이러한 애정의 이유 중 하나는 이 이야기가 훌륭한 드라마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줄거리, 흥미로운 등장인물, 긴장감, 로맨스, 갈등,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들 등 그 이상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두 주인공이 사랑을 찾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러한 해석을 통해 이 책의 의도를 설명하고, 주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의 본보기로 보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작가들, 심지어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은 히브리인 독자들조차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도덕적 덕목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룻기 3장 11절에서 보아스는 룻을 "합당한 여자"라고 부릅니다. "합당한"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정직, 기술, 명예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룻기는 사사기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구약 성경의 여덟 번째 책이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잠언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잠언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누가 "합당한 여자"를 찾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잠언 31:10). 룻기는 잠언의 질문에 역사적인 예를 들어 답합니다. 보아스는 합당한 여자를 찾았습니다. 사실, 이 책은 보아스를 "합당한 남자"라고 부릅니다(룻기 2:1). 룻과 보아스의 정직한 성격은 확실히 본받을 만하지만, 도덕적 덕목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이 책의 목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룻기 3:11 에서 보아스는 룻을 "합당한 여자"라고 부릅니다. "합당한"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정직함, 기술, 명예를 반영합니다. 영어 성경에서 룻기는 사사기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구약 성경의 여덟 번째 책이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잠언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잠언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누가 "합당한 여자"를 찾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잠언 31:10 ). 룻기는 역사적인 예를 들어 잠언의 질문에 답합니다. 보아스는 합당한 여자를 찾았습니다. 사실, 이 책은 보아스를 "합당한 남자"라고 부릅니다( 룻기 2:1 ). 룻과 보아스의 올바른 성격은 확실히 본받을 만하지만 도덕적 미덕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이 책의 목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인간의 정직함에 대한 도덕적 이야기 그 이상의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사 시대(이 시기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사사기 주석 참조)에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시대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삿 21:25) 시대였습니다. 룻기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겨지는 다윗의 조상 에 대한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이야기는 룻과 보아스가 다윗의 증조부모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끝맺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정직함에 대한 도덕적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오실 왕을 예고합니다.(삿 21:25 ) 룻기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룻과 보아스가 다윗의 증조부모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끝맺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정직에 대한 도덕적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오실 왕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등장조차 이 책의 절정은 아닙니다.다윗 자신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 최후의 왕의 오심을 가리킵니다.룻기 마지막에 나오는 다윗의 족보(4:18-22)는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족보(마태복음 1:3-6)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습니다.두 족보의 유일한 차이점은 마태가 예수님의 조상에 라합과 룻이라는 두 이방 여자의 이름을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그렇게 포함시킨 한 가지 이유는 이방인도 하나님 나라에 포함된다는 현실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룻기의 영광스러운 결론은 메시아의 오심이며, 독자는 이 책을 공부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마태복음 1:3-6 ). 두 족보의 한 가지 차이점은 마태가 예수님의 조상에 두 이방 여인 라합과 룻의 이름을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함시킨 한 가지 이유는 이방인도 하나님 나라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룻기의 영광스러운 결론은 메시아의 오심이며, 독자는 이 책을 연구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목적
룻기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다윗과 그의 아들, 메시아 왕의 혈통에 포함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핵심 구절
“그러나 룻이 말했습니다. ‘저에게 어머니를 떠나라고,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재촉하지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저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룻기 1:16 ESV룻기 1:16 ESV
개요
룻기는 네 장면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장면 1: 모압에서 (1:1-18)
역경의 상황 (1:1-5)
주님의 자비(1:6-9)
큰 집착(1:10-14)
룻의 고백(1:15-18)
2장: 베들레헴에서 (1:19–2:23)
귀향 (1:19–22)
들판에서 (2:1-7)
대화(2:8-17)
룻이 밭에서 돌아오다(2:18-23)
3장: 타작 마당에서 (3:1-18)
계획을 세우다(3:1-6)
곡식더미에서 (3:7-13)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다(3:14-18)
4장: 문 앞에서 (4:1-22)
법정에서 (4:1-12)
후손(4:13-22)
장면 1: 모압에서 (1:1-18)
역경의 상황 (1:1-5)
1:1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절”이라는 본문의 서두는 이 이야기의 시점과 배경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사사기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라는 진술로 끝맺습니다. 그 시대는 도덕적 상대주의, 부패,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중앙 정치 권위나 영적인 초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도덕적 활동이 급격히 악화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책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베냐민 사람들의 노골적으로 음란하고 외설적인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룻기와 대조됩니다( 이 시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사기 주석 참조 ).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근성이 부족하여 불경건한 가나안 사람들의 행실을 본받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보아스와 룻을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어두운 시대에 나타난 이 밝은 빛은 사도 바울이 나중에 선포한 사실, 곧 하나님께서 과거 세대에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라”(사도행전 14:17)는 사실을 증거합니다.사사기 21:25 ). 