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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많아도 식물도서관은 없어...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연지키나?"

독서와 강연 이야기

by 코리안랍비 2025. 7. 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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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많아도 식물도서관은 없어…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연 지키나”

  • 동아일보
  • 업데이트 2025년 7월 13일 23시 09분 

‘야생종자 전문가’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자생식물 3196종 생태 사진 집대성… 40년간 찍은 사진 13년 걸쳐 정리
“소박한 자생식물, 알아야 사랑해”… 무분별한 꽃밭-외래식물 생태계 위협
수목원 넘쳐도 표찰은 부정확… “생태 교육으로 자연환경 지켜야”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는 40여 년간 전국 곳곳을 다니며 우리 국토에서 자라는 1만2000종의 식물을 종자에서부터 성장 단계별로 모두 촬영했다. 그는 “꽃만 볼 게 아니라 주변 자생식물을 알아보고 그 일생을 관찰할 줄 알아야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며 “도서관, 수목원 등에서 정확한 표찰과 교육으로 주변 식물의 특성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우리 국토에서 자라는 3000종이 넘는 식물의 생육 시기별 사진과 정확한 이름, 용처 등을 집대성한 식물백과사전이 나왔다. ‘잡초박사’ ‘야생종자 전문가’로 불리는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78)가 제자인 김태완 한경대 교수 등 5명의 공저자와 함께 e북으로 출간한 ‘주변잡초와 외래식물’(상·중·하), ‘자원식물과 외래식물’(1∼3권), ‘자원식물 생태사진’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3196종 식물의 23만 장에 이르는 생육 단계별 사진을 정확한 학명과 영어명, 국명, 약효와 생태적 특성 등과 함께 집약했다. 모두 7500페이지가 넘는 역작이다.

강 교수는 1980년대부터 한 달에 보름 이상 논밭과 산야를 돌며 식물 특성을 조사하고 종자를 수집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40년에 걸쳐 모은 종자만 2300종 7000점, 생태사진은 1만2688종 77만 장이다. 국내 자원 식물 종자의 90% 이상에 해당하는 수집 종자는 2012년 은퇴 당시 고려대에 모두 기증했다. 그 가치만 수백억 원에 이른다. 방대한 양의 생태사진은 정년 뒤 13년에 걸쳐 정리한 끝에 책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강 교수는 “모두가 아름답고 푸른 식물환경은 원하면서도 정작 생활 주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관심이 없다”며 “어릴 때부터 농작물과 야생·자생식물을 정확히 알고 배워야 자연을 아끼게 된다. 거기에서부터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지켜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방대한 식물 해설서를 집대성한 계기가 궁금하다.

“나태주 시인 시 중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란 시(‘풀꽃’)가 있다. 어떤 식물이 있는지 알고, 자꾸 관심 있게 봐야 사랑하게 된다. 무분별한 국토 개발, 기후와 농업환경 변화로 농작물과 잡초 종류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고 생태환경도 파괴되고 있다.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생육 시기별 자생식물을 식별할 줄 알고,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배우며 주변 생태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시작이다.”

―곳곳에 수목원이나 생태원이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국공립이나 사립 수목원, 각 지방의 습지 생태원 등에 아름다운 꽃식물이 많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수목원인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 세계에서 입장료가 가장 비싼 수목원인 군위 사유원도 다 우리나라에 있다. 그런데 정작 식물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 한 군데도 식물 생태사진을 전시하거나 정확한 이름과 특성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를 갖춘 식물원과 도서관이 없다. 지금은 희망이 없다. 전 국토가 꽃밭이다. 다들 아름다운 꽃만 본다.”

―꽃밭이 많은 게 그리 문제가 되나.

“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하지만 대량으로 꽃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1년에 절반만 녹색으로 토양을 피복시키기 때문에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 농작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 주변과 농지에 대량으로 꽃식물을 심고 아름답게 꾸며서 관광객을 유치한다. 이렇게 조성하고 있는 넓은 꽃밭과 꽃식물은 우리 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비용 때문에 종자의 90% 이상이 외국, 특히 중국에서 들어온다는 점도 문제다. 보기엔 예뻐도 생태계와 종 다양성은 계속 망가진다. 주변에서 자라는 소박한 우리 자생식물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쇠퇴한 농촌의 휴경지를 식물 다양성을 살리는 습지와 숲으로 가꿔야 한다.”

―기후 변화 등으로 생태계 위해식물이 느는 것도 문제라고 들었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조경과 관상용 외국 식물 종류가 급증하며 외래 식물이 많아지고 있다. 하천 변과 산 가장자리에서는 생태계 위해식물인 ‘가시박’ ‘환삼덩굴’ ‘칡’ 등 덩굴식물류가 급증하는데 소관 부서가 달라 조절이 잘 안 된다. 도로변에는 ‘단풍잎돼지풀’이 확산되며 주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방치하면 곤충, 동물 서식처가 변하고 결국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활환경 위협으로 이어진다.”

