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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이 말하는 정치인의 품격 - 양승태 철학교수

인문고전 100선 읽기

by 코리안랍비 2025. 6.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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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다스리고 있는가… '아레테' 갖춘 이가 절실하다

[한국정치평론학회와 함께하는 이 시대의 고전]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이 말하는 정치인의 품격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
입력 2025.05.31. 00:51업데이트 2025.05.31. 09:46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가 1511년 완성한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 가운데 두 인물이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이상주의를 중시한 플라톤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반면,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철학을 설파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있다. /바티칸박물관
 

이름 자체가 ‘가장 출중한 인간(aristos totalis; best of all)’을 뜻하며, 중세 서양인들에게 선생(magister) 중 선생 혹은 철학자 중 철학자로 여겨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정치학(ta Politika)’은 바로 정치학이란 말의 어원이다. 서양의 문물이 전래하는 과정에서 영어 ‘politics’의 번역어로 정착된 어휘가 정치학이다. 그런데 그 영어도 국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polis’에서 파생한 형용사를 소리 그대로 적은 말로서, 원제목의 정확한 의미는 ‘국가(polis)와 관련된 것들에 관하여’이다. 플라톤의 ‘국가(Politeia)’와 함께 정치학 최고(最高이자 最古) 고전의 제목이 영어와 한자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미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본디 ‘국가와 관련된’을 의미하는 ‘정치적’이란 말이 혐오감마저 주는 상황은 그 책을 이해하는 데 좋은 실마리를 준다.

 

‘정치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대부분의 저작이 그러하듯이 일종의 강의록으로서, 스승 플라톤의 ‘국가’처럼 문학적 향기도 있으면서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기술된 저작은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스승의 정치학 저작들인 ‘국가’ ‘정치가(Politikos)’ ‘법률(Nomoi)’에 제시된 주요 개념들과 논변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국가의 이상을 설파하고 현실 정치를 설명하고 비판한 글이다. 실제로 그 책의 강점은 국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안, 즉 국가의 기원에서부터, 국가체제, 전쟁, 재정, 교육, 계층 갈등, 내란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 점에 있다. 다만 국가를 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스승과 같은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그래픽=백형선

 

인간의 삶은 생식(生殖)의 본능부터 의식주의 물질적 욕구나 교육·문화적 가치 등을 충족하고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좋은 것들(tagatha)’을 목적으로 상호 의존 속에서 추구하는 그러한 활동은 사회적 분업체계를 이루면서 가족에서부터 마을, 기업, 학교, 종교 기관 등 다양한 형태의 직능을 수행하는 단체와 조직 등 인간들의 결합체(koinonia)를 출현하게 만든다. 국가란 사회 각 분야의 직능과 결합체 모두를 다스리는 최고의 결합체이다.

그런데 생산활동만이 아니라 예술과 체육을 포함한 모든 직능의 수행이나 결합체의 운영은 그 목적이 되는 좋은 것들을 제대로 알고 실현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을 요구한다. 그러한 자질과 역량이 빼어난 상태를 지칭하는 그리스어가 ‘아레테(arete)’다. 그것은 순우리말로 ‘잘남’, 한자어 덕(德)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모든 직능이나 결합체는 아레테를 갖춘 인물, 다른 말로 전문성을 제대로 갖춘 가장 빼어난 인물이 ‘다스리고(archein)’ 다른 사람들은 ‘다스림을 받을(archesthai)’ 때 그 목적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아레테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요구되지만, 그것의 완성은 특정 분야에서의 빼어남이나 전문성을 넘어 끊임없는 수양과 자기혁신을 통해 삶 전체 차원에서 가장 좋은 것, 이른바 ‘지고의 선(tagathon·the good)’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고 구현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와 같은 품성과 역량을 갖춘 인간만이 진정으로 ‘좋은 삶(euzein)’, 곧 ‘행복(eudaimonia)’을 누릴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서로 긴밀히 연관된 좋음, 잘남, 좋은 삶에 대한 설명이자 개인의 삶 차원에서 행복의 구현되는 방안에 대한 탐구라면, ‘정치학’은 바로 국가생활 차원에서 그러한 이상이 구현되는 방안 및 그 구현을 막는 현실에 대한 탐구이다.