당시는 도덕적 상대주의, 부패, 무정부 상태의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중앙 정치 권위나 영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도덕적 활동이 급격히 악화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베냐민 지파에 대한 노골적으로 음란하고 외설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룻기( 사도행전 14:17 )를 반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건들의 일반적인 역사적 시점 외에도, 저자는 이스라엘에 물리적 기근이 닥쳤다고 설명하며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충실함에 대해 노하셨음을 보여주는 징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레위기 26:18-20). 이야기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자연재해로 인해 이스라엘을 떠나면서 더욱 구체적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남자는 베들레헴이라는 마을 출신이었는데, 베들레헴은 "음식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독자에게 이 이름은 또한 이 마을이 훗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고향이자, 그보다 더 위대한 메시아 왕 예수의 탄생지였음을 상기시켜 줍니다.레위기 26:18-20 ).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자연재해로 인해 이스라엘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더욱 구체적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남자는 베들레헴이라는 마을 출신이었는데, 베들레헴은 "음식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독자에게 이 이름은 또한 이 마을이 훗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고향이자, 그보다 더 위대한 메시아 왕 예수의 탄생지였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본문은 그 남자가 모압으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나그네는 외국에서 일했지만 시민의 권리와 특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땅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토착민(이 경우 모압 사람)을 섬겼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케모스, 바알브올, 그리고 다른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적이었습니다(판관기 3:12-30 참조). 그래서 이 이스라엘 사람은 주님께서 그에게 할당하신 조상의 땅을 버리고 이교도의 권위 아래 일하기 위해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었을까요? 고려해야 할 한 가지 점은 모든 사람이 기근에 대해 나그네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보아스처럼 많은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사사기 3:12-30 ). 그러므로 이 이스라엘 사람은 주님께서 그에게 할당하신 조상의 땅을 떠나 이방인들의 권위 아래 일하기 위해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었을까요?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모든 사람이 기근에 이방인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보아스처럼 많은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1:2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있어 가족 구성원들의 이름이 중요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는데, 이는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이러니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어서 각 사람이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 남자와 그의 행동은 당시의 상대주의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였는데, 이는 "달콤하다" 또는 "즐거운"이라는 뜻입니다. 이야기 후반부에서, 많은 고난을 겪은 후, 그 여자는 베들레헴 여인들에게 자신을 나오미("달콤하다")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쓰다")라고 부르라고 말했습니다.사사기 21:25 ). 이 남자와 그의 행동은 당시의 상대주의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였는데, 이는 "달콤하다" 또는 "기분 좋다"는 뜻입니다. 이야기 후반부에서, 많은 고난을 겪은 후, 이 여인은 베들레헴 여인들에게 자신을 나오미("달콤하다")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쓰다")라고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문은 에브랏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베들레헴 근처에 살았던 유다 지파에 속했습니다. 이 암시는 독자에게 다윗 왕의 장래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사무엘상 17장 12절에서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에브랏 사람 이새의 아들로,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이자 베들레헴 사람일 뿐만 아니라, 엘리멜렉 가문의 바로 그 가문에 속했습니다.사무엘상 17장 12절에 따르면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에브랏 사람 이새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 있었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이자 베들레헴 사람일 뿐만 아니라, 엘리멜렉 가문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1:3-5 그 가족은 극심한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들은 기근에 시달렸고, 그 후 “약 십 년” 동안 모압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두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모압 여인과 결혼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상황에 영향을 받았습니다(신명기 7:3-4 참조). 그 후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이 모두 죽는 비극이 닥쳤습니다. 이로 인해 나오미는 심각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아들이 없는 이스라엘 과부로서 그녀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고, 궁핍과 가난, 심지어 노예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버림받은 자, 소외된 계층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신명기 7:3-4 ). 그 후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이 모두 죽는 비극이 닥쳤습니다. 이로 인해 나오미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이스라엘 과부로서 그녀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고, 궁핍과 가난, 심지어 노예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버림받은 자, 버림받은 계층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주님의 자비(1:6-9)
1:6 나오미는 이제 두 가지 이유로 유다에 있는 가족의 유산으로 돌아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첫째, 모압에서의 그녀의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교 사회에서 생계 수단이 없는 과부였습니다. 둘째, 그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기근을 끝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기근을 가져오셨고, 이제 그분은 은혜롭게 기근을 없애셨습니다. 본문은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합니다.
룻기 1장 6절부터 22절까지에 걸쳐 핵심적인 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돌아가다"라는 동사가 열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 동사는 사람이 진로를 바꾸어 물리적으로 어떤 장소로 돌아오는 것을 묘사하는 데 흔히 사용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영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 단어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합니다(예: 호세아 3:5; 6:1; 7:10). 본문에서 이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야훼께로 돌아가는 것 또한 의미할 수 있습니다.룻기 1장 6-22절 : "돌아가다"라는 동사가 열두 번 나옵니다. 이 동사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진로를 바꾸어 물리적으로 어떤 장소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영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 단어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합니다(예: 호세아 3장 5절; 6장 1절; 7장 10절 ). 본문에서 이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야훼께로 돌아가는 것 또한 의미할 수 있습니다.
