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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The 38 laws of discussion
어느 한국의 철학자중에 하나가
[위대한 염세주의자이며 고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라고 소개를 한 오래된 책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정말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로만 국한된 사람이라는 착각을 갖게 한다. 대다수의 젊은 지성인들도 그를 그렇게만 한정지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착각에 속아서 기독청년시절에는 그의 책을 읽어보지를 않았다. 주변에 그의 책이 자주 보이고, 염세주의 철학에 매료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쇼펜하우어야 말로 헤겔을 능가하는 사람이며, 철학의 주요 문제들을 거의 완벽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하는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근본주의 기독교에 사로잡힌 선배세대들은 그의 책을 [금서]처럼 여기고, 그의 책을 읽게 되면 기독교에 회의적이 되고, 사람이 이상해져 간다는 소리까지 하였다. 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사상토론도 못하게 되었고, 편견이나 선입견을 자연스럽게 보유한 사람이 되어갔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니체여서 아마도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읽으면 반기독교적이 되고, 결국에는 교회를 떠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없는 한국기독교의 모습이다.
최근에 토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토론에 대한 글들을 몇편 써본 나이지만, 나역시도 토론은 그리 달갑지 않다. 토론(debate / discussion)을 하라니까, 언쟁(argument)을 한다. 토론이라는 것의 의미와 정의를 알지만 그런데 늘 감정이 앞선다. 토론은 이성에 기초한 것이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나 조금만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면 여지없이 공격을 일삼는다. 그게 싫어서 토론을 아예 하지 않는 회피주의자들도 많다.
어떤 사람은 토론을 "포용과 리더쉽의 대화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토론은 남을 포용하고 수용하는 것이며, 서로 영향력을 주는 리더쉽이 있는 대화표현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토론을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예술적인 측면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토론을 하면 마치 토론의 테크닉적인 면이 강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다. 썰전을 하려면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 들어서, 그 사람을 꺽어야만 하는 경쟁심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을 보면 그게 아니다.
이 책은 19세기에 쓰여 있지만, 21세기 독자들인 우리들이 봐도 전혀 과거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 책은 논쟁과 토론에서 상대방에게 사용할 수 있는 38가지 토론기술을 담고 있다. 테크닉적이기보다는 아트적인 입장이다.
원래 토론은 Debate인데, 어원적으로는 bat에서 나왔다. 이 말은 일단 '세게 부딪치다.'의 의미이다. 토론은 마치 전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토론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말싸움]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토론을 '칼'대신 머리로 하는 '검술'이라고 정의한다.
검술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칼로 찔러서 쓰러뜨리는 것이다. 즉 [정곡]을 찔러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다.
잠시 우회하여 [정곡]이라는 단어로, 토론의 의미를 더욱 정확히 해보자. 정(正)은 옛날에 민첩한 솔개를 의미하는 말이었고 곡(鵠)은 고니를 뜻했다.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하므로 여간해서 활로 맞히기 힘들다.그래서 과녁 중에 가장 맞히기 힘든 정중앙을 '정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정곡을 찌르다] 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정곡을 맞히다가 아니라 정곡을 찌르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검술과 같은 의미이다. 찌르다는 '감정을 세게 자극하다' 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문제의 핵심을 자극하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무나 문제의 핵심을 자극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잘못 자극하여 시비가 붙고 변죽만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모습이 강하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다" 라는 것은 , 상황이나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는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바로 지적인 바탕이나 독서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익히고 배운 것을 현장에서 적용하는 응용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토론은 어찌보면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저작은,
1장, 강하게 공격하는 기술
2장, 더 강하게 반격하는 기술
3장, 결론을 이끌어 내는 기술
4장,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술로 나눈다.
여기에는 38가지를 나열하는 것은 지면관계상 무리이고
이 서평으로 토론의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독자가 독서를 통해서 익히는 것이다.
다만 토론의 기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직업들이 있다.
