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성과 인문학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가치관, 인생관, 역사관, 종교관, 세계관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소중한 유산(遺産)인 고문이나 고전을 통해서 사람들과 지성과 인성을 갈고 닦았다. 고전의 힘은 오늘날 현대로 이어지는 지혜가 되고, 인간발달의 핵심이 된다.
21세기 기술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갈수록 영원불멸의 주제를 다룬 철학과 심리학, 인간학과 윤리학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인간본성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대중들사이에 가장 인기를 끄는 심리학을 주로 다루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보통의 사람들도 심리학의 반전문가들이다. 그런고로 심리학이 인문학의 주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옆에서 도와주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많은 인문학 분야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심리학쪽에 많이 기대고 있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본성과 인문학의 무늬를 다루는데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문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문학의 위기가 왔다고 하지만, 사실 위기 인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인간의 삶의 근본이 흔들리고 위기의식을 느낄 때 우리는 인문학과 만나야 한다. 세월호 사태때 나는 위기에서 사람들의 정신을 구하는 [위기 인문학의 필요성]을 깊이 공감했다.
아직도 고전을 공부하지만 여전히 나는‘고전’하고 있다. 지천명이 되면서 그간 나에게 가진 지식과 정보라는 것이 이제는 별로 의미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문학(HUMANITAS)라는 것에 눈이 갔고, 20여년동안 절치부심하면서 인문학 공부에 매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문학의 좌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아직도 갈길이 먼 인문학 나그네로 지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인문학에서 가장 먼저 추구할 것이 [역사]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역사라는 것이 오래된 것만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래된 것이 오히려 현대적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오래된 미래인 고전에서 현대성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어느 문화인류학자는 [모든 역사는 현대적이다] 라고 하였다. 각 나라마다 각 나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역사도 바라보는 이에 따라서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역사를 한국인들이 보는 것과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보는 것이 다르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근원 ORIGIN'을 다룬다는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바로 3간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다. 앞서 역사는 현대적이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지구라는 공간과 시간에서 보는 것과, 지구 밖에서 보는 것, 그리고 과거라는 시간에서 보는 것과, 현재라는 시간에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과 기억]이라는 타임머신을 타보면 그리 긴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의 것들도 역사학자들과 고전학자들의 손길로 지극히 현대화되어 나타난다. 디지털 기술이 도리어 과거의 역사를 더욱 현대화하고 있다. 인문학 공부는 사실 역사공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
니체는 “살아갈 이유를 찾은 사람은 어떤 고통도 참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사마천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그의 고통을 누가 다 이해하랴,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도 작든 크든 삶의 고통이 있다. 그 고통속에도 축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역사공부이다.
과거의 역사는 여전히 오늘날도 되풀이 된다. 인간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역사적 존재인 인간생활은 여전히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현상이라는 옷만 갈아 입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를 다시 체계적으로 공부할 요량이다. 물론 기타 다른 역사서나 고전들이 같이 연합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영국의 유태인 수상 출신, 디즈레일리가 말한대로, 책 한권 읽은 사람을 조심해야 하듯이 다양한 책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교우하면서 나의 지평을 더욱 넓혀 나갈 것이다.
[역사]라는 이름의 책들
역사상 [역사]라는 이름으로 붙은 2종류의 책이 있다면
하나는 사마천의 [史記]와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 HISTORIA]이다.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는 그리스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책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준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인들)[토라와 탈무드]를 읽어주고 같이 읽는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읽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달리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에 사마천의 [사기] 읽기를 시작으로 하여,
나는 단순히 중국문화를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사마천의 [사기]는 사실 동북아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지성유산이다.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북아는 한자문화권이며, 유교문화권으로 귀결된다. 거기에 가장 큰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지금의 중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속의 중국을 말하는 것이다. 역사속의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은 바로 근원부터 다루고 있는 고전(CLASSICS)들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사마광의 [자치통감], 그리고 유안의 [회남자] 공자의 [논어]에 이르기까지 동북아 역사를 만든 책들을 중심으로 우리는 우리의 인문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물론 이러한 책들 외에도 소중한 문화유산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것들을 사대주의라는 미명으로 붙쫓는것도 잘못이다. 나는 조선인이고 한국인이다. 우리 나라에도 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참에 중국이나 한국 그리고 일본을 서로 비교하면서 인문학 연구에 더 빠져들 요량이다. 동북아의 역사는 서로 교류하고, 주고 받는 역사였다. 우리의 시각만 주장해서도 안되고, 저들의 시각에 지배되어서도 안된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의식을 공고히 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서양학문에 많이 빠져서 지냈고, 동양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많이 버린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다시 되돌리려고 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제일 먼저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선정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성서와 신학관련서를 오래 읽고 연구한 학자그룹의 일원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서 이러한 공부가 일종의 [공염불이나 허공에 대고 빈주먹을 치는 것]에 불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탁월한 학자들의 이론과 식견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고, 어찌보면 나는 이들이 만든 ‘학문의 찌꺼기’를 먹고 마시고 살았던 것이다. 물론 성서나 탈무드의 연구는 나를 높은 곳까지 다다르게 한 품격의 학문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껍데기를 벗겨보면 나는 결국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느새 나는 스켑틱(회의주의자)로 전락해 갔고, 그것이 도리어 나에게 더 많은 방법적 회의론자가 되게 하였다.