1:7-9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때, 그녀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그녀와 동행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며느리는 모압에 있는 나오미와 같은 처지로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남자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과부로서 낯선 땅에서 나그네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법에 따르면, 두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갈 의무는 없었지만,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갈 모든 권리가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그들에게 모압 가족에게 돌아가 돌봄과 보호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언약적 이름인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에게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그녀는 야훼께서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히브리어로 " 헤세드 "는 강한 단어로, "언약적 충성"으로 가장 잘 번역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언약적 하나님께서 이 두 모압 여인에게 언약적 충성을 보여 주시고 그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큰 집착(1:10-14)
1:10-13a 오르바와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나오미는 그런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고집했습니다. 나오미는 이스라엘이 이 모압 여인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오미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가난하고 과부였으며, 오르바와 룻과 결혼할 아들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독자는 "레비라테 법"(레비르는 라틴어 로 "남편의 형제"를 뜻함)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히브리 관습을 접하게 됩니다. 이 법은 신명기 25장 5-6절에 가장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신명기 25:5-6 :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중 한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죽은 사람의 아내는 가족 밖에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아야 한다. 그녀의 남편의 형제가 그녀에게 가서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여 남편의 형제로서 그녀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녀가 낳은 첫 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에게 이 관습을 지킬 아들이 없다고 강조하며, 따라서 그들이 자신과 함께 여행하는 것을 만류하려 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법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13b-14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자신의 씁쓸한 처지를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역경이 우연이나 단순한 환경 때문이 아니라,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전개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오미의 이성적인 간청은 두 사람의 반응 차이를 낳았습니다.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룻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오르바에게 매달렸습니다.
룻의 고백(1:15-18)
1:15-16a 나오미는 룻에게 시누이를 따라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단호했습니다. 그녀는 나오미에게 헌신했고 이스라엘로 그녀를 따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은 문법학자들이 라틴어 구절인 idem per idem (같은 동사나 명사가 두 사람의 행동에 사용되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진술에 의해 강조됩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저도 가겠습니다 " , "어머니가 묵으시 는 곳에 저도 묵 겠습니다 ",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 등의 일련의 진술은 두 여인 사이의 목적의 하나됨과 행동의 연합을 강조합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변함없는 충성과 충실을 맹세했습니다.
1:16b-18 그러나 룻의 서원은 나오미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녀는 "당신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idem per idem을 선언했습니다 .이 확언은 비언어적 진술(명시적으로 동사가 언급되지 않음)이며 히브리어에서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주장은 천둥소리와 같았습니다.룻기 1:15에서 오르바는 그녀의 신들에게 돌아갔습니다.반대로 룻은 모압 사람들의 다신교를 거부하고 히브리 사람들의 유일신교를 받아들였습니다.룻기 1:17은 룻이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언약 이름인 야훼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러한 개종을 확인합니다.룻의 개종과 맹세는 나오미를 침묵하게 했습니다.룻기 1장 15절에서 오르바는 자신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모압 사람들의 다신교를 거부하고 히브리 사람들의 유일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룻기 1장 17절은 룻이 여호와의 이름, 곧 이스라엘 하나님의 언약의 이름인 야훼를 부르며 이러한 개종을 확증합니다. 룻의 개종과 맹세는 나오미를 침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방인이자 이교도인 모압 여인이 참된 신앙으로 개종한 것은 우리에게도 충격적입니다. 이 개종은 더 큰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방인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 이것이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에 룻(과 라합)을 포함시킨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마태복음 1:5).마태복음 1:5 ).
2장: 베들레헴에서 (1:19–2:23)
귀향 (1:19–22)
1:19 본문에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단지 "베들레헴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갔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룻기 1장 18, 19절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존재합니다. 이 여정은 대부분 오르막길인 험준한 지형을 따라 약 65~80km(40~50마일)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여정을 마치는 데 며칠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 간격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속도를 늦추고, 어떤 사건들은 전개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룻기 1:18, 19. 이 여정은 대부분 오르막길인 험준한 지형을 따라 약 65~80킬로미터(40~50마일)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이 여정을 마치는 데는 며칠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 간격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속도를 늦추고, 어떤 사건들은 전개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여자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온 마을이 “소동”했습니다. 원문에서 이 단어는 “소동”을 뜻하는 것으로, 예상치 못한 그들의 도착으로 마을은 혼란과 소란에 휩싸였습니다. 마을 여자들이 “이 사람이 나오미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소문은 더욱 떠돌았습니다. 이 질문은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1:20-21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룻기 1장 2절에서 그녀의 이름은 "달콤한" 또는 "즐거운"이라는 의미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녀는 베들레헴의 여인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말고 "쓰다"는 뜻의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기 1장 13절에서 오르바와 룻에게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시므로 내게 심히 쓰라"라고 말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녀의 이름 변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그녀의 이해를 반영했습니다. 룻기 1장 20-21절에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네 가지 일을 행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녀를 쓰라리게 대하시고, 그녀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녀를 대적하여 증언하시고("증언했다"라는 동사는 원문에서 "괴로움을 주다"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고난을 안겨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쓰라린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삶의 모든 사건에서 신의 손길을 인식하고 모든 사건에 인내와 끈기로 대응했습니다.룻기 1장 2절 에서 그녀의 이름은 "달콤한" 또는 "즐거운"이라는 뜻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녀는 베들레헴의 여인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말고 "쓰다"는 뜻의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기 1장 13절 에서 오르바와 룻에게 "여호와의 손이 나를 대적하여 나간 것이 내게 심히 쓰라"고 말했을 때 그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녀의 이름 변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그녀의 이해를 반영했습니다. 그녀는 룻기 1장 20-21절 에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네 가지 일을 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녀를 심하게 대하시고, 그녀를 빈손으로 데려오시고, 그녀를 대적하여 증언하시고(동사 "증언했다"는 원문에서 "괴로움을 주다"를 의미할 수 있음), 그녀에게 고난을 안겨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쓰라린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단지 삶의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고 그 모든 일에 인내와 참을성으로 반응했을 뿐입니다.
