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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를 연구하다보면 더 많은 연구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난다.
이 말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나는 그 모르는 것을 알고자 애를 쓰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물론 그 독서는 지식독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혜 이전에 지식이 있어야 한다.
바른 지식은 바른 깨달음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연구]라는 의미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매일 매일 연구하는 자세로 읽다보면
탈무드의 뜻이 깨달아지고
어느새 그 뜻에 따라서 더욱더 높은 수준의 지성과 교양을 쌓게 되고
남을 감화시키게 된다.
읽고 또 읽다다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지도교수님은 나에게 "읽고 또 읽으라"라고 주문했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확실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읽고 또 읽는 훈련을 시킵니다.
아주 오래 전 인도에서 한 불교학자가 현자로서 이름 높은 왕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나는 그동안 많은 성전(거룩한 경전)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대답하기를,
"그렇지만 나는 그대가 아직도 충분히 성전(거룩하 경전)의 사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서 더 참다운 이해를 얻도록 노력하라. 그 때에 나는 그대를 스승으로 받아들일것이다."
불교학자는 돌아가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성전을 배웠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왕은 아직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다니 원통한 일이야"
그러나 그는 그 때부터 한층 더 정신을 가다듬고 성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세월이 흘러 왕에게도 갔으나 그 때에도 왕의 대답은 역시 전과 동일이었습니다.
불교학자는 전보다도 한층 더 열심히 성전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오자 승방에 들어가서 다시 성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쓰여 있는 참다운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다음의 것을 똑똑하게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즉 재물이나 명예나, 궁중의 생활이나, 그 밖의 현세적인 욕망이 얼마나 대수롭지 못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는 오직 자시기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만 심신을 다 쓰며
자기 속에 있는 신의 존재를 높이려고만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왕의 곁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 어느 날 왕 스스로가 불교학자를 찾아와 높은 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그를 보자,
왕은 그 앞에 비로소 무릎을 꿇어앉아 겸손하게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성전의 진정한 뜻을 이해한 것을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허락하신다면, 저를 당신의 제자(disciple 디사이플) 로 받아 주십시오. "
그리하여 그 현자는 왕을 제자로 얻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책에서 발췌)
우리 자신도 현자가 되고자 애써야 합니다.
아직도 멀었고 부족하다는 결핍을 느껴야 합니다.
탈무드는 말합니다. "결핍이 축복이다. 광야가 축복이다."
그 뜻을 아는데 무려 30년이나 걸린 것 같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 평생 걸리는 일입니다.
탈무드는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생배움' '평생공부'입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만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탈무드와 성전의 공부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20202년 10월 11일 월요일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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