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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칼럼과 에세이

시를 읽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 落花]

by 코리안랍비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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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 시에 대해서 비평가적 분석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시인을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저 나의 느낌을 그대로 논하고 싶다.

 

시인의 싯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어는 '꽃'이 많다. 

왜 시인들은 '꽃'을 가장 많은 시어로 사용할까?

그 다음에 '사랑'이다. 꽃과 사랑은 시인들을 대변하는 두 낱말이다.

 

 

시인은 '가야 할 때는 아는 사람'이라는 멋진 싯구를 만든다. 

가야  할 때를 안다라는 것은 '성숙한 사고'의 다른 말이다. 

사람이 가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에서 

이제는 이별을 고하는 시간이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앞모습의 아름다움만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적인 용어로 [휴브리스]라고도 하고, [인지적 착각]이라고 부른다. 

 

'뒷모습이 아름답다'라는 것은 이별의 성숙함을 보여준다. 

보통 뒷모습은 쓸쓸하다. 외롭고 우울하다.

하지만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만남도 아름답지만 이별도 

순수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이 되겠다. 

 

다음 2연에서는 '봄 한철'이 나온다. 그것은 아마도

청춘의 한 때를 말할 것이다. 봄이면 피어나는 꽃은 

잠시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준다. 하지만 이내 지고 마는 꽃은 

그 나무에서 떨어져서 이별의 순간을 고하고 만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였던가....

꽃잎이 지는 시기는 10일을 채 넘기지 못한다고 하니

어찌보면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렸다. 

 

나의 사랑도 지고 있다는 것은 '나의 꽃'도 지고 있다는 말이렸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어느 시조시인은 '그 꽃 하나 피는 것 보려고 일년, 그 꽃 하나 지는 것 보려고 일년'이라는 

명싯구를 만들어 내었다. 꽃이 지고 피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생도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 온다. 

성숙의 계절이 가을이 온다. 

'꽃답게 죽는다' 이 말은 무엇일까?

꽃이 떨어지는 것을 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꽃답게 죽는다는 것은 정말 깨끗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체념하듯이 달관하듯이 시인은

꽃답게 죽는 것을 택한다.

 

이별 할 때 사람들은 손을 흔든다.

만날 때 흔드는 손, 

헤어질 때도 흔든다. 

왜 흔들까? 

만남은 반가와서 흔드는 것이고, 

이별은 슬퍼서 흔드는 것이다. 

흔들지 않으면 자신이 더 흔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이별은 없는 것이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리려 손을 흔드는 것이다. 

꽃잎 떨어진 자리에
마음은 어수선하고 스산해진다. 

 

나의 사랑은 꽃이고

나의 결별은 아마도 떨어진 꽃, 낙화일 것이다. 

그리고 '샘터에 물고이듯' 하다는 것은 

물의 순수함과 투명함을 말하며

그 사람의 사랑이 순수했노라는 자부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낙화의 순간 고인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내 영혼의 슬픈 눈'

 

그 눈은 한 번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하다. 

신달자 선생님의 [연애론]을 보면, 

연애의 상처와 아픔을 겪어보지 않으면 

사랑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동탁 조지훈 선생의 [낙화]라는 시도 보았다.

이 시는 이형기 시인이 20대에 썼다고 전해진다. 

동국대 교수를 지냈고, 불교인으로서 평생 지닌 인물이다. 

이 분의 시는 10대 여고생만 아니라, 20대 청춘남녀의 

이별시로도 여전히 읽혀진다. 

 

세월이 흘러 30년이 넘은 지천명의 나이에 

이 시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고 

이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언어의 유희를사용하자면,

이별은 원래 한별이었는데, 나누어져서 이별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별이 같은 별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 별은 반짝이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순간은 마치 꽃이 떨어지는 낙화와 동일한 심상으로 다가온다.

이별이 빛날 수는 없지만,

빛나는 이별을 준비하는 것도 우리 인생길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접어둔다. 

 

우리는 꽃을 볼 때

반드시 꽃이 지는 시간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만날 때 이별을 준비하는 성숙함을 갖추어야 한다.

'내 영혼의 슬픈 눈' 하나 만큼은 간직하고 싶다. 

 

2022년 09월 22일 목요일 작성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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