1:22 이 부분은 나오미와 룻이 “보리 추수 시작 무렵” 베들레헴에 왔다는 진술로 끝맺습니다. 보리 추수는 농사철의 첫 번째 곡식 수확이었고, 곧이어 밀 추수가 이어졌습니다. 그해 수확량은 풍성했고(룻 1:6), 밭에는 일꾼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룻은 일자리를 구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보아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때였고, 감미로운 섭리였습니다.룻기 1:6 )에는 밭에 일꾼이 많이 필요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룻은 일자리를 구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보아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때였고, 감미로운 섭리였습니다.
들판에서 (2:1-7)
2:1 이 구절의 첫 구절은 괄호로 되어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저자는 이제 독자에게 보아스라는 남자를 소개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광범위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독자는 두 사람의 정확한 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씨족"에 속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근친상간(여러 세대에 걸친 혈연 관계)에 기반한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서 드라마는 더욱 고조됩니다.
보아스는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합당한"이라는 단어는 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종종 정직, 용기, 명예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의 성품은 그의 이름에 담긴 의미, "그에게 힘이 있다"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후에 보아스의 고손자인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했을 때, 그는 그 건물의 기초 기둥 중 하나를 "보아스"라고 불렀습니다(왕상 7:21). 보아스라는 사람과 같은 이름의 기둥은 비슷한 특징을 공유했습니다. 하나는 베들레헴의 기둥으로 공동체를 지탱했고, 다른 하나는 성전의 기둥으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지탱했습니다.(왕상 7:21 ) 보아스라는 사람과 같은 이름의 기둥은 비슷한 특징을 공유했습니다. 하나는 베들레헴의 기둥으로 공동체를 지탱했고, 다른 하나는 성전의 기둥으로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지탱했습니다.
2:2-3 여기서 저자는 룻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히브리 율법에 따르면, 농부는 수확기에 한 번만 밭에서 이삭을 줍고 거두어야 했습니다. 밭의 이삭을 벗겨서는 안 되었습니다(레위기 19:9-10). 농부는 밭 가장자리는 수확하지 않고 남겨두어야 했고, 밭에서 남은 것은 이스라엘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그 땅의 가난한 사람들처럼 추수꾼들을 따라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레위기 19:9-10 ). 그는 밭 가장자리는 추수하지 않고 남겨 두어야 했고, 밭에서 남은 것은 이스라엘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어야 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그 땅의 가난한 사람들처럼 밭에 가서 추수꾼들을 따라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밭에 나가 일하다가 보아스의 밭에 "우연히" 오게 되었습니다. 독자는 룻이 우연히 이 밭에 왔다고 말하는 듯한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마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저자의 농담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룻의 관점에서는 우연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존 플라벨의 유명한 말이 이 구절에서 저자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히브리어와 같아서 거꾸로 읽어야 한다."
룻기 2장 4-7 절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놀라움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인물이 다시 등장합니다. 보아스의 타이밍은 하나님의 타이밍이었기에 완벽했습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합당한” 사람이 일을 감독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부재 지주가 아니었습니다. 일을 살펴보던 보아스는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수석 추수꾼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습니다. 룻은 밭에서 일하기 전에 정직한 여인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돌보는 그녀의 모습은 베들레헴 사람들 사이에서 훌륭한 이름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밭에서 하는 일은 그녀의 정직하고 부지런한 인품을 증명했습니다. 수석 추수꾼은 보아스에게 룻이 “잠시 쉬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추수꾼의 주장을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이곳(밭)은 그녀의 거처이고, 집은 작습니다”입니다. 다시 말해, 룻은 하루 종일 밭에서 살았고, 성읍에 있는 집은 그녀에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근면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보아스와 매우 흡사했습니다!룻기 2장 4절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놀라움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인물이 다시 등장합니다. 보아스의 타이밍은 하나님의 타이밍이었기에 완벽했습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합당한” 사람이 일을 감독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부재 지주가 아니었습니다. 일을 살펴보던 보아스는 낯선 사람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수석 추수꾼에게 그녀에 대해 물었습니다. 룻은 밭에서 일하기 전에 정직한 여인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돌보는 그녀의 모습은 베들레헴 사람들 사이에서 훌륭한 이름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밭에서 하는 일은 그녀의 정직하고 부지런한 인품을 증명했습니다. 수석 추수꾼은 보아스에게 룻이 “잠시 쉬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추수꾼의 주장을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이곳(밭)은 그녀의 거처이고, 집은 작습니다”입니다. 다시 말해, 룻은 하루 종일 밭에서 살았고, 성읍에 있는 집은 그녀에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근면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보아스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대화(2:8-17)
2:8-9a 이 보고를 듣고 보아스는 룻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그는 친절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룻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룻을 돌보았습니다. 첫째, 그는 룻을 보호했습니다. 그는 룻에게 자기 밭에서만 이삭을 줍고 "젊은 여자들"과 가까이 지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자들은 노예나 하인이 아니라 보아스의 가문 출신의 젊고 미혼 여성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친족 관계 덕분에 보호를 잘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밭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룻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외국인인 룻은 취약했기에 보아스는 그녀의 안녕을 지켜주었습니다.
