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예수께서 성경을 보신 관점은 동시대 사람들과 비슷했습니다. 즉, 성경이 전적으로 신성한 기원이며, 신뢰성이 있고, 우리 삶에 대한 권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저히 달랐습니다. 즉, 동시대 사람들의 민족중심주의적 판단, 그리스도론적 본질, 레위 정결법에 대한 의미를 보았습니다.
교회사를 통틀어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경의 가치를 축소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른다고 공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약성경 관점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신자들이 성경의 앞부분 4분의 3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 사이의 유사점
여러 면에서, 예수께서 자기 백성의 성경을 바라보신 관점은 동료 유대인들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당시 유대교의 권위 있는 문서들을 그대로 채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분은 히브리 성경의 세 가지 주요 부분(율법, 선지서, 성문서)과, 후에 기독교인들이 정의하게 될 세 가지 주요 율법(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을 모두 인용하셨습니다. 그분은 더 많은 본문들을 언급하시며, 그것들을 자신과 청중 모두에게 권위 있는 것으로 일관되게 다루셨습니다(요한복음 10:35). 그분은 하나님을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로 여기시며,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십니다.요한복음 10:35 ). 그는 하나님을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로 보고,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깁니다.
예수와 구약의 역사성
예수께서는 구약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가르침을 뒷받침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약의 주요 인물들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자주 언급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청중들이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후대 하나님의 백성에게 선과 악의 행동에 대한 권위 있는 본보기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자신의 확신을 공유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과거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자들을 기억하십니다(마 5:12). 그분은 두로, 시돈, 소돔을 고대 악한 도시의 전형으로 언급하십니다(마 11:21-24). 그분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남아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고, 스바 여왕이 실제로 살아서 솔로몬을 방문했다고 믿으십니다(마 12:40-42). 그분은 노아 시대와 롯 시대,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파괴를 언급하십니다(마 24:37-39). 그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묵상하며(누가복음 4:25-27) 광야에서 모세가 놋뱀을 세운 이야기를 언급합니다(요한복음 3:14). 그는 하나님께서 같은 광야 생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공급하셨다고 믿습니다(6:32, 49, 58).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세대가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베레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모든 의로운 피 때문에”(마태복음 23:35; 누가복음 11:50-51 참조)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포괄적인 선언을 통해 구약 성경 이야기의 광범위한 단면을 역사적 진실로 가정합니다.마태복음 5:12 단락). 그는 티레, 시돈, 소돔을 고대 악한 도시의 패러다임으로 인용합니다(11:21-24 단락). 그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 남았고 회개한 니네베에게 전파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바의 여왕이 실제로 살아서 솔로몬을 방문했다고 믿습니다(12:40-42 단락). 그는 노아 시대와 롯 시대, 그리고 그들 각자 주변에서 발생한 재앙적인 파괴를 언급합니다(24:37-39 단락). 그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되돌아보고( 누가복음 4:25-27 ) 광야에서 모세가 청동 뱀을 세운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요한복음 3:14 ). 그는 하나님께서 같은 방황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공급하셨다고 믿습니다(6:32, 49, 58). 마지막으로 그는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 흘린 모든 의로운 피를 인하여” 그의 세대가 모든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포괄적인 선언을 함으로써 구약성서의 광범위한 횡단면 서사의 역사적 진실을 전제로 합니다( 마태복음 23:35 ; 누가복음 11:50-51 참조 ).
예수님과 구약의 예언
다른 경우에 예수님은 동시대 사람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시며,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일에 대한 권위 있고 참된 기록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마땅치 않은 곳에 서 있는 것”(마가복음 24:15)이 여전히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모독 행위(마태복음 24:15; 누가복음 21:20 참조)는 다니엘 9장 27절, 11장 31절, 12장 11절의 참상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호세아 10장 8절 말씀이 여전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산들이 무너져 내려 죽게 함으로써 이 세상의 환난으로 인한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할 것입니다(누가복음 23:30).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우주의 격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시며, 이사야 13장 10절과 34장 4절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마가복음 13:14 참조). 그는 또한 이사야 25:6-8에 근거하여 전 세계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종말 연회가 다가올 것을 예상합니다(마태복음 8:11-12 참조).마태복음 24:15 ; 누가복음 21:20 )은 다니엘 9:27, 11:31 , 12:11 의 공포를 재현한 것입니다 . 그는 호세아 10:8이 여전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람들은 산들이 무너져 내려 죽게 되어 이 세상의 환난으로 인한 고통을 끝내고 싶어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23:30 ). 그는 이사야 13:10 과 34:4 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자신이 돌아올 때 우주적 격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합니다 ( 마가복음 13:14 ). 그는 또한 이사야 25:6-8 에 근거하여 온 세상에서 온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위한 마지막 때의 만찬이 다가올 것을 예상합니다( 마태복음 8:11-12 ) .