간단히 말하여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국가통치의 이상은 지고의 선에 대한 깨달음을 토대로 현실 속에서 최선 혹은 차선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명철함(phronesis)’이 발휘될 때 구현된다. 그러한 이상적인 통치의 가능성을 플라톤이 ‘철인 왕’이란 이름의 초월적이고 영웅적인 지식인의 존재에서 찾았다면, 제자는 폭넓은 교양을 갖춘 시민집단(politeuma)의 집합적 지혜에서 찾은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physei) 정치적 동물(politikon zoon)’이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인간은 그러한 다스림을 떠나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 혹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국민행복’이 정당의 구호로도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도 국가 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행복이다. 그러나 그에게 국민행복은 단순히 느낌이나 욕망 충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최선 또는 차선을 구현할 수 있는 품성과 역량의 문제이므로, 국민 다수가 순간적 쾌락이나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있고, 품성이 저급하고 역량이 모자란 정치인들이 오직 권력 획득만을 위해 그들에게 아부할 때 진정한 국민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 정치판은 품성이 고매하면서 역량이 출중한 인물이 아니라, 반(反)지성적이면서 권력투쟁에만 능한 인간, 확고한 주견도 없이 대중의 눈치나 살피는 무능한 인간, 때로는 공권력을 오직 사리사욕과 출세욕을 채울 수단으로만 여기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인간도 대중을 선동하여 정치지도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본디 출중함과 엄중함을 표상해야 할 ‘정치적’이란 말이 저급함을 넘어 파렴치함의 의미마저 갖게 된 이유이다.

‘정치학’은 바로 서양 고대 세계에서도 예외가 없이 나타난 비슷한 양상을 기술하고 원인을 설명하면서 극복 방안을 제시한 책이기도 하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제2의 조국인 아테네를 패망으로 이끈 민주정치의 타락상은 그러한 탐구의 주요 대상이다. 그 국가적 질병에 대한 처방책 중 하나가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혼합체제의 제시이다. 그 체제의 핵심은 교양과 도덕성을 갖춘 중산층 시민의 집합적 지혜가 국정을 주도하여, 입법권과 집행권을 일인의 폭정이나 소수의 권력 카르텔의 전횡 또는 선동정치(demagogeia)나 군중정치(ochlokrateia)의 등장을 막아 통치의 안정성(asphaleia)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와 같은 혼합체제의 이상은 실제로 고대의 로마공화정과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시도된 바 있으며, 근대 세계에서는 특히 삼권분립 및 상·하원 제도를 특징으로 하는 미국과 프랑스의 헌법을 통해 공화주의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런데 로마가 쇠망하는 과정이나 현재 미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치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만이 아니라 다수 국민에게 시민정신이 쇠락할 때 공화주의적 제도도 효과가 없음을 증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치 그 점을 예견이라도 한 듯, ‘정치학’의 마지막 장은 바로 시민교육에 대한 논의로 채워져 있다. 그 핵심은 한마디로 지덕체(智德體)가 조화로운 시민의 양성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깊은 경륜이나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식과 진실성마저 없는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민주주의와 국가체제를 파괴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이 반영된 공화주의는 이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효한 처방이다. 헌법 1조의 민주공화국 국체 규정은 정치인들에게 그 처방을 받아들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적어도 정치인들의 언행에서 진실과 허구, 진심과 위선을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과 근면하고 성실하며 치열한 직업정신을 갖춘 시민의 양성은 대한민국이 돌이킬 수 없는 쇠망의 길을 벗어나 새로운 융성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우리의 소중한 청소년들을 제대로 알고 똑똑하며, 제대로 도덕적이고, 제대로 건강한 인간으로 키우고 있는가.

그래픽=백형선

1984년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스 정치사상 연구의 대가로, 고전 읽기와 글쓰기를 통한 ‘생각하는 훈련’을 강조했다. ‘소크라테스의 앎과 잘남’ ‘우상과 이상 사이에서’ 등 저서를 냈다.

이런 명작 글을 작성하신 양승태 교수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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