2:9b–16 둘째, 보아스는 룻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룻에게 밭에서 일꾼들에게 주어지는 물을 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추수꾼들을 위해 볶은 곡식이 포함된 식사를 차려주었고, 일꾼들이 일터로 돌아오자 보아스는 추수꾼들에게 룻이 일터에서 바로 이삭을 주우도록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룻이 남은 곡식만 얻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곡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이 쉽게 주워 모아 묶을 수 있도록 곡식 단을 남겨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행동에 큰 겸손과 놀라움으로 반응했습니다. 룻은 여기서 어유(동사 "주의하다"와 명사 "외국인"이 연관되어 있음)를 사용하여 보아스의 관대함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했습니다. 외국인은 보통 주목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룻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보아스가 자신을 알아봐 주는 걸까요?" 룻은 자신이 "당신의 여종"도 아닌 "여종"에 불과했음에도 보아스가 그토록 친절하게 말하고 위로해 주는 것에 더욱 놀랐습니다. 여기서도 룻의 겸손과 정직함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아스는 룻에게 여호와의 축복을 선포하며, 주님께서 룻의 행실과 행위가 온전히 열매 맺게 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축복에서 그는 룻의 회심을 온전히 인정하며, 그녀와 주님의 관계를 "네가 그분의 날개 아래 피난처로 왔노라"라고 묘사했습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을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 새에 비유했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고 그분의 돌봄을 받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예: 신명기 32:11; 출애굽기 19:4).신명기 32:11 ; 출애굽기 19:4 ).
2:17 룻은 저녁까지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가서 주운 이삭을 탈곡하여 좋은 곡식과 껍질을 분리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노동 끝에 룻은 약 1에바(한 에바는 약 3분의 2 부셸, 즉 8리터에 해당하며 무게는 30파운드 또는 14킬로그램으로 통밀빵 672조각을 만들 수 있습니다)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그녀의 노고에 비해 상당한 양이었습니다.
룻이 밭에서 돌아오다(2:18-23)
2:18 룻은 수고를 마치고 나오미에게 돌아와 주운 넉넉한 이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배부르고 남은” 음식을 나오미에게 주었습니다. 룻기 2장 14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룻은 보아스에게서 밭에서 받은 볶은 곡식 중 일부를 나오미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밭에서 보리 14kg을 끌고 왔을 뿐만 아니라, 나오미를 위해 먹을 것도 가져왔습니다. 룻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룻기 2:14 ; 다시 말해, 룻은 보아스에게서 밭에서 받은 볶은 곡식 중 일부를 나오미에게 주었습니다. 밭에서 14kg이나 되는 보리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나오미를 위해 먹을 것도 가져왔습니다. 룻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19-20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두 가지 축복을 구하며 응답했습니다. 나오미의 기쁨은 특히 보아스를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중 하나”라고 묘사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히브리어 “기업 무를 자”는 고엘(go'el) 이며 , 룻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친척-구속자란 무엇인가?
고엘 은 어려운 상황에서 친족을 구출하고 위험에서 구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고엘은 네 가지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 그는 친족을 속박에서 사야 했는데, 속박은 대개 누군가가 빚을 지고 다른 히브리인에게 계약을 맺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레위기 25:47-49; 신명기 15:12-17).레위기 25:47–49 ; 신명기 15:12–17 );
2. 그는 친척이 팔아버린 지파의 땅을 다시 사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레 25:23-25).레위기 25:23-25 );
3. 그는 남자 상속자가 없는 집안의 과부와 결혼하여 죽은 남편을 위해 자손을 낳음으로써 레위라테 법을 이행해야 했습니다(신 25:5-6; 룻기 1:11에 대한 주석 참조).신명기 25:5-6 ; 룻기 1:11 에 대한 주석 참조 );
4. 그는 친척의 피를 복수해야 했습니다(민수기 35:16-19).민수기 35:16-19 ).
