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숙 - 문무를 겸비한 오나라의 숨은 보석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융합형 인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탈무드'가 지식과 지혜의 바다라고 한다면,
한중일 사람들에게 삼국지는 바다와 같은 책이다. 그 내용과 규모면에서 다른 수많은 책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의 경우 아버지가 유비가 다스린 촉나라의 신하였고, 진수도 촉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유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연의의 저자인 나관중은 진수보다 몇 술 더떠서 유비와 관련된 역사기록을 뻥튀기?를 한다. 삼국지의 흥미와 긴장감을 더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없는 내용이 많이 가미된다. 그래서 삼국지를 '반사실, 반허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영국에는 '셜록 홈즈' 시리즈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영국과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면서 다시 셜록 홈즈 시리즈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셜록 홈즈'의 인기는 상종가이다. 저자인 코넌 도일경은 원래 안과의사였는데, 수입이 안되어 탐정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대박이 났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흥미진진함이 담겨있다. 마찬가지로 나관중도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허구 - 픽션을 집어 넣어서 대하역사소설로 창작하였다. 그것이 당대에는 대박이 나지 않았으나, 인쇄술의 발달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필되면서 동양의 여러 나라로 소개되었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 심지어 베트남에도 삼국지 마니아층이 생겨났다.
유비의 촉한정통론을 기반으로 하여 삼국지가 지어지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입지가 줄어들게 되고, 독자들도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그리 집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오나라이다. 오나라는 물자는 풍부하지만, 적은 인구를 중심으로, 인재도 적고, 군사도 적었다. 그러다보니 강한 위나라나, 떠오르는 신성같은 촉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나라이다.
'강동의 호랑'이 손권이 지배하는 오나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재를 중심으로, 정사를 펼쳐나간다. 그 중에 오늘 소개할 인물은, 오나라의 주유와 더불어서 오나라를 떠받쳤던 인재인 노숙이다. 노숙은 조용하지만 지혜롭고, 나약해보이지만 당당한 유연한 리더였다. 또한 주군인 손권을 잘 설득하고 가르치면서 충성의 본을 보인 파워 팔로워였다. 우리는 쉽게 리더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리더를 만드는 리더가 있다. 바로 그 사람이 노숙이다.
<노숙의 흉상 >
나관중은 노숙을 '조금은 어리석고 우유부단해 항상 제갈공명, 관우에게 이용당하는 나약한 문관이자 외교관'정도로 묘사하였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진수의 [삼국지]만 보더라도 노숙의 실제 면모는 그렇지 않다. 그는 오나라의 자국의 문제나, 오나라 밖의 대외적인 문제까지 아우르는 인재였다. 실로 담대하면서도 원칙적이고, 유연한 성격을 갖추어서 결코 제갈공명에 뒤지지 않았다.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수전에는 주유, 육전에서는 노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무를 겸비한 영웅이었다.
노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리더를 만드는 힘은 팔로워쉽'이라는 말을 만들어본다. 정치체계를 연구해보면, 리더쉽과 팔로우쉽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현대로 올 수록 넘쳐나는 리더쉽 과잉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리더쉽과 관련된 저작들을 쏟아 놓는다. 그렇다고 리더가 되는 사람은 소수이다. 다수는 리더를 따르거나 동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팔로워들이 없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그냥 상징적인 인물일 뿐이다.
오늘의 노숙은 '리더를 만드는 리더'였다. 그리고 주군인 손권의 생각을 넘어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리더보다 더 높은 이상과 목표를 가진 팔로워'였다.
신인철 교수는 자신의 저작에서 '리더십의 또 다른 이름은 팔로워십'이라고 피력하였다. 그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은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공존을 하면서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존재를 지켜나간다고 말한다. 어떤 학자는 '리더십의 99%는 팔로워십이다'라고도 한다. 신인철 교수는 핵심 팔로워는 리더의 파트너이면서, 2인자나 참모를 넘어서는 사람이라고 한다.
팔로워 > 2인자 + 참모
필자가 노숙에 대한 삼국지의 여러 부분을 살펴본 바로는, 삼국지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안정되고 성공적인 지략가가 바로 노숙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융중대에서 유비를 만나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한 것은 유명하다. 이것은 마치 가위 바위 보의 원리와 같다. 가위는 바위에게 지고, 바위는 보자기에게 지고, 보자기는 가위에게 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서 먼저 [천하삼분지계]를 펼친 사람이 바로, 노숙이다. 삼국지를 몇번 읽고도 이를 아는 이들은 무척 적다. 노숙은 손권에게 제갈량과 비슷한 전략을 제안하는 장면이 [삼국지]에 나온다.