토론에는 협상도 포함이 된다. 협상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 토론능력이다. 또한 토의능력이다. 토의와 토론은 다르지만 같은 궤를 하고 있다.
다만 쇼펜하우어의 이 저작이 가지는 강력한 특징을 발견하였다.
바로 [고전에 대한 깊은 존중심]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생각의 공유]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1장을 보면, 총 12편의 글이 담겨 있는데, 이 글에 상당수는 고전을 인용한다는 것이다. 1편에 보면 철학자 베이컨의 경구를 담고 있고, 2편에 보면 세네카의 [행복한 삶에 관하여] 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일부를 인용한다. 그리하여 진리에 대한 사람들의 약점이나 취약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플라톤의 [국가론]도 등장한다 . 그리스의 클라식들을 읽어서 토론의 소재로 삼는 쇼펜하우어의 지식응용적 능력에 놀란다.
또 6편에 보면, 괴테의 [파우스트]도 인용한다. 또한 7편에 보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에 대한 글도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그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는 측면에서 토론의 중요기술로 등장시킨다.
2장에도 보면, 10편 정도가 나오는데, 13편에 보면 동물학자 [라마르크]의 책도 이용된다. 철학자는 다방면의 고전과 더불어서 과학서들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이라는 것은 정확성과 논리성을 기초로 해서 형성이 된다. 그래서 토론에서도 과학적이 방법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주장을 펼칠 때, 이에 대해서 말과 행동이나, 이론과 실재가 어긋나는 지점이나 모순이 보이면 이것이 바로 공격적 시점이라는 것도 말한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단점이나 맹점이 과학적인 데이타나 지식의 부족이다. 혹은 통계나 수학에 약하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필경 과학이나 수학에서도 돋보이는 발굴의 실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23편에 보면 "상대방에게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선다." 라는 대목도 나온다.
소피스트를 만나면 소피스트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소피스트를 만나면 소크라테스처럼 대항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 그래서 그들의 허구적인 논리같지도 않는 말들을 반박하는 수단으로 궤변도 필요한 것이다.
3장에도 보면, 약 7편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무엇인가 토론의 주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참된 도움이 되는 것을 밝히고 있다. 토론을 잘하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도 어느 정도 섭렵해야 한다. 공부할 것이 많은 분야가 토론인 것이다. 그래서 앞서 [종합예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4장은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술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8편이 나온다.
35편에 보면 칸트 철학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각 편의 제목을 보면 우스꽝스럽기하다. 35편을 보면, '반론할 게 없으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한다' 일종의 우격다짐이다. 36편을 보면 '이론상으로 맞지만 실제론 틀리다고 억지를 쓴다' 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마지막 편이 재미있다. 38편은 '인신공격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 편에서 쇼펜하우어는 영국의 철학자 홉스 Hobbes의 [시민론]을 인용한다.
"인간이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 허용심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며, 이 허영심에 상처가 나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즉 토론을 통해서 상대방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한다.
"평화가 진리보다 더 값진 것이다"
또한 아랍의 속담도 인용한다.
"침묵의 나무에는 평화의 열매가 맺힌다"
토론에서도 반드시 마찰보다는 평화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교정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도 수렴하게 된다.
결국 토론의 기술은 논쟁의 기술이며, 이는 [정신이라는 칼을 들고 하는 검술]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다 읽고서, 나는 [검도나 검술] 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졌다. 아니면 일본의 전설적 검객인 [미야모또 무사시]에 관한 책도 읽고 싶어졌다. 토론의 기술이 결국 전쟁이지만 반대로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쟁이나 말다툼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음만 못하다. 다만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토로의 법칙을 잘 활용해야한다. 쇼펜하우어의 38가지 [토론의 법칙]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갈수록 우리는 [토론공화국]에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매일 매일 논쟁과 토론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법칙이나 방식을 잘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기는 게임 winning game을 우리는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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