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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교육의 또 다른 원동력,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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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교육의 또 다른 원동력, 암기!
배수인목사(꿈나무교회)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스티븐 스필버그, 록펠러,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유대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400~1,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스라엘에 절반인 700여만 명, 나머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주로 미국과 유럽에 살고 있다. 1,500만 명은 전 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 되는 수치이다. 또한 미국에 사는 유대인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미국 인구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전체 대학교수의 30%가 유대계이며,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는 학생의 1/3이 유대계이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듯이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4%가 유대계이다.
세상사람 누구나 유대인이 우수한 민족이라고 말하며 이들의 저력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저력의 원동력이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유대인의 독특한 교육 방식인 ‘하브루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브루타’는 친구 또는 동반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하베르’의 아람어 형태로, 본래의 뜻은 ‘우정, 동반자 관계’이다. ‘하브루타’는 현대에 와서 학습 파트너의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랍비들이 다음세대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예시바’의 대표적인 학습 방식이었다. 이 전통이 현대에도 이어져, 지금도 예시바에서는 학생들이 유대 경전인 탈무드, 미쉬나, 할라카 그리고 구약성서(타나크)를 혼자 학습하지 않고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진행한다. 질문과 답변을 번갈아가며 열띤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학습 파트너 상호 간에 자신의 생각이 정리됨은 물론이요, 상대방의 의견을 통해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력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존경, 인내심 등을 배우게 된다.
필자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지만 매스컴을 통해 하브루타 교육의 우수성을 확인하였고, 이스라엘에 만4년 동안 살면서, 자녀들을 유대인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며 저들의 일상생활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았기에 유대인의 저력의 뿌리가 교육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실제로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약 60-70%의 유대인들은 덜 종교적이거나 별로 종교적이지 않다. 이들의 자녀세대가 다니는 학교는 대부분이 우리 자녀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와 커리큘럼과 수업방식이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선생님이 계시고 한 반에 20여 명의 아이들이 있다. 물론 하브루타 방식의 수업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모든 교과과정을 그렇게 진행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확인한, 전적으로 하브루타 방식으로 학습하는 곳은 어디인가? 검은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귀밑머리를 기른 유대인들을 가리켜 종교인(하레딤) 또는 정통파 유대인(다티)이라 부르는데, 이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위에서 언급한 율법 교육기관인 ‘예시바’고, 예시바는 하브루타 방식으로 학습을 진행한다.
필자는 하브루타 만큼, 아니 어쩌면 하브루타 보다 더 결정적인, 유대인 교육의 우수성의 비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암기 혹은 암송이다. 필자가 지켜본 바, 유대인의 교육의 핵심은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에 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의 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이스라엘은 교과과정을 위한 사교육이 전혀 없고, 아이들은 학교생활 외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서 보내며 훈육을 받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머니의 자녀를 향한 말씀교육이 있다.
유대인들은 그들 스스로, 2천 년 동안의 망국의 세월 속에서도 시오니즘(선민사상)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이 뿌리 뽑히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을 토라(성문율법) 그리고 탈무드에서 찾는다. 토라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구약성서의 모세오경을 가리키는 말이고, 탈무드는 ‘미쉬나와 게마라(아람어로 완성이라는 뜻)’라는 유대교 경전을 아울러서 칭하는 용어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모세오경 즉 토라를 주실 때, 기록되지 않은 율법 즉 구전율법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이 구전된 율법은 대대로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전해졌고, 주후 2세기 경 ‘유다 하 나시’라는 지도자가 랍비들을 소집하여 방대한 양의 구전 율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렇게 하여 주후 3세기 초 완성된 책이 ‘미쉬나’이다. 후대에 이 미쉬나에 주석이 첨부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바벨로니아 탈무드가 편찬되었고, 현대의 히브리어 탈무드는 당시 아람어로 쓰인 바벨로니아 탈무드를 원전으로 하며, 주후 6세기경에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매우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탈무드가 언제 처음 기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많은 내용들은 적어도 주후 6세기까지, 구전으로서 다음세대에게 계속해서 전승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전체가 6부 63편으로 구성된 히브리어 탈무드가 열람실에 꽂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어마어마한 양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런 방대한 양이 몇 백 년 동안, 오로지 구전으로서만 전승되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분명 그 신빙성과 정확도가 떨어지겠지?’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아 의심을 걷어내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묵상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묵상한다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하가’로서, 본래의 뜻은 ‘중얼중얼 읊조리다’는 의미이다. 즉 되새김질 하듯이 계속해서 말씀을 중얼중얼 읊조리는 것이 묵상인 것이다. 지난 2 천 년 동안 유대인들은 비록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지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 애를 썼다. ‘쉐마(들어라!)’라고 불리는 구약성서 신명기 6:4-9절, 신명기 11:18-20절의 말씀을, 양피지에 적어서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테필린)를 삼고, 문설주(메주자)에 적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현대에도 정통 유대인들은 이 명령을 철저히 지켜나가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쉐마’에 다음과 같은 명령도 하셨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여기서 강론하다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라마드’로서 본래의 뜻은 ‘매질하여 벌하다, 훈련(숙달)시키다, (삶에 적용되도록) 가르치고 교훈하다.’등이다. 쉽게 말해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를 향한 율법 교육은 하나님의 제일 중요한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말씀의 생활화는 삶의 최우선 순위였던 것이다. 부모들의 이 엄격한 토라와 탈무드 교육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건 365일 쉬지 않고 반복해서 진행되었고, 자녀들은 끊임없이 율법을 중얼중얼 읊조리고 훈련한 결과, 결국에는 기록보다 정확한 암기와 암송의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대의 우리 사고로는 쉽게 동의가 안 되지만, 이들의 암기의 정확성은 혹시 모를 기록자의 오류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적어도 전승에 있어서는 말이다.
지혜의 대명사인 솔로몬왕은 그가 지은 구약성서의 잠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 지혜의 훈계’라 하였다.(잠언 1:7절, 15:33절) 구약성서 열왕기상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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