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공간이 또한 만들어 준다고 한다. 공간은 현실적 공간과 이상적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일찍 슬픔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에게 현실적 공간은 답답하고 어렵고 힘든 공간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상적이고 판타스틱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속으로 잠시 들어가서 현실적인 공간에서 누려보지 못한 유쾌함과 행복, 기쁨과 심지어 기적도 경험한다. 현실도피적인 쾌감을 거기서 맛보는 것이다.
성서에 보면 에스겔서가 있다. 나는 이 에스겔서가 마치 동화책처럼 다가온다. 처음에는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여호와 삼마’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 나오게 된다. ‘여호와 히네’ 성서 에스겔서를 공부하다보면 고난과 아픔속에서도 이상향을 향한 소망으로 자신들의 힘든 처지를 극복한 유대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현실은 잠시 잠깐이지만 영원한 복락을 꿈꾸면서 자신들의 힘든 현실을 겨우 겨우 이기면서 살아간다. 이들은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결국 1948년 이스라엘 나라는 에스겔의 환상대로 세워지고, 지금 이스라엘은 신생국가에서 성장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에스겔서를 보면서 우리가 이 세상을 답답하고 무겁고 힘든 곳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만 발견해도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힘을 더 얻게 된다. 그러면서 이상향이나 가나안복지에 대한 비전을 보게 한다.
요즘 현실세상을 보면 여전히 답답하고 괴롭기만 하다.
늘 문제와 문제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을 더욱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다. 어느 정당을 보면 거대 여당이 되었지만 거대 여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도리어 횡포하고 군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 정치인들을 보면서 자신의 현실문제나 답답함을 해결하려고 하는 국민들은 결국 실망하고 낙심케 된다. 그것을 어느 시인은 ‘바보놀음’이라고 하였다. 나는 ‘바보들의 행렬이나 합창’이라고 부른다.
데이빗이 본 세상도 그러하였지만 나이가 들어서 본 세상도 여전히 데이빗이 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상상의 나래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전을 상실하고 동화를 상실한 것은 필경 우리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는 여전히 상상력(imagination)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도 동화를 들어야 한다. 스토리를 들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아직 슬픔도 잘 모르고, 고난도 잘 모르고, 아픔도 잘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이 책속에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책들이 여러 권 들어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을 다 자란 어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쁘게 일하고 달려온 3-40대에 기억은 사실 별로 없고 20살안에 일어난 사건들과 추억과 경험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20대에 갇힌 청춘이다. 그래서 나이가 50이 되고, 늙어가도 여전히 10대와 20대의 성장기에 대한 환타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현실이었으나,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환타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한다.
“김선생은 왜 이리 글을 쓰시오?”
“글쓰는 이유는 답답한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이고, 그 글에서 자아성찰을 이루어내고, 그리고 나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이들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글쓰기가 현실적이라면 그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현실적인 책이라면 기술서나 자격증 책을 보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책이라고 인간변화를 위한 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글은 사람을 살리는 글이 아니라 죽이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은 글을 쓰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재미없는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희망적이고 꿈과 이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 글은 동화처럼 쓰면 된다.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글을 읽으며 우리도 동화속의 주인공처럼, 이야기라는 세계의 무대속에 인물처럼 현실도 극복하고, 바르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배우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인간다움’을 향하여 가야 한다. 그래야 사는 재미가 있다. 나는 이러한 사는 재미를 ‘행복’이라고 부른다.
우리 속에도 저자의 말대로 시인 네루다의 말대로
아직 그 옛날의 ‘어린이’가 있다.
그 어린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어린이를 찾습니다.
꿈과 비전이라는 그 어린이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