고엘 에 의한 구원이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하시는 사역을 놀랍게 묘사합니다. 구약 전체에서 고엘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중보하시는 것을 가리켰습니다(욥 19:25-26; 시 19:14). 이집트 탈출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속박에서 구원하신 구약의 위대한 구원 행위였습니다(출 6:6-8).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의 백성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고엘 이십니다 (누가복음 4:16-21). 그는 그의 친족을 속박에서 해방하셨고(롬 8:29), 그의 백성을 위해 기업을 되찾으셨고(벧전 1:3-4), 그의 이름으로 씨를 일으키셨고(엡 1:5), 피의 복수자로 섬기셨습니다(요한계시록 참조). 참된 고엘 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욥기 19:25-26 ; 시 19:14 ). 이집트 탈출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속박에서 구원하신 구약의 위대한 구원 행위였습니다( 출 6:6-8 ). 신약에서 예수님은 누가 복음 4:16-21 ). 그는 그의 친족을 속박에서 해방하셨고( 롬 8:29 ), 그의 백성을 위해 기업을 되찾으셨고( 벧전 1:3-4 ), 그는 그의 이름으로 씨를 일으키셨고( 엡 1:5 ), 그는 피의 복수자로 섬기셨습니다(요한계시록 참조). 참되신 예수님
2:21-23 마지막으로, 룻이 “모압 여인”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주목하십시오. 룻기 2장 2 절에서 이러한 신분에 대한 언급은 룻이 구원이 필요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상기시켜 주는 함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룻기 2장 2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장: 타작 마당에서 (3:1-18)
계획을 세우다(3:1-6)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약 3개월 동안, 밀 수확이 끝날 때까지 일했습니다(룻 2:23). 이 기간 동안 보아스는 아무런 구원 활동도 하지 않았기에, 나오미는 행동하여 구원의 과정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룻기 2:23 ). 이 기간 동안 보아스는 아무런 구속 활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미는 행동하여 그 과정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3:1 일부 주석가들은 나오미의 행동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교묘한, 거의 기만적인 행위였다고 주장합니다. 나오미는 룻의 안위를 매우 염려했고, 무를 자가 줄 현세적 양식을 염려했기 때문에 그러한 음흉한 거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나오미는 생존을 위해 땅을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룻 4:3). 더욱이, 모압 여인이었던 룻은 이스라엘의 구속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나오미가 그녀를 인도했을 수도 있습니다.룻기 4:3 ). 게다가 룻은 모압 여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구원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몰랐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나오미가 그녀를 인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3:2 나오미는 바로 그날 저녁, 룻에게 보아스가 곡식을 까부르는 일을 감독할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라고 말했습니다. 보아스는 밤새도록 그곳에 남아 자신의 추수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해야 할 일을 설명했습니다.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주석가들은 나오미가 룻에게 매혹적이고 매혹적인 사람이 되라고 지시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행동은 보아스에게 룻의 애도 기간이 끝났음을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무엘하 12장 20절에서 다윗은 죽은 아들에 대한 애도를 마쳤음을 나타내기 위해 똑같은 세 가지 행동을 했습니다.사무엘하 12:20에서도 다윗은 죽은 아들에 대한 애도를 마쳤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똑같은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3:3-6 룻은 보아스가 혼자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가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추문에 휘말린 함정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할 경우를 대비하여 룻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은밀히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이용하지 않고 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룻에게 "발치 이불을 벗고 보아스 곁에 누우라"고 한 것은 분명히 성적인 행위로 유혹하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발치 이불 아래 들어가 누움으로써 아내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온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녀는 구속을 통해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추문이 아닌 복종의 행위였습니다. 이 책의 다음 부분은 룻과 보아스의 덕행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곡식더미에서 (3:7-13)
3:7 보아스가 음식과 음료를 다 마시고 잠자리에 들면서 드라마는 계속됩니다. 그의 "마음이 즐거웠다"는 말은 "만족하거나 만족하다"는 뜻이며, 술 취함이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룻은 "조용히" 그에게 다가왔는데, 이는 룻이 유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라는 단어는 보아스가 "은밀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보아스에게 다가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삼상 18:22 참조). 이것은 유혹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삼상 18:22 ). 이것은 유혹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발을 벗기고” 누웠습니다. 다시 말해, 일부 작가들은 이 행위를 성적인 행위로 봅니다. 공평하게 말하면, 구약성경에서 “벗기다”라는 동사는 그런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예: 레위기 20:11, 19-21 참조). 반면에 다른 곳에서 사용된 표현은 “발을 벗기다”가 아니라 “벌거벗음을 벗기다”입니다. 우리는 룻의 행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녀는 담요를 들어 올리고 그의 발 옆에 눕고 담요로 자신을 가림으로써 보아스의 발을 벗겼습니다. 룻은 나중에 보아스에게 “당신의 종에게 날개를 펼쳐 주십시오. 당신은 무를 자이십니다”라고 요청함으로써 자신의 은유적 의도를 설명합니다. 룻이 담요를 자신에게 덮은 것은 보아스의 구원적인 보호와 돌봄 아래 들어가고 싶다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여 룻기 2장 12절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그녀가 야훼의 “날개”(즉, 보호) 아래로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영어: 레 20:11, 19-21 ). 반면, 다른 곳에서 사용된 문구는 "발을 드러내다"가 아니라 "벌거벗음을 드러내다"입니다. 우리는 룻의 행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녀는 담요를 들어 올리고 그의 발 옆에 누워 담요로 자신을 덮어 보아스의 발을 드러냈습니다. 룻은 나중에 보아스에게 "당신은 구속자이시니 당신의 종에게 날개를 펼쳐 주십시오"라고 요청함으로써 그녀의 은유적 의도를 설명합니다. 룻이 자신에게 담요를 덮은 것은 그녀가 보아스의 구속적 보호와 보살핌을 받고 싶어한다는 이미지였습니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룻기 2:12 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그녀가 야훼의 "날개"(즉, 보호) 아래로 왔다고 말했습니다.