그런데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가 좋다. 그 이유는 바로 늦게라도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자기발견’했다는 것에서 큰 안위를 얻고, 이 자기발견을 통해서 나는 더 높고 넓고 깊은 ‘자기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의 도움이 너무나 컸다는 것을 제시한다. 또한 모든 공부가 알고 보면 ‘자기성장’을 위해서 하는 것이요, 그 성장을 통해서 행복도 증진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사마천의 집안은 아마 대대로 [사관]이었다고 본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도 사관출신이었다. 사마천은 10대 시절에 당시 가장 큰 성도인 [장안]에 가서 거기서 학문을 닦고, 나중에 동중서라는 벼슬을 얻는다. 20살 무렵에는 당시의 중국의 전역을 여행하였다고 한다. <히스토리아>를 지은 헤로도투스도 젊은 날 그리스인으로서 유럽 일부와 북아프리카 페르시아까지 여행하였다고 한다. 두 걸출한 역사가들의 행적은 서로 비슷하다. 나중에 한의 충신인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사마천은 한무제로부터 핍박을 받는다. 의인을 변호한 일이 결국 화근이 된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인구에 회자되는 자료들이 많으니 굳이 여기서 담지 않아도 된다.
사마천은 역사가로서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사마천의 사기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영웅호걸들로부터 토호, 협객, 미희 그리고 점쟁이나 건달까지 기록한 <사기열전>, 제후들의 역사를 그린 <사기서> 역사적인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기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서가 신구약 통합 66권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람들을 의(義)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듯이, 사마천의 사기도 의(義)로 교육하기에 매우 유익하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전체>라는 역사서술방식을 따른다. 그중에서도 <사기열전>은 필독고전으로 통한다. 나는 주로 <사기열전>을 가지고 <사기>에 담긴 역사의식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열전에는 백이와 숙제를 시작으로 하여 한무제 때까지 활약한 수많은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인물의 선정은 사마천의 역사관이나 가치관, 우선순위에 따른 것이다. 기준은 선(善)과 의(義)이다. 많은 이들이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보면서 백이와 숙제, 관중과 포숙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일단 [끈기]가 부족하다. 그리고 또한 무수한 한자들이 많아 읽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리하여 [읽는 고통이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만든 세상의 기기가 [정통독서법]을 망쳐 버린 것이 많다. 클릭만 하면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여러 문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고(thinking)하지 않는 세대에서 우리는 결국 사고(events)를 만나게 된다. 바로 내가 만든 [인문학적인 순간]이 오고 만다. 사기는 [인문학의 보고]이다. 세상에 쉬운 공부가 어디 있으랴, 다만 공부하여 남에게 줄 생각으로 해보면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사마천이 받은 궁형>
대하장편소설 불후의 명작[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은 ‘사마천’ 선배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참았다고 한다.그래서 <토지>가 완간이 된 것이다. 그분은 극심한 삶의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사마천’선배의 ‘사기를 쓰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참았다고 한다. 사마천은 하루에도 10번이상 식은 땀이 났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받은 궁형(宮刑)으로 인한 것이다. 그가 받은 궁형이라 함은 그가 남아 있는 [역사기술]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과 바꾼 것이다. 그의 억울한 심정은 천도(天道)를 따르면서도 결국 궁형을 받았다는 것에 원망이 담겨 있다. <열전>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따지는데서 출발한다. 하늘의 하늘이라도 인간이 받는 고통에 대답할리는 없다. 많은 종교인들이 빠져드는 오류는 신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복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열전>을 심도깊에 읽으면 억울한 사람들의 나열이 이어진다. 그가 궁형의 고통을 참으면서도 끝까지 사기(史記)를 완성한 것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보상과 승화에 있었다. 또한 선한이가 복을 받아야 하고, 악한 이는 징벌(懲罰)을 받아야 한다는 고래(古來)의 권선징악(勸善懲惡) 사상에 있었다. 지금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억울함에 고통받고 잠못 드는 이들이 많다. 그들까지 생각하였던 사마천은 과연 역사가를 넘어서 거룩한 인문주의자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중화의 창업자인 모택동(毛澤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에는 두 편의 대작이 있다. 바로 사기(史記)와 자치통감(資治通鑑)이다”
모택동은 평생 마르크스 사상과 더불어서 사기와 자치통감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아마 자신이 통치술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사기나 자치통감에 담겨 있는 역사성과 문학성에 대한 애정도 뜨거웠을 것이다.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나 사마천의 史記에서 보여주는 것은 신화(MYTHOS)에서 출발한 문학이 로고스(LOGOS)라는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힘의 철학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히스토리아 Historias 는 ‘관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치 Politica와 친밀성을 갖고 있다. 문학과 역사는 바로 한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군주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인문학 과정이었다. ‘왕도정치’의 맹자와 ‘법가 사상’의 한비자, 플라톤의 국가(Politeia),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이 같은 맥락을 갖는다.