노숙은 양주 임회군 동성현에서 태어났고,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였다. 집안은 대부호로서 가뭄이 들거나 기근이 일어나면 곡식창고를 열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었다. 노숙은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접을 하고, 융숭하게 대우하였다. 그래서 인근의 인재들이 노숙의 집에 거의 기거하다시피하였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할 줄 알고, 타협할 줄도 알고, 대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노숙은 병법에도 밝았으며, 무술도 틈틈히 익혔고, 활쏘는 시위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전한다. 노숙과 주유의 만남은 노숙의 인생방향을 바꾼다.
원술진영의 다른 곳으로 갈 사람을 주유는 강남으로 이끈다.
노숙은 일족과 사병들을 모아서 "이제 곧 천하대란이 시작된다. 이곳을 떠나 풍요롭고 안전한 강동으로 가자"라고 설득해 총 300여명을 이끌고 대이주를 한다.
주유는 "군주가 신하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신하도 임금을 골라 섬겨야 한다" 며 손권을 섬기는 유익에 대해 설득한다. 나중 손권은 노숙과 담론을 하면서도 지루한 줄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오나라의 대소사의 문제를 노숙과 토상의한다.
손권은 노숙에게 "나는 부형(죽은 형 손견)의 가업을 이어받아 강동을 경륜(행정) 한 것이나 이왕에 이 자리에 오른 이상 춘추오패인 제환공이나 진문공처럼 황실을 떠받들어 패업을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소. 공은 이 점을 염두해 두고 나를 가르쳐 주셨으면 하오"
이에 노숙은 다른 처방을 준다.
"한 고조이신 유방께서 의제를 모시려 했지만 항우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의 조조가 바로 항우입니다. 솔직히 한 황실의 부흥은 이제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원소가 지금은 강대하지만 곧 조조가 득세할 것이고 이후 조조를 멸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주군께서는 강동을 지키면서 정세를 파악해야 합니다. 조조가 북쪽을 경영하면, 그때 황조를 제거하고 유표의 형주를 손에 넣은 다음 장강을 장악해 조조와 맞서야 합니다. 그런 다음 황제가 되어 새로운 왕조를 열어야 합니다. 또한 유비라는 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 자를 끌어들여 조조를 견제하는 도구로 써야 합니다. " 실로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손권은 "그대의 뜻이 나의 뜻과 같소" 라며 노숙을 크게 기뻐한다.
노숙의 말은 손권에게 '한왕조를 건국한 새로운 유방이 되라"라고 권하는 것이다. 당시 손권은 가슴속에 웅대한 꿈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러나 그 꿈의 방향을 제대로 못잡고 있었다. 이에 노숙이 방향을 알려주고 청사진을 그리자 그는 단번에 이를 접수한다. 뜻이 통하는 주군을 얻었다는 점에서 노숙도 행복한 신하가 된 것이다.
노숙은 그 이후 손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드림팀을 형성하여 맹활약을 한다.
당시 노숙은 외부인이었다. 이 외부인을 손권은 가까이 두고, 기존의 문무백관인 강동사람들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는 개인적인 평판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드러난 공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형식보다는 내실을,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책사였다. 또한 인재발굴에도 힘을 써서,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손권에게 방통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적벽대전에서 불리한 오나라가 유비와 손잡고, 손유연합을 이루게 했던 인물도 노숙이었다.
또한 당시에 반대하던 [천하삼분지계]를 달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이를 이루어낸 외교술의 달인도 노숙이다.
세월이 흘러 새로운 패업을 이루고자 했던 노숙은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일찍 병사한다. 훗날 손권이 제위에 올라 단에 올랐을 때, 자신과 함께 한 공경들을 바라보면 이렇게 말한다.
"옛날 노자경(노숙)이 일찍이 내가 제위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형세 변화에 밝았다 할 것이요"
노숙의 경쟁력은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주군인 손권보다 꿈이 더 컸던 데서 있다.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를 가진 그는 손권의 명참모이며 최고의 파트너였다. 한국에는 이러한 노숙과 같은 신하가 필요하다. 리더가 방향성을 잡지 못할 때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큰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
엉뚱한 발상이지만, 잠시 골프라는 운동을 살펴 보자. 사람들이 왜 골프를 좋아하는가? 그것은 비지니스용으로 즐기기에 좋아서가 아니다. 알고보니 '골프는 목표가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골프는 1미터도 채 안되는 클럽으로 직경 41.14mm, 무게 45.93g의 공을 때려, 250에서 300m 이상을 날려 보내 땅위의 지름 10.8cm짜리 구멍에 넣는 게임이다. 18홀까지 가야 하는 장거리 게임이다. 한편으로 승부를 내는 방식이 가장 단순한 경기이기도 하지만 , 수많은 변수가 있고, 지켜야 할 룰들이 많으며, 상대방과의 피말리는 심리전도 겪어야 하는 경기이기도 하다. 그런 골프에는 다른 스포츠와는 차별되는 '캐디'라는 사람이 있다.
