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논리적인 좌뇌형 인간. 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네요. 우뇌를 많이 활용하세요”
아마 이런 식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좌뇌 우뇌 이야기입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좌뇌는 추상적인 언어나 사고, 수학적 계산, 추리 능력에 뛰어나고, 우뇌는 전체를 보는 통찰과 협업, 예술적 직관에 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좌뇌를 남성에, 우뇌를 여성에 연결하기도 하죠. 심지어 이성좌뇌형, 감성좌뇌형과 이성우뇌형과 감성우뇌형으로 더 세분화해서 나누기도 합니다.
네.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주장입니다. 보통 사람은 뇌를 10%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대표적인 신경신화(Neuromyth) 중 하나죠.
그냥 그런 이야기(Just So Story)
코끼리의 코는 왜 길어졌을까요? 바로 말썽쟁이 아기 코끼리가 연못 옆에 갔다가 악어가 코를 잡아당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사후 해석을 흔히 ‘그냥 그런 이야기(Just So Story)’식 설명이라고 합니다. 정글북의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동화입니다. 키플링은 표범의 얼룩무늬가 생긴 이유나 코뿔소의 가죽이 쭈글쭈글한 이유도 이런 식으로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물론 과학적이지는 않지만요.
1960년대 뇌전증(간질)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재미있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좌반구와 우반구의 연결 부분, 즉 뇌량의 기능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것이죠. 중증 뇌전증 환자의 경우, 뇌량을 끊는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좌반구와 우반구가 서로 다른 기능을 한다는 것을 밝혀내죠. 여기까지는 분명 맞는 말입니다. 좌뇌와 우뇌에 기능상의 분화가 분명히 일어났죠.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점점 근거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해서, 각자의 성격이나 장점을 한쪽 뇌의 특성으로 갖다 붙이기 시작하죠. 코끼리의 코가 긴 이유에 대해서 명쾌한 (하지만 근거는 없는) 설명을 한 키플링처럼, 좌뇌 우뇌 이분법은 개인의 인지적 특성을 구분하기 알맞은 (하지만 근거는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을 구분하는 심리테스트부터 각 유형에 적합한 교육 방법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속설입니다.
손도끼와 좌뇌?
인류는 약 100만년 전 이른바 아슐리안 석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물방울 모양으로 생긴 대칭형의 석기입니다. 흔히 주먹도끼라고 부르기도 하죠. 호모 에렉투스, 즉 곧선 사람이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아슐리안 석기를 사용하려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주먹도끼라는 이름과 달리 쥐는 것이 쉽지 않고, 자칫하면 손을 베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슐리안 석기의 진짜 용도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석기가 사실 ‘투석기’였다고 주장합니다. 잡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던져서 동물을 맞추려는 목적이라는 것이죠. 물방울 모양은 석기가 튀어나가지 않게 하려는 설계라는 것이죠. 즉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미사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더 발전해서 뇌 편측화로 이어집니다. 정확하게 돌을 던지려면 고도의 운동 협응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른손, 즉 좌뇌로 이러한 기능을 ‘전담’하도록 진화했고, 그래서 좌뇌는 점점 계산, 판단, 추리 등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점점 체계화된 좌뇌는 급기야 ‘언어’라는 고도의 인지 기능을 만들어내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현생 인류의 언어 중추가 좌뇌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뇌는 ‘덜 발달된’ 상태로 머물렀는데, 그러면서 직관과 통찰, 감각적 능력을 담당한다고 하였죠.
하지만 증거는 부족합니다. 특히 석기가 튀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모양을 다듬었다는 주장은 물리학적으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튀어나오는 돌이 더 큰 ‘충격’을 줍니다. 아예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서 살 속 깊이 박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오른손으로 돌을 자꾸 던지다보니 좌뇌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악어가 당겨서 코가 길어졌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언어와 좌뇌?
