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것을 다시 쓸 수는 없을까. 쓰레기를 자원으로 되살리는 업사이클링이 새로운 소비 기준이 되고 있다. 가치소비 확산과 ESG 경영 강화 속에서 기업과 사회는 지금 ‘폐기물의 미래’를 다시 묻고 있다.
#1.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 다니던 대학생 댄 커즈록과 조던 슈워츠는 취미로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맥주를 만들 때마다 보리 찌꺼기(맥주박)가 꽤 많이 나온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이를 식품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게 됐다. 이들은 2014년 ‘리그레인드(현 업사이클드푸드)’를 세우고, 맥주박을 원료로 ‘슈퍼그레인+’라는 고영양 식품원료를 개발해 과자, 시리얼, 베이킹 믹스 등을 선보이고 있다. 슈퍼그레인+는 세계 최초로 ‘업사이클 식품 인증’을 획득했다.
#2. 마르쿠스와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형제는 비 오는 날 자전거로 이동할 때 디자인 도구를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방수 가방이 필요했는데, 어느 날 빗속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의 방수천에서 영감을 얻어 1993년 업사이클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을 만들었다. 프라이탁 가방은 트럭 방수천, 폐자전거 튜브, 폐차 안전벨 트 등을 해체, 세척, 절단, 재봉하는 과정을 거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같은 디자인을 찾기 힘든 가방이라는 희소성과 탄탄한 내구성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호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일상에서 쉽게 버려지던 자원이 재탄생한 사례는 업사이클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 창업가들은 폐기될 뻔한 자원을 부가가치 제품으로 새롭게 활용했다. 단순히 폐기물 감축을 넘어 경제와 환경을 동시에 살리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업사이클 산업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시장도 꾸준히 성장세다. 얼라이드 마케팅 리서치(AMR)에 따르면, 글로벌 업사이클 식품 시장은 2021년 537억 달러에서 2031년 970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6.2%에 달한다. 시장 확대에 따라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업사이클 식품 인증(Upcycled Certified)’ 프로그램이 도입됐으며, 2024년 기준 인증 기업은 105곳을 넘어섰다. 이를 운영하는 업사이클식품협회(Upcycled Food Association)는 전 세계에 회원사 20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업사이클링 패션 시장도 빠르게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업사이클 패션 시장 규모는 약 93억3000만 달러로 추정되며, 오는 2034년까지 약 206억5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9.23%에 달한다.
이 같은 분위기에는 달라진 소비자도 한몫했다. 제품이 생산·유통되는 전 과정에서 윤리성과 지속가능성을 따져보는 가치소비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제로 웨이스트 등 새로운 소비문화가 확산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브랜드마케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폐기물 대란 눈앞…업사이클이 답이다
무엇보다 업사이클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폐기물 문제가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리페드(ReFED)에 따르면, 연간 미국 내 식품 공급량의 약 31%에 해당하는 7390만 톤의 식품이 폐기된다. 이는 1인당 약 200kg에 달하는 양이다. 경제적 손실 규모만 3820억 달러에 이른다.
식품 외 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해 내놓은 ‘2024년 폐기물 관리 글로벌 전망’에 따르면 2020년 연간 21억 톤이었던 글로벌 쓰레기 발생량은 오는 2050년에는 38억 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재활용되는 쓰레기는 4억 톤에서 6억6000만 톤으로, 소각 발전 등으로 에너지화되는 폐기물은 2억7000만 톤에서 4억7000만 톤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매립되는 쓰레기는 6억4000만 톤에서 10억9000만 톤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쓰레기도 8억1000만 톤에서 15억7000만 톤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위 억 톤, 자료 UNEP
UNEP는 보고서에서 “통제되지 않은 방식은 폐기물이 환경에 무단으로 투기되거나 노천에서 소각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기후변화, 해양 플라스틱 오염, 인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인이 되며, 폐기물로 인한 오염은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국제적인 우려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20년 기준 전 세계에서 쓰레기 처리에 소요된 비용은 약 2520억 달러로 추정된다. 여기에 비효율적인 폐기물 처리로 인해 발생하는 오염, 건강 악화, 기후변화 등까지 포함하면 총비용은 3610억 달러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UNEP는 쓰레기 관리에 대한 조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는 2050년에는 이 비용이 약 6403억 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버려진 자원을 되살리는 업사이클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국내 제도는 아직 미완…현장에선 지원 호소
국내에서도 업사이클링 산업의 성장에 발맞춰 정책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은 매년 ‘순환경제 선도 기업 대상’을 공모해 업사이클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기업을 선정·시상하고, 산업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7년 서울 성동구에 국내 최초의 업사이클 전문 공간인 ‘서울새활용플라자’를 개관하고, 업사이클링 관련 기업과 디자이너, 시민이 함께 협업하고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 시설은 폐자원을 활용한 제품 개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시 민들의 인식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소비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진국 대비 아직 걸음마 수준인 국내 업사이클 산업은 제도 정비와 인식 개선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 소비자 신뢰를 높이기 위한 인증 체계 정비와 관련 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튀김 부스러기로 바이오 항공유 원료를 만드는 그린다의 황규용 대표는 “관련 허가를 국내 최초로 받다 보니 제도적으로 선례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며 “지자체나 환경부가 관련 법을 따라오지 못해, 받을 수 있었던 허가도 6개월이나 지연된 적이 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업사이클링 스타트업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금융, 연구개발(R&D), 인증, 판로 개척 등 다각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리하베스트 민명준 대표는 “신산업이 태동하려면 산·학· 관·연이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특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 대표는 “관(官)이 먼저 수요를 창출하거나 예산을 투입해주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며 “전기차 산업도 초기 보조금이 없었다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폐기물이나 부산물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산업은 전후방 산업과 연계돼 있어,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유통을 지원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