지구상 어느 스포츠도 경기하는 도중에 중간에 이렇게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조언과 도움을 받는 경기는 없다. 골프는 스윙 순간을 제외하고는 선수와 캐디가 계속해서 대화를 통해 코스 공략법을 찾아내고, 거나라 방향에 적합한 클럽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수를 안정시키고자 심리상담사가 되어 진정시키기도 한다. 난조가 보이거나 슬럼프가 오면 기본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유명 선수들이나 프로 골퍼들이 최고의 캐디와 함께 팀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업이나 조직도 다를 바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결정은 리더가 내리고 그 책임도 리더가 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순간 ( The moment of Truth)에 탁월한 팔로워들이 자신의 의견을 통해 리더가 보지 못한 부분, 리더가 고려하지 못한 사항을 보완한다. 진정한 팔로월라면 그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리더를 1인자로 만듦과 동시에 자신도 팔로워중의 1인자로 우뚝 설 수 있다.
노숙에 대한 여러 일화가 많이 있지만, 노숙의 동오에서의 생활은 주군 손권을 높이 세우면서, 긴밀하게 능굴능신의 귀재인 유비와 관우와도 타협하고, 다른 힘의 역학관계를 잘 이용하였다. 나중 대도독의 지위에 까지 올라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된다. 또한 [천하삼분지계]론을 펼치면서,
노숙이 신병을 얻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노숙은 자신의 주변일을 정리하기 시직한다. 손권에게는 당분간 촉과 함께하는 평화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위나라와는 항시 경계심을 잃지 않되 촉과의 연합이 가능하다는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권유했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괄목상대했던 여몽이 바로 그 사람이다. 노숙은 무식하고 힘만 센 여몽을 인품과 능력이 출중한 훌륭한 장군으로 만든다.
죽기전 여몽은 노숙에게 묻는다.
"대도독, 우리 오나라는 항상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를 대항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다 유비가 약하고 조조가 강할 때는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를 치고, 대신 유비가 강하고 조조가 약할 때는 조조와 손잡고 유비를 넘어서야 우리 오나라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노숙은 이 같은 유언을 남기고 향년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다. 그가 죽자 손권이 곡을 하고 오나라나 촉나라 사람들, 특히 제갈공명이 무척 슬퍼하였다. 제갈공명은 자신과 뜻과 이상이 같은 동시대의 동지를 잃은 셈이다. 모략가들은 서로 경쟁도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죽으면 슬퍼한다. 역사상 라이벌들을 보아도 그렇다. 서로 경쟁하고, 다투다가도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나가 되면 위로해주고, 슬퍼해주고 같은 길을 여전히 걷는다.
다른 이들은 노숙에 대한 평가를 저평가했으나, 유독 관우만은 "오나라의 영웅은 오직 노숙뿐이다"라고 말했다. 전략으로는 제갈공명과는 라이벌이요, 관우와는 무장으로서 라이벌이었다. 노숙은 눈앞의 이익보다 대국을 생각하는 스케일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노숙에 대한 많은 일화가 있으나 지면관계상 다 올리지 못함은 애석하다.
필자의 관점으로는. 노숙은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융합을 보여준 인재이다. 21세기에는 '융합형 인재'가 가장 필요하다고 한다. 자동차나 다른 기계장치에도 소위 '하이브리드' 기술이 들어간다. 불확실한 세상은 점점 더 높은 고난도의 리더쉽을 요구한다. 이런 시대에 문무를 겸비한 팔로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것을 보고, 더 큰 목표를 향하여 묵묵히 나아가는 노숙과 같은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도 바로 이러한 노숙과 같은 파워 팔로워들이 포진해야 한다. 리더가 이리 가라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하면 저리 가는 사람은 바람에 움직이는 돛단배밖에 되지 않는다. 방향성을 유지하려면 배의 동력과 더불어서 키를 잘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지도력을 Leader + ship의 합성어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