사마천은 유가사상에 대하여는 그리 열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문학과 역사에 조예를 기반으로 하여 <사기> 집필을 하였지만, 반대로 이상주의자의 면모와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고루 갖춘 인사였다.
보통의 역사서들은 주로 왕족이나 귀족에 국한되어 작성되었지만, 사마천의 [史記]의 멋은 삼황오제부터 시작하여 하층민까지 다루었다는 것에서 계급(class)을 초월하고 타파하는 [평등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저작에서는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존중도 담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후반부에는 <화식열전貨殖列傳>이 나온다. <화식열전>은 재산을 뜻하는 화(貨)와 이를 불린다는 의미의 식(殖)을 합쳐 화식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화식열전은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상공업으로 부를 일군 인물들의 삶과 일화를 다룬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현대인들도 충분히 귀담아 들어둘 만한 내용이다. 그는 장사에 매진하는 聖日(성일)의 자세로 거액의 재산을 모은 옹락성 등을 극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마천은 은 정당한 부의 축적을 옹호했으며, 가난하고 궁색한 것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가난한 것을 미덕으로 삼고 처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비현실감을 가진 유가사상을 혐오하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기록중심의 역사를 지향하였던 유대인들의 랍비에게서도 보이는 입장이 있다. “처자식을 잘 돌보는 랍비는 성자보다 더 위대하다” 그래서 랍비들은 지적 생산 집단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실물 생산 집단이기도 하였다. 자신들의 기술을 가지고 밥을 벌어먹고 처자식을 돌보는 것을 최우선 과제처럼 여겼다.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갖는 장점이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서민들과 민초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열전>에 마지막 대목이 <화식열전>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의 투명한 경제의식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꿀 속량금이 없어서 궁형으로 대신했던 몸의 치욕적 기억이 그런 의식과 사상을 만들어 낸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화식열전>에서 제후나 고관대작도 고민한 물질난을 서민들과 민초들이 겪는 것은 그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는 유가중심의 역사가 반고의 <한서>의 생각과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반고는‘안빈낙도나 빈이락’을 강조하면서 부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선택은 <한서>가 아닌 <사기>였다. 그것은 아마도 궁형을 당하고도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금자탑을 쌓은 사마천에 대한 속 깊은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전문학과 역사는 동서회통의 길을 제시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헤로도투스의 [히스토리아]를 겸하여 연구하면서 동이 서에서 가까워지고, 서가 동으로 가까워지는 경험을 더욱 하려고 한다. 세계화의 시대에 아직 우리는 좁은 가치관으로 의식의 지평을 넓히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두 역사거장의 책들을 이제라도 머리맡에 두고 좌우서로서 살펴봄이 어떠한가.
역사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치통감>을 읽고, 난세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사기열전>을 택하면 된다.(신동준 사기학자) 그렇지 않더라도 평생 [좌우서]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 바로 두 작품이다. 물론 두 작품을 읽지 않아도 <논어나 맹자> <노장사상> <한비자나 묵자> 등의 동양고전을 읽어도 무방하다. 이도 저도 싫다고 하는 이들은 [성서]만 읽어도 좋다. 그렇다고 고전이 물론 지적 교만의 배경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전을 한다고 다른 여타 학문을 가볍게 보지 말라. 모든 공부는 사실 다 연결되어진다. 많은 위정자들이나 글꽤나 읽었다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고전의 경구를 마구 인용한다. 풍월과 공부는 다르다. 풍월은 서당개나 하는 것이다. 서당개식 고전공부는 피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독서할 때 취미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전업으로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농부나 어부가 책을 읽으면 취미이다. 하지만 학생이나 선생이 책을 읽으면 그것은 취미가 아니라 전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생공부요 평생교육이라면 인문학을 고상한 취미로 삼기보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전업으로 삼는 것이 어떠한지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갈수록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 근본 이유는 바로 독서를 취미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보다 더 좋은 취미는 없지만 재미로 따지면 독서보다 더 재미있는 취미들이 많다. 그래서 독서가 기피되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이나 채팅보다 못한 것이 되어버린 ‘독서현실’을 우리는 광범위하게 경험하고 있다. 취미로 보지 않고 전업으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나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지식기반사회 Knowledge based society]이다. 물론 필자는 절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폄하하지 않는다. 사마천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배운 것이다. 다만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고서 전업처럼 매달린다면 살아갈 이유와 목적, 그리고 방향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책읽기는 곧 사람이 되는 것이고, 사람을 얻는 길이 된다.
사마천의 말이다.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망한다.”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위대한 고전읽기]를 통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이상을 우리가 추구해보자. 인생은 짧다. 남은 생애에 나의 공부는 인문학이다. 다른 공부를 하기에는 인생이 짧다. 사람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다만 더 나은 판단력과 지혜를 얻기 위해 달음박질을 멈추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