3:8-13 보아스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그 여인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했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이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 전체는 보아스에게 무를 자 역할을 해달라는 룻의 겸손하고도 고결한 요청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훌륭한 인품을 알아보고, 베들레헴 온 성읍 사람들이 룻을 “존귀한 여자”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룻기 2장 1절에 나오는 보아스의 묘사와 유사). 두 사람은 모두 정직하고 명예로운 사람들이었으며, 이 장면을 추잡하고 유혹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은 그들의 정직한 인품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룻기 2:1 ). 두 사람은 모두 정직하고 명예로운 사람들이었으며, 이 장면을 추잡하고 매혹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은 두 사람의 정직한 성품을 폄하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행동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계획에 걸림돌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친족 관계가 더 가까운 다른 고엘이 먼저 거절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보아스가 더 가까운 기업 무를 자에게 결정을 내리도록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어쨌든 보아스는 룻에게 맹세를 했고, 야훼라는 언약의 이름을 사용하여 맹세를 인쳤습니다. 그의 맹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다(3:14-18)
3:14 룻은 그날 밤 내내 타작 마당에 머물며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습니다. 이곳은 어떤 부당함도 없이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절제와 신중함을 보여줍니다. 룻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평판을 걱정하여 일찍 떠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3:15 보아스는 룻이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보리 여섯 말(룻 10, 룻 12, 룻 13, 룻 14, 룻 15, 룻 16, 룻 17, 룻 18, 룻 19, 룻 20, 룻 21, 룻 22, 룻 23, 룻 24, 룻 25, 룻 26, 룻 27, 룻 28, 룻 29, 룻 30, 룻 31, 룻 32, 룻 33, 룻 34, 룻 36, 룻 37, 룻 38, 룻 39, 룻 40, 룻 41, 룻 42, 룻 43, 룻 44, 룻 45, 룻 46, 룻 47, 룻 48, 룻 49, 룻 50, 룻 51, 룻 52 , 룻 53, 룻 54 , 룻 55, 룻 56, 룻 57, 룻 58, 룻 59 ...(창세기 38장 , 유다가 다말에게 매춘의 대가를 지불한 부분) 그런 해석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곡식은 보아스가 룻과 나오미에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약속의 증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바로 그날 구속을 구하겠다는 약속의 증표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 행은 보아스의 의도를 확증합니다. ESV는 이 행을 "그러면"으로 번역합니다.
3:16-18 룻은 집으로 돌아와 나오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보고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말을 인용하며 룻이 “빈손으로” 나오미에게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단어는 룻기 1장 21절에서 나오미가 여호와께서 자신을 모압에서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다고 선언할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빈손이 아니라 보아스의 구원 약속으로 인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룻기 1장 21절 에서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모압에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더 이상 빈손이 아니라 보아스의 구원 약속으로 인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4장: 문 앞에서 (4:1-22)
법정에서 (4:1-12)
4:1 이제 이야기의 배경이 바뀌어 보아스가 베들레헴의 정문에 등장합니다. 고대 도시의 중앙문은 도시의 장로들이 모이는 장소였으며, 그곳에서 법적 문제가 결정되었습니다. 그곳은 고대 법정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보아스의 타이밍은 완벽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무를 자가 그 문을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그를 불렀습니다. "친구여, 물러나라." 히브리어로 "친구"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누구든지, 이러이러한"을 의미하는 두 단어입니다. 그 남자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마도 그의 이름이 생략된 것은 그가 구속 문제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표시였을 것입니다(신명기 25:9-10 참조).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었습니다.신명기 25:9-10 ).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었습니다.
4:2-4 보아스는 가장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있는 가운데 성읍 장로 열 명을 모아 재판 정족수를 구성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사건을 설명했습니다. 나오미는 궁핍한 처지에 처해 있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엘리멜렉의 땅을 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땅은 영원히 팔 수 없었고, 가문이 무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레 25:23-24). 보아스는 가장 가까운 고엘 에게 결정을 내리라고 압력을 가했고, 고엘은 "내가 무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레 25:23-24 ). 보아스는 가장 가까운
4:5-6 보아스는 반전을 제시합니다. 가장 가까운 고엘이 나오미를 되찾으려면, 그도 레위라테 율법에 따라 룻과 결혼하여 죽은 자의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첫 번째 무르기꾼은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무를 수 없습니다." 그는 무르기 행위를 하면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유산을 자손과 룻과 나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아들이 없다면 그의 모든 재산은 레위라테 결혼의 아들에게 넘어갈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4:7-11a 보아스는 무를 권리를 받고, 옛날부터 자기 신발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관습으로 그것을 인쳤습니다. 이것은 거래에 대한 증명 행위였습니다. 성문에 있던 장로들과 백성들은 법정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그 거래를 법적으로 유효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원어로 "증인들!"이라는 한 단어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동의하며 말했습니다.