예수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의 차이점
그러나 예수님의 구약성경 이해는 당시 유대인들의 이해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관점과 그들의 관점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종종 주요 권위자나 권위 집단에 반박하는 성경을 인용하십니다. 때로는 그들이 성경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전통 때문에 본문의 본래 의미나 목적을 놓쳤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대화 상대가 특정 성경 본문의 명확한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어겼다고 주장하며 단호하게 반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의 레위/마태 소명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자비이고 제사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마태복음 9:13)라고 지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종교적 반대자들도 성경의 진실성과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처럼 성경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예수님의 적용은 훨씬 더 급진적입니다. 히브리 성경은 이러한 구절들을 포함하면서 제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결코 암시하지 않았습니다(호 6:6; 삼상 15:22; 사 1:11 참조). "X, not Y"는 "X가 Y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제자로 받아들이셨지만(마가복음 2:15b), 성전에서 동물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어떤 암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행동은 성경에 규정된 관습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마태복음 9:13 ). 예수께서는 자신의 종교적 반대자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의 진실성과 권위를 인정한다고 전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예수님의 적용은 훨씬 더 급진적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러한 진술이 포함되어 있을 때 희생 제도를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없습니다( 호세아 6:6 ; 참조: 삼상 15:22 ; 사 1:11 ). "X가 Y가 아니다"는 "X가 Y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이셨으며( 마가복음 2:15b ) 성전에서 동물 희생을 바쳐야 한다는 어떠한 암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의 행동은 성경에서 규정한 관행에 대한 표준 해석을 따르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구약성경에서의 민족중심주의에 대한 심판과 예수
예수께서는 성경 말씀이 자신에게서, 또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들에서 성취되었다고 자주 이해하셨습니다. 때때로 이러한 말씀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훨씬 더 일반적으로 이러한 말씀들은 유형론,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히 인간을 구원하거나 심판하실 때, 그분의 특성을 드러내시는 역사 속 패턴들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35-36절(그리고 병행 구절)에서 미가의 말씀을 유형론적으로 인용하시며, 제자들이 미가 시대처럼 자신의 가정에서 적대감과 반대에 직면할 수 있음을 확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유형론은 역사적 사건에 확고히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러한 성경 적용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사야 6:9-10을 비유로 자신의 세대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로 사용하신 것도 마찬가지이며(막 4:11-12 단락), 이사야 29:13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예배에 다시 적용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막 7:6b-7). 마찬가지로 막 11:17b에서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도 예레미야가 말한 그 표현을 당시 부패한 지도자들의 맥락에 다시 적용하신 것입니다(렘 7:11). 이 경우, 예수께서는 성전이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된다는 이사야 56:7을 방금 인용하셨는데(막 11:17a), 이는 성전에 “이방인의 뜰”이 있다는 사실에서 이미 암시된 특징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전례 없는 수로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갈 메시아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마태복음 10:35-36 (및 병행 구절)을 인용하여 그의 제자들이 미가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들 자신의 가족 내에서 적대감과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유형론은 역사적 사건에 확고히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그의 제자들은 이런 종류의 성경 적용을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마태복음 11:17b에서 예수님이 이사야 6:9-10을 비유로 자신의 세대에게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이고( 마가복음 4:11-12 단락), 이사야 29:13 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예배에 다시 적용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마가복음 7:6b-7 ). 마가복음 11:17b 에서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예레미야가 그 시대의 부패한 지도자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렘 7:11 ). 이 경우, 예수님은 성전이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 56장 7 절 을 인용하셨습니다 ( 마가복음 11장 17절 ). 이는 성전에 "이방인의 뜰"이 있다는 사실에서 이미 암시된 특징입니다. 하지만 메시아 시대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로 예루살렘으로 순례할 때, 성전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예수와 구약의 그리스도론적 본질
