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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묻 16,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인문학적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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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회 귀중자료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저>


1. 저자에 대해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는 1919년 1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몇몇 단편들은 그가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 1940년 초에 출판되기도 하였다. 프린스턴과 스탠포드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에 지원하여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다.

그는 1948년 뉴요커에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을 출판한다. 그의 후속 작품의 발상지가 된 이 단편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그 후 계속하여 장·단편 소설 수십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1951년에 발표한 첫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곧바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다. 청춘기의 소외감과 순수함의 손실에 대한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서술은 특히 청춘기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이 소설은 한 해 약 250,000부가 판매되는 등 매우 널리 읽히게 된다.

이후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0년대 미국 대학생들의 경전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 '샐린저 현상'을 일으켰으며, 오늘날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과 더불어 가장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현대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성공으로 대중의 큰 관심과 감시 속에 그는 은둔적으로 변하고 새 작품을 출판하는 것도 드물어지게 된다. 1965년 이후로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1980년 이후로는 인터뷰도 가지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 다음으로 그가 발표한 작품으로는《9개의 단편(Nine Stories)》(1953), 《프래니와 주이(Franny and Zooey)》(1961), 그리고 잡지 《뉴요커》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묶은 《목수여, 지붕의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및 시모어의 서장(序章) Raise High the Roof Beam, Carpenters;and Seymour:an Introduction》(1963)가 있다. 이 세 작품은 어느 것이나 획일화된 가치관을 강요하는 현대 미국의 대중사회를 살아가는 글라스가(家)의 7남매 중의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다룬 것으로, 단편으로서 각각 독립되어 있으면서 서로 연관을 가지는 연작형식의 작품이다. 그는 이후 1965년 뉴요커에 실린 중편소설 《Hapworth 16, 1924》을 마지막으로 발표한 후 미국 문학계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며 2010년 1월 27일, 뉴햄프셔 주 코니쉬에 있는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보충>
영국의 전기 작가 이언 해밀턴(Ian Hamilton)은 『샐린저를 찾아서 In search of J. D. Salinger』(1988)라는 책에서,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부탁으로 샐린저의 전기를 쓰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샐린저에게 보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샐린저는 그동안 그런 편지를 수백 통도 넘게 받았을 것이고, 거기 일일이 다 답장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해밀턴은 맨해튼 전화번호부에서 샐린저라는 이름을 찾아 편지를 보냈는데, 그중 두 통이 샐린저의 누이와 아들에게 배달되자, 비로소 샐린저로부터 더 이상 자기 가족을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정중한 경고편지를 받았다고 말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작가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데, 샐린저는 스스로를 침묵시켰다"고 해밀턴은 적고 있다.

이후 샐린저는 해밀턴의 전기가 출간되지 못하도록 법원에 금지신청을 냈고, 미연방 법원은 샐린저 편을 들어주어, 해밀턴은 자신의 책을 전기로 내지 못하고 대신 일반연구서로 바꾸어 출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기에 필수적인 샐린저의 편지들의 인용이나 부연 같은 것들은 모두 잘려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샐린저가 원래부터 침묵과 은둔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그는 다른 작가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예지에 단편원고를 투고하고 애타게 결과를 기다렸으며,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호밀밭의 파수꾼』의 출판섭외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뉴햄프셔 주의 클레어먼트 고등학교에서 발행하는 『데일리 이글』지의 통신원 셜리 블레이니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에 자신의 인터뷰가 나오지 않고 나중에 편집 기획으로 게재되자 샐린저는 화가 나서 다시는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또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간되었을 때, 뒤표지를 가득채운 자신의 사진에 상당히 부담스러워했으며 사진을 빼달라고 부탁해 결국 3쇄부터는 출판사도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또 원래 극작가 지망생이었던 샐린저는 희곡도 썼고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작품을 크게 왜곡한 영화를 본 다음부터는 영화를 경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상업주의와 가짜가 횡행하는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점차 사회로부터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모든 형태의 공적 모임이나 사회로부터 물러난 그는 심지어 1954년부터는 자신의 작품이 작품집(anthology)에 수록되는 것조차도 금지시켰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샐린저는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의 입을 빌어,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 어느 독자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패러독스를 보여주고 있다.


2. <호밀밭의 파수꾼> 작품에 대하여
이 책은 명문 사립학교인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펜시 프렙 스쿨에 다니는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가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한 뒤 성탄절 휴가 직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네 번째로 퇴학을 당하고 뉴욕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2박 3일 동안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펜시의 광고에는 언제나 영국 귀족들의 놀이인 폴로 경기를 하는 사진이 들어가는데, 홀든은 펜시에는 폴로 경기는커녕 말도 한 마리 없다고 말한다. 펜시의 광고에는 또 "1888년 개교 이래 본교는 언제나 두뇌가 명석하고 우수한 청년들을 양성해 왔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있는데, 이에 대해 홀든은 “사실 펜시도 다른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며 “두뇌가 명석하고 우수한 청년은 보기도 힘들뿐더러 그들은 펜시에 오기 전부터 명석했을 거”라며 양성이라는 말을 비웃는다.

