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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묻53, 헤밍웨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인문학적 읽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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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와 못 가진 자
TO HAVE AND HAVE NOT

by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독서평론을 하기 앞서서, 나는 서평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다 잘 안다. 남에게 내가 읽는 작품이나 소개하면 되는데, 이를 지성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사회현상이나 문제를 반영하는 소설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밝히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가 이렇게 서평을 해도 읽어주는 이도 별로 없으면 더욱 하기 싫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서평을 해도 반대의 의견이나 생각을 가진이들의 비판이나 부정적 비난의 화살을 맞을 각오도 해야 한다.

나는 남의 글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비판이나 비난을 하지 않는다.
그 글을 쓰기 위해서 겪은 고뇌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글쓴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아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엉터리 글을 써 넣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런 글을 올리면서 마치 자시의 논리가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배제해야 한다. 서평이나 소개는 반드시 지성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하여도 반드시 지성적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 지식과 정보, 사실과 컨텐츠가 적절하게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 잃어버린 세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생전에 좋은 작품들을 여러편 남겼다.

<<무기여 잘 있거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존 던의 시를 모티브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과 더불어서, <<노인과 바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라는 좋은 작품을 남기고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나는 그의 작품들의 대부분을 읽었고, 그의 소설작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 짧지만 위트있는 문장을 좋아하며,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고도 넓은 탐색과 그러면서도 위대하면서도 반대로 허무한 세상사에 대한 고찰을 많이 다루어서 나에게는 그의 작품들이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반갑다. 그의 작품들의 배경이 미국,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스케일이 크다는 것도 맘에 든다.

그런데 그의 작품중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라는 작품이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런 작품이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책을 비교적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 나도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최근에 그의 작품을 급히 주문하여 읽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지 않아도 독서할 책이 산더미같이? 있음에도, 미루 사 놓고서 읽어야만 하는 성격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미리 사놓고 스킵하듯이 책먹는 하마가 되어 읽었다.

이 작품은 1929~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소설이다.
사회소설이라면 사회문제를 다루고, 이 사회적인 갈등과 아픔들을 저자 나름대로 해석하며 나름대로 해법까지 제시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소설의 특징이 일단은 이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며, 그 해결은 집단이나 계급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사회는 정말 우리에게 우호적인가,
아니면 비우호적인가 고민해보아야 한다.

나 자신도 사회를 보는 눈이나 논리를 기르기 위해서
여러가지 학습모델이나 이론모델들을 익혀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 즉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부르조아와 프로레탈리아]으로 나누었다.
그러한 자본주의 논리에 기초한 계급구분은
당대에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이 발상에 자칫 눌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논리를 쫓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우에도 그런 논리에 지배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부르조아와 프로레탈리아의 이념구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적어도 [빈익빈 부익부]라는 6글자로 세상의 사회구조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같은 사람도 그렇게 사회를 보고 있어서 그렇다. 보이는 세계가 마치 그렇게 돌아가는 것도 틀리지 않다.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그 권력을 남용하고
부를 많이 가진 자일수록 그 부를 악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학력격차나, 지역격차, 남녀격차등 모든 면에서 계급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공연히 그러한 것들을 가진 자들에 대한 [사회적 증오심이나 반발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도 이러한 이념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은 1929년도 대공항을 겪었다. 그 여파로 수맣은 실업자가 급증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었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소설이 작성된 것이다. 물론 경제.경영학을 전공한 필자가 공부한 바로는 미국의 4선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유태인 경제학자인 케인즈의 [뉴딜정책]을 통해서 대공항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만 촛점을 맞추었지만, 문학적인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소설에서는 해리 모건이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플로리다 남단의 키웨스트에서
낚시배를 빌려주며 생계를 유지한다.
이 플로리다 남단은 헤밍웨이가 생전에
거주했던 쿠바와 정말 가깝다.
이 쿠바에서 환상의 땅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이주민들이 그 당시에도 많았다.
최근에도 쿠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은 가진 자의 땅이고, 쿠바는 못 가진 자의 땅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며, 쿠바는 기회마져도 주어지지 않는 절망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리 모건에게 접근하여 밀항자들이 들어올려고 하였다.

그런데 해리 모건은 가족에게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그러나 무슨 일인지 자신이 빌려진 배가 어느 부자로 인하여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빈털터리가 된 해리는 하는 수 없이 호구지책으로 밀항자들과 거래하고, 나중에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행을 일삼는다.

그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면서
나중에는 자신의 한쪽 팔마져 잃는다.
미국 관리에게 잡혀서 자신의 배도 압류를 당한다.
바닥까지 내몰린 해리는 거액의 돈을 받는 조건으로 하여 쿠바 혁명주의자들의 계속된 밀항을 돕지만 총격적으로 결국 사망하기에 이르른다.


그가 숨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한 사람으로는 안 돼" 라는 것이다.

 

2020년 02월 작성
여기서 헤밍웨이의 이 소설이 [사회소설]이라는 것을 부각시킨다.
개인의 문제보다 대사회의 문제를 보며, 그 사회의 문제가 바로 구조적인 문제이며, 나 한사람이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으며 혁명을 통해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한다. 쿠바는 체게바라와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생겨난 나라이다. 그런 나라이지만 너무나 가난하고 비참하여 밀항을 시도하고, 미국으로 건너 오려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헤밍웨이는 이를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이 소설은 사회의 [빈부격차]를 다루지는 않는다.
미국을 가진 자로 보고, 쿠바를 못 가진 자로 보는 이중구도를 잡은 것이다.
이러한 이중구도는 그리 달갑지 않다.
어느 사회든 [빈부격차] [수입격차]가 존재한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한다. 못 가진 자들은 가진 자가 되고 싶어한다.

얼마전 신문과 방송에 나온 기사를 보고서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보게 되었다. 정부의 소득주도정책의 실패의 단면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이를 책임지지 않는 졸렬한 모습도 보았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계층에서는 더욱 소득이 늘어나고, 하위 20%에 해당하는 계층에서는 더욱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겨났다. 서비스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힘든 경제상황의 여파로 고통받고 허덕인다는 것도 보인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 문제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격차]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남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자신만의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는 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의 원인이 사회의 구조에서 온다고 본다.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들이 여전히 존재하는한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사회문제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탓을 하지만 개인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문제에도 힘들어하고 허덕이는게 우리 개인이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를 한다.
.
“남의 짐을 대신 져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무겁겠구나 공감하고 짐작할 뿐이다. 내 짐은 내가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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