예수께서는 종종 성경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시며, 직접적 예언과 유형적 예언 모두 자신을 새롭게 도래한 메시아 왕으로 가리키고 있다고 보셨습니다. 비록 그분의 성경 사용이 기독론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을 때조차도, 성경에 대한 그분의 주권적 권위는 적어도 암묵적으로 그분이 누구신지, 혹은 적어도 그분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에 대한 질문을 제기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 이후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니”라고 선언하실 때 절정에 이릅니다. 여기서 시편은 더 일반적으로 성문서를 의미하는데, 예수께서 히브리 정경의 세 가지 주요 부분을 모두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세 가지가 모두 함께 언급된 것은 이번이 유일합니다. 교회사 전반에 걸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주기적으로 언급해 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성경 전체의 모든 것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모든 구절이나 본문이 그리스도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성경의 각 부분에서 자신을 가리키도록 의도 된 모든 것이 실제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이미 누가복음 24장 47절에서 율법과 예언서라는 두 가지 더 단순한 구분으로 이루어진 히브리어 성경을 언급하며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모세와 예언서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클레오파와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동행자와 나눈 긴 대화의 요약이었다면, 그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설명할 만한 구절들을 꽤 많이 발견했을 것입니다.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편은 더 일반적으로 성문서를 지칭하는데, 예수님께서 히브리 정경의 세 가지 주요 부분을 모두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세 가지가 모두 함께 언급된 유일한 순간입니다. 교회사 전반에 걸쳐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주기적으로 언급해 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성경 전체의 모든 것이 당신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모든 구절이나 구절이 그리스도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누가 복음 24장 47절 에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두 가지 더 단순한 두 부분으로 나뉜 히브리 성경을 언급하시는데,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클레오파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그의 동행자와 나눈 긴 대화의 요약이었다면, 그분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설명할 만한 구절들을 꽤 많이 찾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구약의 정결법
동시에, 예수님께서 레위기 율법의 성취와 적용을 완전히 뒤집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극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고 선언하는 선례를 세우셨다는 것인데, 이는 레위기의 음식 율법과는 명백히 다른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14-15절과 병행 구절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있던 무리에게 “너희 밖에 있는 어떤 것도 너희 속으로 들어가 너희를 더럽힐 수 없고 오직 너희 안에서 나오는 그것이 너희를 더럽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다소 은유적으로 말씀하셨지만(17절에 “이 비유”가 언급된 것도 그 때문), 그 의미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제자들은 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코셔 율법을 폐지하시는 것처럼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일을 하실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도 부정한 고기와 그것을 먹으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시는 주님의 환상을 본 후에야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며, 아마도 그로부터 10년쯤 후였을 것입니다(사도행전 10장 9-16절). 하지만 마가는 초기 교회가 베드로의 관점에서 전하는 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20년 또는 그 이상 뒤를 돌아보며 예수께서 실제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마가복음 7:19하).영어: 마가복음 7:14-15 과 병행하여, 그는 자기 말을 듣고 있던 무리에게 “너희 밖에 있는 아무것도 너희 안으로 들어가 너희를 더럽힐 수 없다.오히려 너희 안에서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힌다”는 것을 깨닫도록 요구합니다.예수께서 다소 은유적으로 말씀하셨지만(따라서 17절에서 “이 비유”가 언급됨), 그 의미는 비교적 명확합니다.제자들은 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했을까요?아마도 예수께서 코셔 율법을 폐지하는 것처럼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일을 하실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베드로 자신도 부정한 고기와 그것을 먹으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시는 주님의 환상을 보아야 확신할 수 있었고, 그것은 아마도 10년쯤 후였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0:9-16 ).그러나 초기 교회가 베드로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대로 기록한 마가는 그로부터 20년 또는 그 이상 뒤를 돌아보고 예수께서 실제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7:19하 ).