펜싱팀 주장이었던 홀든은 시합을 위해 팀원들과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펜싱장비들을 모두 지하철에 놓고 내리는 실수를 저질러 시합을 무산시키는 말썽을 일으켜 교장에게 혼나며, 학교를 떠나기 전 들린 스펜서 선생님으로부터도 잔소리만 잔뜩 듣게 된다.

그가 미래의 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발견한 것은 기성세대와 별 다를 것 없는 허위와 위선, 그리고 기만과 가식뿐이었다. 홀든은 샐리에게 연정을 느껴 자기와 함께 멀리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샐리는 홀든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한 후에도 얼마든지 멋진 곳으로 멀리 떠날 수 있다고 대답하며 주저한다. 홀든은 대학을 가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며 샐리를 설득하려고 하나 샐리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자 결국 포기한다.

그는 기숙사 친구인 애클리나 스트레드레터 같은 속물들과 다투다가 16세의 나이에 퇴학을 당해 뉴욕으로 간다. 대외적인 퇴학 사유는 성적불량이지만 그 심층에는 현대사회의 속물근성에 대한 염증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게 깔려있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이 물에 섞인 기름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홀든은 공부에 대한 의욕마저 상실한다.

토요일, 뉴욕으로 가는 기차에서 홀든은 속물 급우의 어머니를 만나는데 자신을 루돌프 슈미트라고 소개하며 거짓말을 해서 자기 아들에 대한 그 여자의 환상을 충족시켜준다.

뉴욕에 도착한 홀든은 집에 들어가는 대신 싸구려 호텔에 투숙한 후, 시내 나이트클럽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 처음에 그는 어떤 파티에서 만난 프린스턴 대학생이 소개해준 전직 스트리퍼 페이스 캐븐디쉬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만나지 못한다. 그는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면서 세 명의 여자 관광객을 만나 술값을 내주기도 하고, 헐리우드에 가서 영화 스크립트를 쓰고 있는 형의 옛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호텔에 돌아온 그는 엘리베이터보이 모리스의 추천으로 서니라는 매춘부를 방에 들이지만 갑자기 생각이 없어져 이야기만 하다가 그냥 약속한 금액인 5달러를 줘서 내보내려 한다. 여자가 10달러를 요구하고 홀든이 거부하자, 여자는 엘리베이터보이를 데려와 홀든을 구타하고 5달러를 더 갈취해간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홀든은 아침 식사를 사먹는 자리에서 두 명의 수녀들을 만나 기분이 좋아져 그녀들에게 10달러를 헌금으로 기부한다. 그리고는 거리에서 교회에 다녀오는 듯한 어느 가족을 만나는데, 홀든은 그 집 아이가 차도 가장자리를 걸어가면서 "호밀밭을 걸어오는 사람을 붙잡아 준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자 웬일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오후에 홀든은 옛 여자친구인 샐리 헤이즈를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가고, 같이 도망치자고 했다가 말다툼을 벌인 다음, 샐리와 헤어져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도 가고 컬럼비아에 다니는 옛 친구 칼 루스도 만난다.

학교를 떠나 뉴욕의 밤거리를 방황하며 겪는 환멸과 좌절, 술과 폭력, 그리고 기만과 허위는 타락한 성인세계로 홀든을 데리고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궁구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기의 방황과 성장을 닮아있다. 문제는 홀든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교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보는 성인들의 세상은 모두 허위와 가짜로 되어 있고 그는 거기에 혐오감을 느낀다. 홀든이 자주 현기증과 구토증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홀든은 아들이 퇴학당한 줄 모르는 부모를 속이기 위해 방학하는 날인 수요일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동생 피비가 보고 싶어 저녁에 몰래 집으로 숨어들어간다. 자다가 깬 피비가 "오빠는 무엇이 되고 싶어?"하고 묻자, 홀든은 아이들이 호밀밭에서 놀다가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돌보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집에서 나온 홀든은 밤을 보내기 위해 자기에게 잘해주었던 옛 영어교사 안톨리니 선생님 댁을 찾아간다. 안톨리니 선생님은 마치 인자한 아버지처럼 홀든에게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결하게 죽기 원한다는 것이고,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겸허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라고 인생의 충고를 들려준다.

그러나 자신이 잠든 사이에 안톨리니 선생님이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것을 눈치 챈 홀든은 노교사가 동성연애자라고 추측하고 서투른 핑계를 댄 후, 재빨리 그 집을 빠져 나온다. 이제 월요일 아침이 밝아온다. 홀든은 서부로 갈 생각을 하게 되고, 피비의 학교로 가서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며 오후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나오라는 메모를 남겨놓는다.