4:11b-12 마침내 백성들은 룻과 보아스에게 세 부분으로 된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룻을 라헬과 레아처럼 만들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야곱의 아내였으며, 그들의 시녀들과 함께 야곱의 열두 아들을 낳고 “이스라엘의 집을 세웠습니다.” 둘째, 보아스가 계속해서 “합당하게”(2:1에서 보아스에게, 3:11에서 룻에게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 행하기를 구했고, 그의 이름이 베들레헴에서 기억되기를 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은 보아스의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요청은 창세기 38장을 언급하는데, 이 장에서 이방 여인 다말은 유다 지파의 가문을 계승하기 위해 레위인 율법을 적용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그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에 룻과 보아스의 자손도 유다의 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큰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창세기 38장 에서 이방 여인 다말은 유다 지파의 가계를 잇기 위해 레위인 율법을 적용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유다 지파 출신이었기에 룻과 보아스의 후손이 유다 지파의 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큰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후손(4:13-22)
4:13 룻기 4장 13-17절에서 우리는 룻기 이야기가 절정에 달하는 것을 봅니다. 룻의 이야기는 마치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듯합니다. 그녀는 "보아스의 종이 아니었습니다"(룻 2:13)라는 말로 베들레헴에 도착했지만, 결국 보아스에게 "저는 당신의 여종입니다"(룻 3:9)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에서 그녀는 그의 아내로 선포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열어 아들을 낳으신 이 사건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가문의 이름과 유산을 이어갈 남자 상속자였습니다!룻기 4장 13-17절에서 우리는 이 책의 이야기가 절정에 달하는 것을 봅니다. 룻의 이야기는 마치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듯합니다. 그녀는 "보아스의 종이 아니었습니다"( 룻 2장 13절 )라는 말로 베들레헴에 도착했지만, 결국 보아스에게 "저는 당신의 여종입니다"(룻 3장 9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에서 그녀는 그의 아내로 선포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열어 아들을 낳으셨을 때, 이 사건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바로 여기에 가문의 이름과 유산을 이어갈 남자 상속자가 있었습니다!
4:14-16 그 마을의 여인들이 나타나 나오미를 축복했습니다. 그들은 룻기 1장 9절에 처음 등장했는데, 아마도 나오미를 비하하며 "이 사람이 나오미냐?"라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은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사람을 주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그 마을 여인들의 두 가지 말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포괄하는 포괄성 역할을 합니다 . 어떤 의미에서, 그 여인들은 이야기의 쓴맛에서 달콤함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논평하는 합창단 역할을 합니다.룻기 1장 9 절에서 그들은 아마도 나오미를 비하하며 “이 사람이 나오미냐?”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자를 주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성읍 여인들의 두 가지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4:17 베들레헴의 여인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오벳의 이름은 그가 엘리멜렉의 혈통과 가문의 상속 재산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기에 적절했습니다. 이제 저자는 오벳이 이새의 아버지이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오벳이 혈통을 이어가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로써 독자는 더 큰 그림을 보게 됩니다. 룻과 보아스의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조를 세우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4:18-22 룻기는 유다의 아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 이어지는 혈통을 추적하는 더 광범위한 족보로 끝납니다. 이 더 광범위한 족보는 다윗을 왕족과 왕권을 약속받은 유다에게 연결하기 위해 존재합니다(창세기 49:8-10 참조). 이 족보는 선택적이라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의 모든 세대를 나열하지 않습니다. 족보에는 열 명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으며, 히브리 문화에서 열이라는 숫자는 종종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 족보의 이면에 있는 아이디어는 역사적으로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족보가 다윗이라는 인물에서 절정과 완성에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창세기 49:8-10 ). 이 족보는 선택적이라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베레스부터 다윗까지 모든 세대를 나열하지 않습니다. 족보에는 열 명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으며, 히브리 문화에서 열이라는 숫자는 종종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 족보의 의도는 역사적으로 완전한 목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족보가 절정에 달하고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택적 족보는 과거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기도 합니다. 베레스에서 다윗까지 열 명의 후손의 명단은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마태복음 1:3-6)에 기록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며, 다말, 라합, 룻이라는 세 여인을 더합니다. 이는 룻기 마지막에 나오는 족보가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신 예수님의 오심에서 궁극적인 절정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룻기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인 나오미, 보아스, 룻이 이야기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살펴보세요. 그들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메시아의 오심이 룻기의 전부이자 끝입니다.마태복음 1:3-6 )에 다말, 라합, 룻이라는 세 여인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는 룻기 마지막에 나오는 족보가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신 예수님의 오심에서 궁극적인 절정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룻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인 나오미, 보아스, 룻이 이야기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들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메시아의 오심이 룻기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서지
블록, DL, 사사기, 룻. 뉴 아메리칸 코멘터리. 테네시주 내슈빌: B&H, 1999.
캠벨, EF, 루스. 앵커 바이블, 7권. 뉴욕: 더블데이, 1975.
두기드, IM, 에스더와 루스. 개혁주의 강해 주석. 뉴저지주 필립스버그: P&R, 2005.
퍼거슨, SB, 『충성스러운 하나님: 룻기 해설』 . 영국 달링턴: 복음주의 출판사, 2005.
허버드, RL, 『룻기』. 구약성경 신국제주석.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에어드먼스,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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