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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예루살렘의 실로암 Siloam , 히스기야 터널

by 코리안랍비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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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Siloam , 히스기야 터널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남자들이라면 군대시절에 한번 쯤 불러 봤을 노래가 바로 ‘실로암’이다. 이 곡처럼 많은 믿지 않는 청년들까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이 곡을 자주 듣는다. 2-3번 부르면 무척 힘이 나고 feel을 받게 만드는 노래이다.

이 곡은 신상근 목사가 1981년 요한복음 9장을 묵상하던중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 만든 가장 대중적인 복음성가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 유명한 곡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작사작곡했다는 것이다. 가수 송대관도 ‘주님과의 약속’이라는 자신의 음반에 이 곡을 삽입한다. 삼성 라이온즈의 ‘김한수’ 감독은 이 곡을 야구팀의 ‘응원곡’으로 지정하였다. 재미있게도 그 감독은 불교신자이다.


원래 실로암은 히브리어로 ‘보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연못이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연못인데 어떤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예수가 고쳐준 곳으로 유명한다.

이곳은 남유다의 히스기야왕(기원전 717~698)은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하자 기혼샘에서부터 티로포에온 계곡에 위치한 실로암 연못까지 수로를 뚫어서 물이 성벽 안으로 흐르게 공사를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참조, 구약성서 열왕기하 18장 ~ 20장). 당시의 전쟁은 ‘물전쟁’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기혼샘은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원지인데 다윗성 밖에 있어서 적에게 성이 포위당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음으로 기혼샘의 물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끌어 들이고 밖의 샘을 메워 버린 것이다. 총 길이 533미터가 되는 이 히스기야 터널(실로암 터널)은 완전한 암석지대를 파서 만든 터널이다. 기혼샘의 위치는 해발 636미터이고 실로암 연못의 높이는 해발 634미터이므로 겨우 2미터의 고저차를 유지하여 기혼샘에서 발원한 물이 실로암 연못으로 완만하게 흐르도록 만든 것이다.

필자는 이 히스기야 터널을 7번 정도 지나보았다. 기혼샘에서 출발하여 실로암 연못을 지나가는데 그 수로의 높이는 2~5미터이고, 넓이는 55~65cm정도이다. 그래서 한 사람씩 거리를 두면서 지나가야 한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인생이 ‘앞이 막힌 동굴이 아니라 앞이 점점더 밝아지는 터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실로암 연못을 지나가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더운 날씨에는 물장구 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오늘 ‘실로암’에 대한 글을 올리는 이유는 내가 처음 사람들앞에서 설교한 본문이 바로 요한복음 9장 ‘어둠에서 빛으로’ 라는 제목이어서 그렇다. 전할 때가 대학생 선교회의 풋풋한 간사시절이었고 진심을 다해서 준비하고 전하였다.

실로암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병고침을 받은 기적이 일어난 장소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지나가다가 태어나자마자 맹인된 한 남자를 만난다. 이를 본 제자들은 태어나자마다 앞으로 못보는 이 사람이 본인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에 눈이 먼 것인지 예수께 물어본다. 제자들의 질문을 잘 보면 그 당시의 제자들도 유대인의 관습이나 배경에 젖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중병에 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여겼다.(출애굽기 20장 5절 참조) 그러나 예수는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에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때가 아직 낮이고 밤이 도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니 낮일 때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예수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 라고 하였고 맹인은 이에 순종하여 눈이 떠졌다. 그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법을 어긴 것인가?
그래서 탈무드 미쉬나를 찾아 보았다. 랍비 맛티티야 벤 헤레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심각하게 목이 아프면 안식일에도 약을 떨어뜨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위태하고, 생명이 위태한 모든 경우에는 안식일법을 능가한다" - 미쉬나 모에드 요마 8장 6절

또한 탈무드에도 '실로암 연못'이 등장한다. 유대인들의 7대 절기중에 초막절(수코트)이 있다. 이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금으로 만든 물병에 실로암 연못의 물을 담아 와서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이 있다. 제사장이 특별히 실로암 연못의 물을 길어 오는 것은 실로암 연못으로 흐르는 물이 다름 아닌 기혼샘에서 흘러 나온 '생수 living water' 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15장 13절, 미쉬나 모에드 수카 4장 9절)

"물긷기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삶에서 기쁨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미쉬나 모에드 수카 5장 1절)

미쉬나는 신약성서와 탈무드가 나오기 전까지 유대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책이다. 이 책을 당대의 유대사회를 이해하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아울러 어떤 사람들이나 우리들이 고통받는 것을 꼭 죄를 지은 것에 대한 벌로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토라나 탈무드에서도 이런 대목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액면 그대로 읽으면 안되고 그 속에 담긴 뜻은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하다’(시편 119편 71절, 로마서 8장 18절) 라는 것이다.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은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 존 밀턴은 장님이었기 때문에 ‘실락원’을 쓸 수 있었다. 죄와 벌 또는 고난과 고통의 관계 이것을 과거로만 돌려서 부정적으로 해석하려 들지 말고, 미래로 돌려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 ‘실로암’곡을 즐겁게 불러보길 바란다.

  • 다음 출처 이미지 - 성지순례


YouTube에서 '더웨이 군선교단 실로암 군가' 보기
https://youtu.be/YZXgmLC639U
실로암을 부르는 군인들 - 다음 출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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