피비의 학교의 벽에 외설스러운 욕이 쓰여 있는 것을 본 홀든은 그걸 쓴 자를 붙잡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 낙서를 지운다. 그러나 홀든은 곧 다른 곳에도 그런 상스러운 욕이 씌어 있으며, 어떤 것들은 칼로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 오후에 박물관에서 피비를 기다리는 동안, 홀든은 이집트 무덤을 구경하다가 다시 거기에서도 외설스러운 낙서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이집트 무덤에서 홀든은 현기증을 느끼고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는 피비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서른다섯 살쯤 되면 돌아올는지도 모르지. 누군가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경우에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없는 한, 나는 오두막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단다.”

아마도 홀든은 사람들의 거짓된 속물근성에 질려서 청년기의 순수성을 간직한 채 현실세계에서 멀리 떠나 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러한 사회적 제도에 물들어 자신 역시 기성세대로 편입될 것을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뉴욕의 밤 거리를 헤매며 그가 겪은 어른들이란, 그가 혐오하던 펜시의 학생들보다 더 속물적이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이고 타락했으니까.

홀든은 피비가 짐을 들고 와서 자기도 같이 서부로 가겠다고 조르지만 거절한다. 그러나 유원지에서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에 이유 모를 행복감을 느끼며 서부로 달아나지 않고 남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홀든은 다시 한 번 이 거친 세상에 순수한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신경쇠약에 걸린 홀든이 캘리포니아의 어느 요양소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를 포기하고 결국 서부로 떠나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가 아이들의 '순수성'이란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지키거나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오염된 채 어른들의 경험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홀든 콜필드의 정신적 여정과 방랑은 사라져가는 순수성에 대한 보존과 보호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학교와 뉴욕의 밤거리에서 느낀 인간의 가식과 허위에 대한 경멸은, 반대로 그것들을 아직 겪지 못한 순수성을 간직한 동생 피비에 대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래서 피비의 학교 벽에 쓰인 외설스러운 욕을 지워 순수한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며, 나중에 피비가 회전목마를 탈 때에도 순수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동생 곁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가 장래의 희망을 묻는 피비에게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순수성의 상실에 대한 홀든의 강박관념은 소설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창녀를 불러놓고도 그대로 보낸다든지, 펜시의 바람둥이 룸메이트 스트레이트레터에 의해 자기가 좋아하는 제인 갤러거가 순결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한다든지 하는 것 등은 모두 순수성의 상실에 대한 홀든의 강박관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호밀밭'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길가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어린아이를 보며 기분 좋아하는 것 역시 순수성의 수호자로서 홀든의 심리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홀든은 자연사 박물관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자연의 역사는 유리로 된 창 안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를 간직하며, 언제 찾아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의 보존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피비도 순수성을 잃게 될 것이고 타락한 어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속하는 순수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의 때가 묻는다는 것이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약아지고, 상대방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겉모습을 포장한다. 물에 잉크가 점점이 번지듯, 한 번 불신을 몸에 익힌 사람은 다시 사람을 믿기 힘들어진다. 그럼으로써 필연적으로 순수를 상실하고 타락하며, 결국 허위와 가식 속에 살게 된다. 아이는 순수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 순수함을 간직하기에, 세상은 녹록치 않다. 그것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슬픈 딜레마가 아닐까.

홀든은 유원지를 지나가다가 두 아이가 시소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체중이 서로 다른 두 아이들을 위해 균형을 잡아주려다가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 포기한다. 이 장면은 나중에 회전목마를 타던 피비가 잡으면 한 번 더 태워주는 금빛 고리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고 피비가 떨어질지도 몰라 걱정하는 홀든의 모습과 비슷하다. 홀든은 피비가 목마에서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애들이 금빛 고리를 잡고 싶어 할 땐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홀든은 비록 아이들을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호밀밭의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만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겨울인 크리스마스에 시작된다. 겨울은 모든 것이 죽어가는 계절의 종말이지만, 크리스마스는 새롭게 태어나는 재생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계절적 배경은 순수의 종말과 경험의 탄생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순수성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비전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홀든은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며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 시절 피비의 환영을 본다.

소설의 마지막에 홀든은 흘러간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에 잠긴 채, 당시에는 속물이라고 무시했던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홀든은 체제 저항적일는지는 몰라도 체제 파괴적은 아니다. 그는 한 발은 현실에, 또 한 발은 이상에 집어넣고 고뇌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자화상일 뿐이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장년으로, 노년으로 거듭나며 때때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 그 정신적 딜레마를 홀든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지금 당신은 어릴 적 순수성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냐고…….

 

# 이 글은 솔인문학포럼의 자료를 기초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 - 영화표지
    구글출처 이미지 - 누구나 한번은 봐야 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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