예수님과 구약의 성취
예수님의 구약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절은 아마도 마태복음 5장 17-20절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 예수님과 다른 유대인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이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히브리 성경의 어떤 부분("율법이나 선지자의 글"—17절 상반절)이라도 폐지한다는 어떤 형태의 비난도 부인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현 세계 질서가 사라지기 전에는 성경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없어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덧붙이십니다(18절). 또한 성경의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무시하거나 없애는 제자는 누구든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9절).마태복음 5:17-20 .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해 예수님과 다른 유대인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이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히브리 성경의 어떤 부분("율법이나 선지자의 글"—17절 상반절)이라도 폐지한다는 어떤 형태의 비난도 부인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현 세계 질서가 사라지기 전에는 성경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없어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덧붙이십니다(18절). 또한 성경의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무시하거나 없애는 제자는 누구든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집행 이 자신의 오심으로 인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은 성전에서 동물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 외에는 죄 사함을 선포하셨고(마가복음 2:5 참조; 6-7절에서 나타난 반응에 주목하십시오), 모든 음식을 이제 코셔로 이해하게 하는 선례를 세우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유일하게 거룩하지 않을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셨습니다(요한복음 4:21-24).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율법주의적인 해석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 안식일 율법에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언제나 마땅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3:4 참조).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토라를 폐지하러 오지 않았다고 선언하신 후에, 예상되는 정반대, 즉 토라를 변함없이 보존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성취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7절하). 이 동사는 마태복음에서 이미 여섯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플레로오 ; 1:22; 2:15, 17, 23; 3:15; 4:14). 성경이 문자적으로든 유형적으로든 앞서 가리켰던 사건의 발생을 가리킵니다. 이는 18절의 시간적 절인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와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인류의 죄를 온전히 속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마가복음 2장 5 절(6-7절에서 나타난 반응에 주목하라)에서 예수님은 모든 음식을 이제 코셔로 이해하는 선례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유일하게 거룩하지 않을 시대의 임박을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21-24절 ).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율법주의적인 해석을 강요하는 것을 넘어 안식일 율법에 이의를 제기하셨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언제나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4 절).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토라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신 후에, 예상되는 반대 말씀, 즉 율법을 변함없이 보존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율법을 성취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7절하). 이 동사는 마태복음에서 이미 여섯 번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레위기의 제사법이 신자들을 위한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로 남아 있지만, 설령 예루살렘에 실제 성전이 다시 세워진다 하더라도 문자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단번에 이루신 영원한 제사를 상기시켜 주기 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의식이나 제의적 맥락에서 이스라엘을 열방으로부터 분리하던 시대도 마찬가지로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은 토라의 규정과는 별개로 이방인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죄인"을 자신과의 교제로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가장 극적인 예로 마태복음 8장 5-13절 참조). 그러나 도덕적 율법 준수는 여전히 신자의 행동과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구분해야 합니다.(마태복음 8:5-13 참조). 그러나 도덕적 율법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신자의 행동과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행동을 구분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하며 불변하는 율법에 대해 그렇게 거만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신성하신 메시아뿐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이 신성모독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와 그 시대 사람들의 견해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7-20절 바로 다음에 소위 "반명제", 즉 청중들이 토라에 대해 진실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자신이 가르치는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한 선언을 통해 이를 확증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차이를 해석의 차이로 제한하는데, 특히 마지막 반명제가 실제로 율법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율법에 대한 오해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너희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한 것을 들었느니라"—43절). 더욱이, 예수님의 분노, 정욕, 이혼에 대한 금지(22, 28, 32절)는 예수님이 비교하신 계명들(살인, 간음,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주는 것)을 실제로 강화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구약이 실제로 서원 이행과 “눈에는 눈으로”(33-42절)를 명령하는 곳에서 맹세와 보복을 금하셨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예수님은 기록된 율법 자체의 요구 조건을 바꾸십니다. 따라서 여섯 가지 대조 명제 모두를 일반화하려 하지 말고, 새 언약이 성취되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모든 율법과 율법의 모든 부분에 대해 권위 있는 의도를 선포하실 수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마태복음 5장 17-20절은 소위 "반대명제"로 바로 이어집니다. 이는 청중들이 토라에 대해 진실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그가 가르치는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한 선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해석의 차이로 제한하는데, 특히 마지막 반대명제가 실제로 율법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율법에 대한 오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너희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신 것을 들었느니라"—43절). 더욱이, 분노, 정욕,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금지(22, 28, 32절)는 실제로 예수님이 비교하는 계명(살인, 간음,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주는 것)을 강화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구약이 실제로 서원의 이행과 "눈에는 눈으로"(33-42절)를 명령하는 곳에서 맹세와 보복을 금하십니다. 따라서 여기서 예수님은 기록된 율법 자체의 요구 사항을 바꾸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섯 가지 대조에 대해 일반화하려고 하지 말고, 새 언약이 성취되는 시대에 모든 율법과 율법의 모든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 있는 의도를 선포할 수 있다고만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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