―식물 이름을 정확히 알고 구별하는 것이 이런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되나.

“식물에 관심이 있어야 이름과 이용성을 알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냉이’는 장소나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 식물분류 전문가조차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들나물 채취하는 할머니들은 경험으로 구별한다. 생육 중의 어린 식물을 구별하는 것은 결국 관심과 경험에 의한 관찰력이다. 식용, 약용, 향료나 염료용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하는 식물을 자원식물이라고 하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용도가 끝이 없다. 잡초학을 전공했지만 늘 하는 말이 ‘세상에 쓸모없는 식물은 없다’는 것이다. 잘 알아야 잘 이용할 수 있다. 뽕나무만 해도 110개의 증상과 효과가 조사돼 있다. 식물 연구는 이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

―현재 우리 식물 이름은 얼마나 부정확하게 불리고 있나.


“수목원과 생태원의 규모는 커도 표찰이 부정확하다. 전국 나물시장과 약초시장에서 팔리는 들나물, 산야초 등도 표준국명과 다르게 유통되고 있다.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돼 전문가 처방 없이 복용하고 오용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남북한 각 지역에서도 식물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남북에서 같은 명칭의 비율이 34%에 불과하다. 남한에서라도 지방명이 아니라 국가표준식물명으로 불리도록 수목원과 도서관, 학교에서 노력해야 한다. 이름부터 정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해외에선 식물을 어떻게 관리하나.

“유럽은 전통적으로 식물원 표본 관리가 잘돼 있다. 식물원을 주로 대학의 생물학과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표찰에 식물학명이 정확히 기재돼 관람객들이 식물을 배우는 데 불편함이 없다. 반면 우리는 수목원이 생긴 지 3년만 지나면 담당 공무원이 이미 바뀌어서 표찰이 달라지고 관리도 안 된다. 넓은 면적에 볼거리는 많지만,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나 전문가의 관리가 부족해 세월이 가면 결국 풀밭이 된다.”

―40년간 현장을 누비다 보면 일화가 많았을 것 같다.

“현장 조사는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숙명이다. 독일 유학 때부터 유전자원 보존의 필요성을 느껴 생태사진을 찍고 종자 수집을 했다. 차를 타고 산과 들에서 조사하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많았다. 오대산에선 진드기에 물려 3개월을 고생하고, 점봉산에선 말벌에 쏘여 얼굴이 부은 채 운전하기도 했다. 상주 팔음산에선 낭떠러지로 굴렀으나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살았다. 진드기, 벌레, 뱀, 벌에 노출되고 응급실도 자주 가는 위험한 일이다. 종자를 확보하고 보존해야 우리 자생식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뒤를 이어받은 제자들의 안전이 걱정인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안타깝다.”

―책이 방대해 출간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두껍고 크니 서점에서 판매하기 어렵고 출판 비용이 너무 비싸져서 책으로 낼 수 없었다. 식물원, 수목원, 학교 등에서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필요한 이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e북으로 냈다. 야외 조사를 통해 어린 식물부터 종자성숙기, 채종한 종자까지 생태사진을 지속적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식물의 생육 시기별 생태사진이 모두 담겨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 식물을 배울 수 있고, 일반 국민들은 약초, 먹거리 식물과 꽃식물, 습지식물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렇게 관찰하고 배우면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돼 있다.”

―농과대학에 진학했던 1960년대와 현재의 생태환경을 비교해보면….


“먹거리 해결이 급선무이던 시절 식량 증진에 기여하려고 농과대학에 가 잡초 방제를 연구했다. 하지만 기술 발달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고 배고픔이 해결됐다. 세상의 변화가 빨라서 유학 직후 강의한 것이 작물과 잡초였다가 퇴임 전에는 자원식물이었다. 농촌이 쇠퇴하며 학생들은 작물재배 강의를 기피했고 전공학과 명칭과 강의 내용도 바뀌었다. 식물 생태의 위협도 현실화됐다. 2005년과 2010년, 2021년 양재천변을 조사한 결과 자생하는 초본식물이 429종에서 318종, 100여 종으로 단순화됨을 관찰했다. 생물다양성 소실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생태환경 보호를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생태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각 초종의 이름을 아는 것을 기본으로, 생육 시기 및 개화기, 발생 장소에 따른 모양과 생태를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시도 하고 교육도 해야 하는데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이라 공무원들은 위에서 시키지 않으면 하질 않는다. 지자체 장들은 표에만 관심 있지 자연환경엔 관심이 없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들 한다. 나이 들면 고향 풍경을 그리워하게 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설레게 된다. 늦기 전에 국토의 자연환경을 살리기 위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 1973년 고려대 농과대학
△ 1983년 독일 호엔하임대 농학박사
△ 1985∼2012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 2009∼2011년 고려대 환경생태연구소(소장)
△ 2010∼2012년 고려대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 운영책임자
△ 2012년∼현재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 2012년∼현재 사단법인 야생자원식물소재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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