던지기를 잘 하려고 좌뇌가 발달했다는 가설은 별로 인정받지 못합니다만, 언어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유력한 가설이 있습니다. 말하기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과 듣기를 담당하는 베르니케 영역은 거의 대부분 좌반구에 존재합니다. 좌측 뇌에 손상을 받으면 언어 장애가 생기는 이유죠. 하지만 그렇다고 좌뇌형 인간은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부 학자에 의하면 약 2300만년 전 X염색체에 있던 염기 배열 일부가 Y로 넘어오면서 뇌의 비대칭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서 좌반구는 의미론적 분석을, 우반구는 정서적 인지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합니다만, 몇 가지 큰 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인간이 침팬지의 조상과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약 600만-700만년 전입니다. 2300만년 전에 일어난 염기 배열의 역위성 이동과는 시간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게 된 시점은 훨씬 더 최근의 일로 추정됩니다. 언어는 화석에 남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지만, 길어도 수십만 년 이상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2250만년 동안 별 필요도 없이 좌뇌를 발달시키다가 막판에야 언어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여러가지로 석연치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혼동: 자동차 운전석의 비유
물론 좌반구와 우반구의 기능은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좌반구는 우측 신체를, 그리고 우반구는 좌측 신체를 담당합니다. 전두엽의 기능도 좌우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측두엽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이라는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좌뇌와 우뇌의 기능 차이는 자동차의 좌측에 운전석이 달린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미국이나한국 등에서 운행되는 자동차는 대부분 좌측에 운전석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좌뇌형 자동차라고 하지 않죠. 그럼 호주나 영국의 자동차는 우뇌형 자동차일까요? 자동차의 좌우 차이는 자동차의 전후 차이, 즉 엔진실과 트렁크의 차이처럼 ‘기능적’인 고려에 불과합니다. 정수리에 위치한 두정엽은 감각과 운동 기능을 주로 담당합니다. 반면에 뒤통수에 위치한 후두엽은 시각 기능을 담당하죠. 그렇다고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두정엽형 인간이고, 사격 선수는 후두엽형 인간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좌우 반구의 기능적 차이가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라면 대부분의 인류는 좌뇌형 인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죠. 자동차의 좌우에 앉는 사람들의 성별과 나이를 조사했다고 합시다. 아마 운전석에는 남성이 더 많이 앉고, 조수석에는 여성이 더 많이 앉을 것입니다. 직업적 운전사는 남성이 더 많이 때문이죠. 그러면 자동차의 좌측은 남성적, 우측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좌뇌 우뇌 신화에서는 이런 주장을 서슴없이 합니다. 우뇌는 여성의 뇌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뇌는 남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좌뇌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 인해서 전쟁과 환경오염, 경쟁 위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든 남자든 모두 오른손잡이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남녀 모두 좌측에 앉아야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인 기능 차이와 궁극적인 원인 차이를 혼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분법적 편견
좌뇌 우뇌 신화라는 통속 심리학의 탄생에는 크게 세 가지 편견이 작용합니다.
첫째 뇌 안에 있는 작은 인간에 대한 믿음입니다. 호문쿨루스 논쟁이라고 하는데, 두개골 안에 작은 인간 혹은 영혼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어서 신체의 움직임뿐 아니라 마음의 작동도 총지휘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작은 호문쿨루스가 ‘하루 종일 공부하면서 너무 좌뇌를 많이 과열시켰구만. 이제 음악을 들을 시간이니, 우뇌를 가동시켜볼까? 아차. 너무 놀렸더니 시동이 잘 안 걸리는데……’라며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죠.
둘째 뇌의 전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걱정입니다. 좌뇌형 인간은 우뇌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우뇌형 인간은 반대로 좌뇌를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뇌는 에너지를 아주 많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무려 전체 에너지의 20%를 뇌가 씁니다. 진화는 좌뇌, 혹은 우뇌를 헛되이 놀리는 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뇌는 늘 ‘좌우 구분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적 편견입니다. 이성은 주로 판단, 기계, 수학, 동물, 인공, 남성, 문명, 전쟁 등의 개념과 이어지고, 감성은 공감, 문학, 식물, 음악, 자연, 여성, 원시, 평화 등의 개념과 이어집니다. 이러한 범주적 분류 경향은 인류의 인지적 특성인데, 사회문화적으로는 아주 유용한 분류 체계일지 몰라도 그다지 과학적이지는 않죠.
사실 좌뇌와 우뇌 관련한 대중적 편견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뇌과학 개념의 상업적 오용입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은 ‘혈액형으로 보는 성격’ 수준의 간단한 테스트를 치르고, 정체가 불분명한 소위 ‘전문가’에 의해서 이른바 ‘좌뇌아’, ‘우뇌아’로 분류됩니다.
사실 이런 테스트는 좌우를 합쳐서 100%로 계산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부족하게’ 나옵니다. 멀쩡한 아이를 느닷없이 좌뇌 혹은 우뇌가 ‘덜 발달’된 아이로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이미 발달된 쪽은 더욱 발전시키고, 부족한 쪽은 얼른 보완해준다’는 고액의 학습을 강요받습니다. 운 좋게 양쪽이 비슷하게 나오는 경우에는, ‘중뇌아’라는 희한한 용어를 붙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느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하죠. 손쉽게 우뇌아라는 라벨을 붙입니다. 그리고 ‘균형’잡힌 뇌 발달을 위해서 좌뇌에 좋다는 특별 ‘산수’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식입니다. 그냥 ‘판단력이 뛰어나다’ 혹은 ‘감성이 풍부하다’고 하면 곤란한 것일까요? 엉터리 뇌과학을 억지로 끼워 넣어 최신 RLBT 검사 결과 ‘좌뇌형 75%, 우뇌형 25%’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RLBT는 Right Left Brain Test를 줄인 말인데, 물론 제가 대충 지어낸 이름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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